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덕의 '올쏘' 연재①] 대한민국의 4대 국난-1편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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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덕의 '올쏘' 연재①] 대한민국의 4대 국난-1편 임진왜란
  • 노현우 기자
  • 승인 2020.01.2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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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한국 역사상 첫번째 국가적 전란이었다. 선조의 피란은 백성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지금도 존경을 받지 못하는 까닭도 역사의 근원을 볼 때 선조의 몰래 피란 DNA가 지금도 그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진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명량'의 포스터.
임진왜란은 한국 역사상 첫번째 국가적 전란이었다. 선조의 피란은 백성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지금도 존경을 받지 못하는 까닭도 역사의 근원을 볼 때 선조의 몰래 피란 DNA가 지금도 그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진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명량'의 포스터.

 

어떤 민족이든 수많은 전쟁과 내란의 부침 속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해왔다. 전쟁으로 나라가 그대로 망한 경우도 있고, 온 국민이 합심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도 많다. 우리 민족 역사를 돌이켜 보면, 크게 4번의 국가적 전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위기를 잘 극복해내고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5천년 역사에서 가장 번영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전란과 국가 위기를 비쳐보면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하지 않으면 지금 쌓아올린 경제번영도 모래위의 성에 불과할 뿐이다.

 

임진왜란은 민족사에서 보면 첫 번째 닥친 국가적인 전란으로서 우리에게 국가의 역할과 존재에 대한 개념과 소중함을 일깨워준 대사변이었다. 임진왜란은 조선 선조 25년(1592년 5월 23일)부터 31년(1598년 12월 16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와 명나라 대 일본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이 전쟁은 조선의 국내정치뿐 아니라 명나라와 일본 등 16~17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를 뒤흔든 국제전이었다. 지금의 한국 중국 일본이 첫 번째로 얽히고 설켜 일합을 겨뤘던 삼국지이기도 했다.

 

먼저 조선은 이 전쟁으로 그나마 미미하던 국운마저 쇠퇴기로 접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의 주무대였던 조선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다. 선조가 백성들을 버리고 피란을 간 것은 한국 사회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무너지게 되는 첫 번째 치욕스런 사건이었다. 선조의 이 피란은 단순한 ‘도망’ 이상의 뜻을 한국 사회에 내포하고 있다. 바로 무너진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였다.

 

이때 임금을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이 결사항전으로 전쟁에 임했다면 그들의 희생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국가위기가 닥쳤을 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조 피란의 DNA는 결국 6.25 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이 몰래 부산으로 피란을 가는 지도층의 폐습으로 이어졌고 지금도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자신을 희생하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구태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부산진순절도 보물 391호. 1760년, 변박 개모, 임진왜란 개전 초인 1592년 4월 부산진에 침입한 왜군에 맞서 부산진첨절제사 정발 이하 군.민이 최후까지 항전하는 광경이다.
부산진순절도 보물 391호. 1760년, 변박 개모, 임진왜란 개전 초인 1592년 4월 부산진에 침입한 왜군에 맞서 부산진첨절제사 정발 이하 군.민이 최후까지 항전하는 광경이다.

 

임진왜란 뒤 북방 여진족들이 조선과 명의 통치에서 떨어져나면서 조선은 정묘호란, 병자호란까지 겪으며 국가 시스템이 궤멸 직전에 이르렀다. 명나라도 여파가 컸다. 이자성의 내란과 북방의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에게 나라가 결국 망해버렸다.

 

반면 일본은 임진왜란을 통해 천년 가까이 이어진 열도의 고립을 깨고 처음으로 동북아시아에 그들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그 여세를 몰아 메이지 유신과 태평양 전쟁까지 거침없이 대국의 길로 내달렸다. 일본은 임진왜란에서 공식적으로 패배했지만 각종 인적 물적 자원을 조선으로부터 약탈해 도자기 제조 기술이나 금속활자의 약탈, 성리학 유입 등 문화적 자양분을 얻게 된다. 바로 이 문화적 토양이 그들이 군사대국으로 가는 결정적인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임진왜란은 단기적으로 일본에게 내란과 분열을 낳았지만, 조선에게서 얻은 문화적 자양분을 기반으로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군사대국으로 향하는 결정적 기회도 잡게 된다.

 

일본은 전란이 끝난 지 단 2년 만에 역사상 최대 규모의 내전을 벌이기도 했고 임진왜란의 주축을 맡았던 사쓰마 번은 단독으로 류큐 왕국을 복속시키는 등 오히려 국력이 팽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에도 막부가 들어서고 경제 활성화 등에 따라 순식간에 발전을 거듭하며 겐로쿠 시대 등의 전성기에 들어선다. 관련 인구 통계를 보면 임진왜란 당시 1700만 명가량이던 일본 인구는 에도 시대 이후 몇 십 년 만에 2800만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반면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큰 타격을 입고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중흥기 도달이 가능했다.

 

임진왜란은 명나라 조선 일본에 각기 영향을 미쳤다. 명은 동아시아에서 절대적 패권 국가로 군림하다가 임진왜란에서 타격을 입고 서서히 쇠락해갔다. 조선도 동북아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나 200년간의 오랜 평화로 국가 기강이 약화돼 있던 상태에서 지도층의 도덕성 몰락과 전란의 혼란으로 인해 사회풍속도 급격히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습성을 띠게 됐다. 하지만 일본은 오랜 전쟁으로 국가가 피폐해진 것이 아니라 국력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동북아에서 한중의 쇠퇴와 일본의 융성을 알리는 첫 번째 신호탄이 바로 임진왜란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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