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행보가 연일 관심을 모은다. 일본 수출규제가 터지고 곧바로 심각한 표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장면은 국민들에게 위기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한 퍼포먼스였다. 삼성의 위기가 곧 대한민국의 위기라는 등식이 있을 정도로 삼성이 한국 경제에 차지하는 부분은 지대하다. 이재용 부회장이 정부도 하지 못하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책 마련을 위해 긴급히 일본으로 향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민간 특사'라는 말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는 또 다른 이면이 있다. 이 부회장이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일본 긴급 출국사실을 슬쩍 흘리는 것도 '이 부회장이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한 게 아니냐는 세간의 입방아도 있었다. 최순실 사건으로 인신 구속이라도 되는 날이면 이 부회장으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다. 구속만은 피하려면 그가 우리 경제에 꼭 필요하고 무엇보다 일본 경제보복 정국에서 '민간영역의 해결사' 역할에 꼭 필요하다는 여론이 필요하다. 삼성으로선 꼭 그렇게 만드는 것보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있을 것이다. 

“장마네요(梅雨ですね).”  지난 7일 일본 하네다공항에 내린 이재용(51) 삼성전자 부회장은 짧은 한마디를 남겼다. 일본 취재진이 수출 규제에 대한 영향 등을 묻자 나온 말이었다. 우산이 있어도 비에 흠뻑 젖을 수밖에 없고 그저 그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때. 삼성이 처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며칠 만에 부메랑으로 다가올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부터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폴리이미드, 리지스트 등의 수출 규제에 돌입한 데 이어 한국 을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를간소화하 는 우방 명단)에서 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스마트폰과TV, 반도체등제조에 필수적인 품목의 공급이 막힌 것이다. 삼성 입장에선 뼈 아픈 타격이다.

실제 그룹 안팎으로 위험신호가 켜진 것도 맞는다. 삼성전자는 지난 5일 2분기 연결기준 매출 56조원, 영업이익 6조 5000억원을 올릴 것으로 잠정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 은 4.24%, 영업이익은 56.29% 줄어든 수치다. 반도체 등 주력 사업 부진에 일본의 수출규제, 미중무역갈등과 같은 불확실한 대외 악재가 겹친 셈이다.

위기가 심해질수록 이 부회장 역할은 두드러졌다. 그는 일본 출장 탓에 10일 있었던 대통령과 기업인 간담회에 불참했다. 12일 귀국해선 곧바로 휴일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주문한 것이 공개됐다. 그의 일본 출장 후 삼성이 핵심 소재에 대한 긴 급물량을 확보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문제는 이 부회장에 대한 지지가 늘수록,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는점이다. 한쪽에 ‘구원투수’라는 수식어가붙을 때 다른쪽엔 ‘무능’이란 키워드가 자리했다. 야당에선 “개별 기업 인식이 국가인식을 뛰어넘고 대처방안도 글로벌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역할이 바뀌어도 한참 바뀐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 달가울 리 없고, 삼성도 불편하긴 마찬가지.

한쪽에선 ‘장마’ 표현을 문제삼는 이야기도 나왔다. 원망의 대상이 누군지를 두고 불필요한 해석을 낳는 말이란 것이다. 위기 시 총수의 바쁜 행보는 당연하지만 과거와 달리 언론노출이 잦았던 것도 의혹을 샀다. 삼성이 잔뜩 움츠린 것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 회계 관련 검찰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이 부회장 이 언제든 영어의 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분식회계혐의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과 맞닿아 있다. 제일모직과 옛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 가치가 부풀려져 모 회사였던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최대주주. 회계처리, 비상장기업에 대한 가치 산정 등 다툴 부분은 있지만, 검찰이 수사의 끈을 느슨하게 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삼성 바이오 임직원 8명이 구속됐다. 검찰 안팎에선 최지성 전 부회장의 소환시기를 조율하고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다음은 이 부회장 차례다. 최근 서초동에선 여론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검찰 입장에서 ‘수사가 본류에서 벗어났다’거나‘ '수사 피로감’과 관련한 지적은 아픈 부분이다. 검찰이 삼성바이오관련 수사를 시작한 게 지난해 12월이다. 수사팀 대부분이 조만간 있을 검찰인사로 변경되는 변수도 있다. 수사의지와 강도는 변하지 않는다지만,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최근 이 부회장의활약과 맞물려 삼성측이 여론전을 하고 있다는 시각이 검찰 안팎에 있다. 삼성 입장에선 이 역시 부담이다. 삼성과 검찰은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 등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검찰이 수사 본류인 분식 회계 혐의로 삼성 임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과는 구속영장 기각이었다. 검찰 수사에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검찰의 빅 피처에 대한 수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의 동분서주 위기경영 관리 퍼포먼스가 효과를 보고 있다는 달갑잖은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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