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시사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싶)’가 18년간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은 ‘대구 총포사 살인 사건’에 대한 추적을 이어갔다. 제작진은 지난 5월 방송에서 공개된 몽타주를 토대로 쏟아진 제보를 일일이 확인해 용의자를 추적한 끝에 의미 있는 단서를 포착했다. 덕분에 방송 후 시청자들은 ‘레전드’라고 호평하고 있다.

1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복면 속 이웃 사람-대구 총포사 살인사건 그 후’라는 제목으로 2001년 대구 지역에서 발생한 총포사 살인사건, 총기탈취, 은행강도, 차량 방황 등 14일간 발생한 연쇄범죄의 용의자를 추적했다.

이는 지난 5월25일 방송된 ‘대구 총포사 살인 사건’의 후속이다. 당시 방송은 목격자의 제보를 토대로 완성된 몽타주를 공개했다. 또한 범인은 경상도 말투에 남성용 스킨 냄새가 나고, 칼과 총을 잘 다루는 특징이 있다고 전했다.

방송 후 전국 각지에서 몽타주의 주인공을 안다는 제보가 쏟아졌다. 제작진은 고민 끝에 제보자들을 만나 그들이 지목한 인물들을 일일이 만나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첫 번째 제보자는 한 남자의 사진을 건넸고 사진 속 인물은 몽타주와 흡사했다. 제보자는 “총을 잘 쓰고 총포사를 운영하며 고향이 대구라는 것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사진 속 남성을 만났다. 남성은 사격 대표팀 감독이었다. 남성은 “기분이 나쁘다”며 “은행 강도를 할 정도로 못 살았나. 총포사까지 털어서 할 게 뭐가 있냐”고 말했다.

제작진은 또 다른 제보자의 증언을 토대로 30년 넘게 사냥을 하고 있다는 남성을 찾았다. 이 남성도 “당황스럽다”며 “2002년 스킨스쿠버도 하고 말도 타고 다녔다. 생전에 듣지 못한 은행 강도 얘기를 하니 기도 안 찬다”며 황당해 했다. 당시 이미 수십억 원의 자산가였고 취미 활동 중 하나로 사냥을 했었다는 남성은 범인과 거리가 멀었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갈 무렵 익숙한 번호로 제작진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당사자는 사건 당일 유일한 목격자였던 박하정(가명)씨다. 고심 끝에 제작진에게 연락했다는 박씨는 정확한 시기와 상호명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배달 온 회를 받기 위해 문을 연 순간 몽타주와 닮은 남성의 얼굴을 보고 움직일 수 없었다고 했다. 짧은 머리에 가르마까지, 착각이라고 보기엔 남자의 외모가 2001년 당시 마주친 범인과 너무 닮아 있었다고 했다.

이에 제작진은 최면을 통해 목격자의 기억을 더욱 구체화 시켰다. 최면이 걸린 동안 박씨는 2001년 목격한 상황을 먼저 상세히 말했고 이후 2008년 두 번째 마주친 상황에 대해 언급하며 두려워했다. 박씨는 “혼자 TV를 보고 있고 걸어 나갔다. 문을 열었다”며 “얼굴에 광이 난다. 얼굴이 무섭다. 검은 봉투를 받았다. 1만2000원을 줬다. 닮았다 둘이. 깨워달라. 깨워달라”고 외쳤다. 최면에서 깨어난 박씨는 “내가 이 사람을 또 마주칠 수 있다는 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했다”며 “내 느낌엔 99% 거의 같다고 본다”고 했다.

제작진은 2008년 당시 회 배달을 했던 곳을 찾아 몽타주 주인공의 흔적을 찾았다. 이웃들은 식당을 떠올리며 “사장이 직접 배달을 했다”며 “몽타주와 닮았다. 잘 생겼다. 이렇게 꾸미기를 좋아했다. 남자답고 어깨도 넓었다”며 횟집 사장 이모씨를 지목했다. 제작진은 경상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이씨와 만났다. 그는 20여 년 전 동네 친구들과 멧돼지 사냥을 즐겼고 독학으로 회 뜨는 법을 배웠으며 소발골에도 능하다고 했다.

제작진은 고민 끝에 이씨를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이씨는 제작진의 말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앞서 지목된 사람들과는 달리 황당하다며 억울해하거나 범인이 아니라는 취지의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않았다. 2001년 당시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 이씨는 30년간 자신이 했던 업종을 설명하면서 당시 대구 쪽으로 간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를 본 전문가들인 이씨의 진술이 ‘회피형’이라며 특이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작진은 전문가들의 말을 토대로 이씨의 주변을 조사했고 과거 사업 투자를 명목으로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아 징역형을 살았으며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씨의 지인의 결정적 증언도 있었다. 지인은 “전화가 왔는데 사람을 죽였다고 하더라. 어디냐고 하니 산에 숨어 있다고 해 놀란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은 경찰에 신고까지 접수됐었다. 제작진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을 찾아 상황을 물었다. 이에 경찰은 “산으로 올라가 사람을 찾았는데 확인하니 술 먹고 헛소리를 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건이 종결됐다”고 말했다.

이때 이씨가 제작진에게 전화를 해 “난 그런 거 모른다. 당시 대구에 간 적도 없다”며 취재를 멈추라고 했다. 지인에게 사람을 죽였다고 한 말에 대해서 이씨는 “살인한 적 없다. 괴로워서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한 거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씨의 지인은 “미친놈이 아닌 이상 그런 걸 장난으로 하겠냐”고 말했다.

총포사 사장의 가족들은 지금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의 아들은 “어머니는 범인이 잡히는 걸 더 무서워한다”며 “잡아도 증거가 없으면 또 풀려나올 수 있고 그러면 우리는 원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범인이 다시 와서 해코지할까 봐 너무 무섭다”고 했다. 경찰은 이 씨뿐 아니라 제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방송을 통해 전했다. 제작진도 추가적인 제보를 부탁하며 “잡히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이 사건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며 범인의 자수를 권했다.

방송 직후 시청자들은 이씨의 수상한 행적들을 나열하며 의심하고 있다. 아울러 “범인 거의 다 잡았다”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18년간 해결하지 못한 미제사건을 그알싶 제작진이 해결하고 있다” “방송 보는 내내 소름돋았다” “레전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시청률도 지난주에 비해 1.6%포인트 상승해 7.2%를 기록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장기미제 사건을 집중추적한 적은 많지만 이처럼 용의자를 특정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네티즌들도 '레전드'라며 칭송할 정도로, 미디어의 힘으로 미제사건의 범인을 끝까지 추적하는 것이 놀랍다는 반응들이다. 

 

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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