작은 칭찬 하나에 더 큰 위로 받아요

 

 

“일해야 하는데 늦게 일어났다. 어떡하지?”

“일해야 한다는 자각심, 칭찬해!”

1. 비꼬는 칭찬은 칭찬이 아니다 2. 성적 수치심이 드는 발언은 하지 말자 3. 욕설, 비방은 안돼요 4. 정치, 혐오, 분란 조장 글을 쓰면 강제퇴장 5. 건강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칭찬 에너지 주세요. 190여명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적힌 주의사항이다. 이 대화방의 목적은 오직 칭찬이다.

가벼운 칭찬과 긍정적인 이야기만 오가는 ‘칭찬방’에서 20~30대들은 웃음 짓고 위로받는다. 서로의 직장이나 나이에는 관심 없다. 남을 평가할 생각도 없다. 이들은 서로의 일상을 듣고, 사소한 칭찬거리를 찾아내며 밝은 기운을 퍼뜨린다.

삶의 유희를 놓지 않는 세대

칭찬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주로 20대~30대 초반이다. 공부나 직장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지만 주로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가 삼겹살을 넣은 라면을 끓였다며 뜬금없이 사진을 올리면 “환상의 조합 칭찬해”라는 답이 돌아온다. 버스를 놓쳤다는 토로에도 “자전거를 타고 가야겠네. 환경에 힘썼어. 칭찬해”라는 유쾌한 반응을 보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세대, 즉 Z세대를 영국에서는 합리적인 세대(Generation Sensible)라고 부른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세대는 자기 몸에 안 좋은 걸 피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합리적인 특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좋은 점은 칭찬하고, 굳이 안 좋은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세대”라고 덧붙였다.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홍택 작가의 저서 ‘90년생이 온다’에서 작가는 90년생의 특징은 ‘재미’라고 적었다. “80년대생 이전의 세대들이 소위 ‘삶의 목적’을 추구했다면, 90년대생들은 ‘삶의 유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유쾌한 이 세대에게 칭찬은 마냥 이타적이고 고귀한 것이 아니다. 칭찬이 진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교수는 “유머는 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친사회적 기술”이라며 “칭찬에도 유머를 놓지 않는 건 합리적인 세대가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을 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또 “웃을 일이 없는 현 사회에 대한 반향이기도 하다”고 했다.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발판

이 대화방을 찾은 사람들은 단순히 칭찬받고 싶었다고 말한다. 칭찬 단톡방에서 7개월간 활동해온 프리랜서 A씨(24)는 “평소 사소한 일로 칭찬받기 힘들어서 이런 단톡방을 찾게 됐다”며 “내가 오늘 한 일에 대해 확실한 칭찬을 받게 되니 ‘이런 사소한 일을 해도 칭찬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회복 탄력성이 떨어진 2030세대에게 타인의 칭찬이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회복 탄력성은 역경을 발판으로 더 높이 튀어 오르려는 마음의 근력이다. 강한 회복 탄력성을 지닌 사람은 스스로의 감정과 충동을 잘 통제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긍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회복 탄력성을 가진 사람들은 무슨 일을 당해도 퉁하고 튕겨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2030세대에게 이는 쉽지 않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회복 탄력성은 고민하고, 갈등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키워지기도 하는데 지금의 2030세대는 학창시절 공부에 집중하느라 자신에 대해 고민할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스스로 회복하는 마음의 근력이 부족하다 보니 타인의 말에 쉽게 무너지게 되고, 성인이 되어 칭찬받을 곳이 없어져 어릴 때처럼 작은 일에도 칭찬받고자 하는 심리가 단톡방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칭찬방은 이런 회복 탄력성에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안 좋은 생각이 들었을 때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부정적인 굴레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별거 아닌 칭찬에 웃음도 지을 수 있다. 칭찬방에서 4개월간 활발하게 활동하다 부방장이 된 B씨는 “조그마한 것도 서로 칭찬해주면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 스트레스받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방”이라고 소개했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커뮤니티가 대부분인데 그런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돌릴 수 있다고 본다”며 “오프라인에서도 서로 칭찬해주는 분위기를 조성해 자신감이 결여된 이들을 북돋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위로 넘은 쓸모

나를 위로하기 위한 노력은 서점가에서도 이어졌다. 지난해만 해도 교보문고와 예스24의 베스트셀러 키워드는 각각 ‘토닥토닥’, ‘위로와 공감’이었다. 올해에는 현실에 적용 가능한 실용 인문서들이 상위권을 차지하며 ‘쓸모 있는 인문교양서’ ‘인문학의 귀환’이 키워드로 꼽혔다.

출판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위로를 주는 서적이 베스트셀러였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긴 책에 독자들의 손길이 갔다”며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자신에게 던져진 문제를 해결하려는 능동적 독서가 특징이었다”고 전했다. 직장에서 적용 가능한 철학 사상을 담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삶의 지혜를 전하는 ‘12가지 인생의 법칙’이 예스24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

타인에게 얻는 위로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힐링 도서가 실질적 효과가 없었기에 실용 지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일시적인 마음의 안정보다는 자기 주도적인 생활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결국 지속 가능하고 쓸모 있는 위로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칭찬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곽 교수는 “내가 가치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만들어나가고, 키워 나가는 게 진정한 칭찬”이라며 “타인의 칭찬에 쉽게 요동치지 않아야 외부 스트레스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노현우 기자 

저작권자 © 피처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