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B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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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살인마 이춘재의 진짜 얼굴을 파헤쳤다.

10월 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2부가 공개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특정된 후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던 이춘재가 돌연 입장을 바꿔 자신이 범인임을 자극했다. 사건의 시작은 86년 9월부터다. 너무도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지만 지난 33년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악마, 그가 바로 이춘재였다. 하지만 이춘재는 짐작보다 더 많은 악행을 벌여왔던 것으로 보인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외에 5건의 추가 사건을 자백한 것이다.도저히 믿어지지 않은 소식은 이춘재가 나고 자란 마을에도 닿았다. 마을 주민들은 "뉴스 안 봤다"며 말을 아꼈다. 어떤 뉴스도 보지 않았다고 했다. 충격에 빠진 것은 오래전부터 이춘재를 알고 지낸 지인들도 마찬가지다. 군대 동기는 "얘 알던 사람들은 이해 안 될 수 밖에 없다. '어이, 착했는데' 이렇게 나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도소 지인은 "순박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이미지였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거 일이 잘못되거나 그러면 금방 괜찮아지는데 사람한테 꽂히면 멘탈이 약한 것 같더라. 사람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면 표정이 싹 바뀌었다"고 말했다. 고교 동창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 같았다.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얼굴에 보였다. 투명 인간처럼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1994년, 이춘재의 처제 살인사건의 최초 신고자 유모씨는 "그날 눈이 왔었다. 우리 집사람이 청소하다 천막이 들렸다"고 말했다. 천막에 쌓인 눈을 치우던 유씨의 아내는 사람의 발을 발견했다. 기묘한 형태의 시신이었다. 머리에 비닐봉지가 써져 있었고 몸은 찢겨진 속옷으로 결박돼 있었다. 몸은 스타킹, 가방 등 피해자 물품으로 칭칭 감긴채였다. 성폭행을 당한 뒤 숨진 피해자 머리에는 깊은 상처가 남아있었다. 둔기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피해자의 목을 졸라 목숨을 앗아간 잔혹한 흔적도 있었다. 그녀가 숨진 채 발견되기 이틀 전 이춘재는 경찰서를 직접 찾아 처제 실종신고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처제가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에도 유독 담담했던 이춘재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춘재를 조사한 결과 그의 집에서 숨진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됐다. 그는그제야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19살 처제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피해자의 물품으로 몸을 결박하고 아들의 유모차에 시신을 실어 유기한 것이다.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교도소에서 20여년째 복역 중이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이춘재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임을 알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춘재는 화성연쇄살인사건 9건은 물론 5건의 추가 살인사건까지 자백한 상태다. 권일용 교수는 "처제 사건이 제일 이상하다. 수법도 허술하다. 자기를 신고하는 과정, 시신을 유기하는 거리나 방법이 너무 허술하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저질러온 사람이라고 수사팀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창원 의원은 "내가 주목한건 마지막 질문 응답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으니 놀라운 답변이 나온다. '모든 사람에게 잘못했습니다' 이런 표현이 나온다. 이 문장 속에는 화성사건을 포함한 모든 자신의 범죄가 이 처벌로 다 끝난다고 내면에서 우러나왔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춘재의 자백 이후에도 남아있는 의문은 많다. 그는 어떤 인물이며, 왜 이토록 잔인한 범행을 저질렀던 것일까.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검거된 그는 법의 심판을 받는 그 순간까지 수차례 말을 바꿨다고 한다. 형사의 협박, 강요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는 주장을 한 것. 이춘재의 증언에 따르면 아내가 가출한 뒤 본가가 있는 화성으로 이사가기로 한 상황에서 처제가 이사물품 목록 정리를 도와주러 왔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처제가 집을 나서려 했고 이 과정에서 순간적 욕정이 생겨 강간을 했다고 했다. 그는 조사 내내 사전에 계획된 범죄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숨진 처제 몸에는 그녀의 혈액과 위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됐다. 유성호 교수는 "이걸 독성 농도까지 먹인게 확인된다. 20알 정도 먹인 것 같다"고 밝혔다. 박지선 교수는 "순간적 욕정으로 인해 넘어떠렸다고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수면제 수십알을 준비한 사람이다. 본인의 범행이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도 말로, 신체로 어떻게 저항했는지 전혀 묘사돼있지 않다. 성관계에 대해서만 상세하게 묘사했다. 실제로 있었던 것보다 날조된 진술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언니 집을 올 때면 오렌지주스를 마신 뒤 손을 씻는 습관이 있었다는 피해자. 이를 알고 있던 이춘재가 주스병에 대량의 수면제를 넣어뒀던 것이다. 이후 이춘재는 다시 말을 바꿨다. 살인만큼은 우발적이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처제 살해 후 그가 보인 행동은 매우 의아하다. 경찰에 전화해 자수하는 대신 식탁에서 물을 마셨다. 우발적이라기엔 그가 시신을 유기하기까지의 시간은 매우 짧았다. 이춘재의 계획은 성공했다. 1,2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대법원에서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살인이 우발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권일용 교수는 "정남규의 끔찍한 얘기 중 하나가 그런 얘길 했다. 목을 졸라 살해할 때 피해자가 정말 애절한 눈빛으로 날 보는게 좋았다 했다. 그게 이춘재와 유사한 특징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춘재의 마을 지인들은 이춘재에 대한 믿음을 보였다. 이춘재 마을 주민들은 이춘재의 처제살인사건에 대해 "오죽하면 그랬겠나. 여편네가 바람펴서 도망갔대. 그래서 처제를 죽였다고 했다"고 마을에서 돌았던 소문을 공개했다. 또다른 주민은 "색시가 도망가고 없으니까 '언니 어디있냐' 한거다. 모른다고 잡아뗐을거 아니냐. 일시적인 감정으로 그랬을거 같다. 뻔하잖아. 가만히 있는 사람 죽었겠냐"고 말했다. 또 "누명을 썼더라", "사람 한명 죽인건데 뭐 그렇게 대단해서 안 내보내주느냐고 얘기한다"며 이춘재를 두둔했다.

(사진=SB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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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이춘재의 거주지는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로 화성연쇄살인사건 대부분이 그의 집 반경 3km 이내에서 벌어졌다. 30년 가까이 화성에서 살았던 이춘재에 대해 동네 사람들은 "그때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공부도 잘했고 내성적이었다"고 말했다. 가정 폭력이나 학대 같은 집안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시작된건 1986년 9월이다. 같은 해 1월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이춘재. 군대에서의 성폭행 경험 등이 범행의 촉매가 된 것은 아닐까. 전문가는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자들이 자기가 수치스러운 일을 당했기 때문에 자존감을 찾고자 그러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군대 동기는 "포악한 성격이 군대에서 나왔다면 군대 사고가 먼저 났을거다. 그래서 희한하다 생각하는거다"고 말했다. 군대 내 성추행이나 성폭행 여부에 대해 "사병이 사십몇명이고 하사관급이 열몇명이 있었다. 기수별로 나가는 군대 생활을 했기 때문에 (성추행 같은건) 없었다"고 말했다.

고교 동창은 "착한 친구. 말수도 전혀 없고 유령 같은 친구였다. 한마디도 안 한 것 같다. 내 기억엔 한마디도 안한. 걔 목소리도 모른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우리 때는 타지에서 오는 학생들을 왕따시켰다. 무시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화성에서 나고 자라 수원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표창원 의원은 "성장 과정 내내 위축, 자존감 부족, 남성성, 물리력에 대한 열등감, 복종하는 모습, 순종하는 모습이 생활에 습성화 돼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내면엔 분노, 공격성, 가능하면 널 때려죽일거야 하는 것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성격은 이춘재가 오랫동안 잡히지 않은 이유가 되기도 했다. 당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 대상자는 2만여명이 넘었다. 유령처럼 존재감이 없었던 이춘재 역시 조사를 받았으나 이내 풀려났던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은 주로 여자들에게 질척거리거나 말썽을 잘 일으키는 사람들이었다. 용의자 특성에서 완전히 빠져나간 것. 검거되지 않는 동안 이춘재의 범행은 더욱 가학적으로 변해갔다. 박지선 교수는 "성적인 목적으로 범행을 시작했고 범행이 진행되며 액살에서 교살로 넘어가고 피해자에게 잔혹해지는, 잔혹하고 가학적인 성적살인범까지의 행태를 보인다"고 말했다.

야외에서 성폭행과 살인을 저질렀던 이춘재는 처제에게는 수면유도제까지 먹였다. 항거불능상태로 만든 뒤 야외에서 이루지 못한 비뚤어진 욕망을 이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또 이춘재 가까이에 또다른 피해자가 있었을 것으로 분석했다. 92년 그와 결혼했던 아내다. 이춘재 아내를 만났던 형사는 "울면서 조사를 받았다. 강제로 성행위를 시킨다든지 구타 당해서 하혈까지 할 정도였다. 조사 받는 내내 울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집에 가는 자체가 싫었던거다. 고통이 얼마나 컸겠냐"고 밝혔다. 전문가는 "상대방을 통제하는 것에서 자존감을 느끼는 큰 타입이라고 본다. 피해자를 통제하고 수면제, 결박이 그런 맥락이다"고 설명했다.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한 채 잔혹한 범죄를 태연히 저지른 이춘재. 가족들은 그의 성향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춘재 어머니는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다. 1,2년도 아니고 20년이 다 된다. 거기 들어가서 이팔청춘 다 바쳤다. 그런데 그거를 진작 못 밝히고 왜 이제와서 그러냐. 고분고분하고 말 잘듣고 군대 잘 갔다와 직장 잘 다녀, 용돈 줘도 쓰지도 않는 착한 아들이었다"고 말했다. 처제살인사건에 대해 이춘재 어머니는 "사람이 순간적으로 일을 저지르는거 아니냐. 자기 처가 가출했으니까 홧김에 그런거지"라며 "말로 해서가 아니라 모든걸로 볼 때 굉장히 뉘우친다. 반성한다"고 주장했다. 표창원 의원은 "모친에게는 아들에 대한 모범답안이 만들어져 있는거다. 과보호 형태로 나타났을 것이다. 무엇인가 감춰져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처제살인사건 담당 경찰은 "어머니가 면회를 왔다. 교도소에서 수기를 한다. '내 물품, 장판 쪼가리 하나도 다 태워라'라는 말을 했다.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청주에서 화성으로 이사를 준비 중이었던 이춘재는 무엇을 태워 없애려 한걸까. 이춘재 어머니는 이에 대해 "태우라고 했는데 난 하나도 안 태웠다. 걸리적거리니까 그랬겠지. 생각도 안난다. 어떻게 된건지. 어느 시절 얘기인데 지금에 와서. 머리가 깨져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경찰조사에서 이춘재는 자신이 초등학생 때 같은 동네에 살던 누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어린시절 이러한 경험이 그에게 왜곡된 성적 욕구를 심어준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그의 죗값이 덜어지는 일은 아니다. 살림살이 중 태울 수 있는 것은 장판까지 모두 태우라는 그의 말은 그가 털어놓은 또다른 사건과 연관돼 있을지 모른다.

1986년 1월 이춘재 전역 후 화성에서는 성폭행 사건이 수차례 발생했다. 피해자의 물품을 이용해 몸을 결박하고 속옷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던 범행은 그가 자백한 성범죄 중 일부일까.

이춘재와 교도소에 함께 있었던 지인들은 "신창원 정도 됐으면 인정을 하는데 걔는 전혀 그런게 없는 친구다", "착한 형, 모범적인. 남들과 융화 잘 되고 교도관들한테도 잘 했다. 생각조차 못 한 이름이 튀어나와 놀랐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다른 꿈을 꿨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1급 모범수로 종교활동을 성실히 해왔다. 10년 째 이춘재를 면회하고 있다는 법사님 역시 "착실하고 착하다. 난 진짜 안했다고 생각한다"며 이춘재의 범행을 여전히 믿지 않았다. 법사님은 "자기가 (교도소에서) 나가면 주민등록을 우리 집(절)으로 옮기면 사회 적응하라고 돈이 나오는게 있다. 나가면 협조해서 뒤를 좀 밀어달라 했다. 착실히 살아왔으니까 1급 모범수 됐지. 가슴에는 빨리 나오려는 포부가 있었을거다"고 말했다.

딱 한번 이춘재가 화내는 것을 본 적 있다는 교도소 지인은 "사진에 민감했다. 장난으로 3장 보다 이거 좋네요 했는데 화냈다. 평소에 베풀고 그러는데 사진에만 그러니까 좀 예민하네 생각했다. 유독 사진에 집착했다는 것. 교도소 지인은 "하체만 음부가 보이게 있는 사진, 남자 여자가 몸은 안 나와있는데 딱 그 부분만 클로즈업 됐다. 한개는 여자 가슴만 보였다"고 밝혔다. 이수정 교수는 "이춘재에게 여자란 그냥욕정 풀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인격체 이하의 생명체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건 도착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춘재가 살던 지역에 있던 몇개의 미제 사건에서도 이춘재의 범행 수법과 동일해 보이는 사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춘재의 시그니처가 남겨졌지만 범인의 얼굴을 모르는 사건들이다. 여전히 수많은 의문이 그를 향하고 있다. 

(사진=SB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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