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 칼럼] "386 정치인은 각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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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발탄 칼럼] "386 정치인은 각성하라"
  • 노현우 기자
  • 승인 2020.02.28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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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성향 월간지 ≪말≫지가 1999년 5월호에 낸 별책부록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
진보성향 월간지 ≪말≫지가 1999년 5월호에 낸 별책부록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

 

 

지금 민주당 내의 386세대 정치인들은 그 뿌리가 깊다.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말 대학가에 민족사상연구회라는 단체가 결성되었다가 불법단체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비슷한 이름으로 민족사상비교연구회라는 단체가 결성되어 활동하였다. 이 단체가 소위 말하는 종북 좌파활동의 시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근원을 따져보면 4.19 학생의거를 주도한 운동권 학생들이 단초를 제공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4.19는 3.15 부정선거가 기폭제가 되었다. 그 이후 학생들은 “가자 판문점으로”라는 구호를 앞세우고 남북간의 정치협상을 통해 통일을 이루어 보겠다는 순수한 의도를 가졌다. 이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피비린내가 나는 6.25 전쟁이 끝난 지 몇 년이 지났다고 북한과 평화적인 회담을 하면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순진무구한 상상력에 말문이 막힌다. 그 당시에는 운동권 학생들 중에 극히 일부만 정치권으로 흡수되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일반 시민으로 사회생활을 했다. 지금과 같이 운동권 출신들이 당연한 듯 정치에 입문하고 재선 3선 금배지를 달며 권력을 누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제 3공화국 당시의 순수한 학생들은 한일협정 반대, 월남파병 반대, 학도호국단 실시 반대, 3선개헌 반대 그리고 유신헌법 반대 등 무수하게 많은 사건들에 대해 열정과 헌신으로 투쟁을 했다. 이때만 해도 학생운동은 정치에 오염되지 않았고, 학생들은 그들의 역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사회가 급격하게 요동칠 때 숨죽이며 살고 있던 진보를 표방했던 좌파 정치세력들이 발호하기 시작했다. 좌파세력은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극렬하게 반대운동을 했지만 북한의 소행으로 알려진 그 어떤 사건에도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편향성을 노정했다.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 삼척 울진의 간첩 침투 사건, 부산 다대포 간첩 침투 사건 그리고 휴전선 땅굴 침투 사건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국가테러 사건이 발생했지만 좌파세력은 침묵하고 외면했다.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386세대는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헌신한 세대이자 2019년 현재 한국의 기득권이다. 이들은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권력을 손에 넣은 뒤 장기집권하는 '불로장생의 세대'가 됐다. 사진은 80년대 민주화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중인 운동권 대학생들.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386세대는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헌신한 세대이자 2019년 현재 한국의 기득권이다. 이들은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권력을 손에 넣은 뒤 장기집권하는 '불로장생의 세대'가 됐다. 사진은 80년대 민주화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중인 운동권 대학생들.

 

일반 시민들은 생계를 꾸려가기 급급했고,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거나 대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공간을 경제적인 책무감에서 살짝 비켜선 젊은이들이 메웠다. 대학생 연합을 만들어 불법적으로 북한에 다녀온 것을 자랑처럼 말하고 과시했다. 그들은 영웅이 되어 있었다.

학생운동을 하다 체포되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수감되면서 자랑스럽게 손을 웃들고 미소도 크게 지었다. 학생운동을 한다면 적어도 한번쯤은 교도소에 갔다 와야 큰소리를 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교도소 수감이 하나의 훈장처럼 여겨졌고 출소하면 영웅 대접을 받았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범생이’라 놀림을 당하면서 기를 펴지 못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공안통치로 권력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북한에서 제공해준 잠수정을 타고 평양에 다녀왔다면 겉으로 내색하지 못했지만 소속된 조직 내에서는 그야말로 영웅적인 대접을 받았다. 운동권의 분위기도 ‘친북적’이었지만 당시 정권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순진한, 아니 세상 물정에 어두운 어리석은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하고 나서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를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김일성과 남북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해 국민들의 허파에 바람을 잔뜩 넣었다(김일성의 돌연한 사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민주화 쟁취의 주역으로 지목받아 정치권에 입성한 일부 엘리트만이 아니라, 연말 회식으로 영화 을 관람하고 눈시울을 적시며 영화관을 나온 직장 상사들과, 힘들었던 ‘우리 때’를 강조하며 아랫세대에게 손가락질하는 꼰대들 모두가 386세대로 묶인다. 사진은 영화 ‘1987’ 한 장면.
민주화 쟁취의 주역으로 지목받아 정치권에 입성한 일부 엘리트만이 아니라, 연말 회식으로 영화 을 관람하고 눈시울을 적시며 영화관을 나온 직장 상사들과, 힘들었던 ‘우리 때’를 강조하며 아랫세대에게 손가락질하는 꼰대들 모두가 386세대로 묶인다. 사진은 영화 ‘1987’ 한 장면.

 

김영삼 대통령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라도 전향만 한다면 우리 국민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천명했다. 그런데 그 전향했다는 인사들과 같이 활동했던 다른 사람들은 결코 전향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순진했다 할 수 있을까? 순진했던 것이 아니라 세상 물정에 어두운, 어리석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이때부터 운동권 출신들은 권력의 달콤한 냄새를 맡았던 것이 아닐까?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세력을 확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젊은 피 수혈 운운하면서 운동권 세력을 대거 정치권으로 불러들였다. 운동권 출신들은 햇볕정책 운운하는 동안 약간은 감각적으로 느껴왔던 권력의 맛을 제대로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거의 지하에서만 살았으니 실생활의 경험이 없어 그야말로 장에 나온 촌닭처럼 정신없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때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등을 결성해서 활동했다. 이때 386 세력들은, 국민들은 아픈 감성만 쓰다듬어주면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우두머리가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양과 같은 어리석은 존재인 것을 체험했으리라.

그래도 어디 세상살이가 책 몇 권 읽은 지식과 경험으로 마음대로 운위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두 보수정권이 집권해있는 10년 동안 많이 보고 듣고 배웠을 것이고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에 대한 이해와 인식도 커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정부와 기업에 얼마나 많은 꿀이 담겨있는지 그 실상도 파악했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 당시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집단에게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부르주아 계급들이 이루어 놓은 곳에 들어가 그 자양분을 파먹고 살면 된다.”

 

광우병 소고기 수입에 항의하는 촛불집회 모습.
광우병 소고기 수입에 항의하는 촛불집회 모습.

 

이명박 정권 당시 국민들과 일부 극좌 세력을 동원해서 광우병 사태를 일파만파 번지게 했을 때 집권세력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쾌재를 불렀으리라. 박근혜 정권 당시에는 세월호가 침몰되어 꽃 같은 학생들이 아까운 생명을 잃은 불행한 사건을 정권타도의 빌미로 삼았지 않느냐? 이런 행태를 소위 386세대로 정치권이나 민간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누가 어떤 식으로, 어리석은 국민들에게 광화문 촛불집회에 언제 어디로 모여라 하고 지시하고 독려했는지 스스로 잘 알 것이다.

386세대 정치인들이 부르짖었던 ‘민주화’가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386 정치인들이 금과옥조처럼 말하고 있는 ‘평등과 공정 그리고 정의’의 개념은 정립된 것인가?

386세대는 팔팔하고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에 너무나 편협한 분야에만 집중해서 공부했기 때문에 세상물정에 너무 어둡다. 그리고 서양의 철학자 혹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나타냈을 뿐인 진보주의니 사회주의 혹은 더 심하게 말하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에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버렸던 것은 아닐까 싶다.

숲은 보지 않고 나무 한 그루에만 집착했으니 주위에 무성한 숲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지도 못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이제는 386 정치인들도 나이가 들면서 경륜도 쌓았을 것이니 자신의 삶 전체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는 것은 어떨까?

과거 없는 현재 없고 현재 없는 미래는 없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요량은 없이 “적폐 청산” 운운하면서 국민들을 분열과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것이 진정한 애국, 애족인지 묻고 싶다. 386 정치인들이 스스로 재충전하지 않으면 멀지 않은 미래에 부메랑이 되어 그들에게 되돌아올 것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權不十年(권불십년)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규덕/더하우영성경영연구소 고문


김규덕 선생은 부산대 상대를 졸업하고(1976년) 현대중공업 경남기업 롯데기공 등에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혼란을 겪었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해 엎어지고 자빠지기를 반복했다. 불혹이라는 나이 40에 접어틀어 크게 경각심을 느껴 전국 각지를 돌며 선지식을 찾아헤맸으나 옳은 인연을 만나지 못해 마지막이라는 심경으로 산에 들어가 기도한 끝에 큰 지혜를 얻었다. 1996년 이후 영성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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