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 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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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발탄 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한계
  • 노현우 기자
  • 승인 2020.03.05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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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사진=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적인 야망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노무현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현실 정치를 하다보면 약간의 흠집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재인이에게는 절대로 흙탕물이 튕기지 않도록 해라. 그 사람은 정치를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을 했을까. 

문 대통령 본인도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 전 몇번씩이나 '나는 정치를 할 마음이 없고 준비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이명박 대통령의 우유부단함과 박근혜 대통령의 혼란한 집권 시기를 거치며 문 대통령의 주변 측근들이 그를 정치에 입문하도록 부추겼고, 문 대통령도 '나도 대통령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결단을 내린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정치적 야망이 없다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만 하면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해결될 것이라 착각을 했을 것이다. 

대북 경제재제조치가 유엔안보리 결의에 따른 것이라는 걸 몰랐을 리 없었을 텐데, 그것조차 고집만 부리면 만사가 풀릴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나가던 남북관계는 북미관계가 고착되면서 같이 꼬여버렸다. 실무진들을 너무 믿어 그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 보니 앞도 막히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에 빠져버렸다. 

한번 거짓말을 하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자신은 절대로 속일 수 없다. 평등과 정의 그리고 공정만 이야기하면 온 국민들이 환호로 응답하리라 믿었던 것일까. 

집권 초기에는 탄핵으로 최약체가 돼 버린 야당 득을 톡톡히 보았다. 그 뒤 자신도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검찰개혁을 들고나왔다. 무지한 국민들은 그냥 따라올 것이라 판단한 모양인데 “조국 사태“를 계기로 국민들이 문 대통령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막 내뱉는 말들은 말이 아니라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소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자들이 얼마나 거짓과 술수를 동원해 국민들을 속이고 있었는지를 말이다. 

신재생에너지가 지구온난화나 토양오염과 수질오염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하여 탈원전정책을 밀어붙였다. 

코로나19가 창궐하니 그 진원지인 중국인들의 입국을 봉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듣지 않다가 결국 대구경북이 뚫려버렸다. 

무슨 내심이 있고 무엇에 발목을 붙잡혔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는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이 더 황당하다. 

'지금이 초기라면 입국제한도 가능하겠지만 이미 온 나라에 확진자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별 다른 효과가 있을 수 없으니 방역에만 전력을 다하자'는 것이다. 

 

(사진=KBS 캡처)
(사진=KBS 캡처)

 

문재인 대통령은 '무지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우리 경제는 금융대란과 같은 외부의 충격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 아닌데도, 듣도 보도 못한 소득주도 성장정책과 급격한 최저임금의 인상, 근로시간단축 등으로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모르는 심각한 내과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들의 손발을 다 묶어 놓고 마음껏 달리라고 닦달하는 무지한 대통령을 둔 우리 국민들이 불쌍하다. 

국가 재정은 국민들의 혈세로 충당되는 것이지 대통령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지금처럼 국가 예산을 개인 돈을 주머니에서 빼내 사용하듯 아무 곳이나 막 퍼부으면 후일에 그 부담을 우리 젊은이들이 어떻게 감당하라는 건지 생각만해도 괴롭기 짝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 참 나쁜 대통령이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규덕/더하우영성경영연구소 고문

김규덕 선생은 부산대 상대를 졸업하고(1976년) 현대중공업 경남기업 롯데기공 등에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혼란을 겪었다.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해 엎어지고 자빠지기를 반복했다. 불혹이라는 나이 40에 접어틀어 크게 경각심을 느껴 전국 각지를 돌며 선지식을 찾아헤맸으나 옳은 인연을 만나지 못해 마지막이라는 심경으로 산에 들어가 기도한 끝에 큰 지혜를 얻었다. 1996년 이후 영성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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