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간 의료 자원봉사자들. (사진=독자제공)
대구에 간 의료 자원봉사자들. (사진=독자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치료를 위해 전남 목포에서 대구로 자원봉사를 하러 간 의사 S씨는 봉사를 시작한 지 9일째 되는 날에야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쉴 틈 없이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과중한 업무 속에 점심 식사 후 잠시 짬을 내 걷다가 특이한 역 이름을 발견했다. 반야월(半夜月)역이다.

젊을 때 역사학자를 꿈꿨던 S씨는 호기심에 이끌려 지명의 유래를 찾아봤다.

고려 왕건이 후삼국 시대 공산전투(公山戰鬪)에서 견훤에게 크게 패해 퇴각하던 중 날이 저물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수 있었지만, 마침 반달이 훤하게 도주로를 비춰줘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그로부터 지금의 이름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또 당시 왕건이 도주하면서 추격을 따돌리고 숨을 돌린 곳이 지금의 대구 안심(安心)이라고 한다.

S씨는 많은 대구 지명이 이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대구 계산성당에 핀 벚꽃. (사진=독자 제공)
대구 계산성당에 핀 벚꽃. (사진=독자 제공)

 

그는 SNS에 대구에서의 하루하루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S씨의 자원봉사 기간은 3주였다. 보통 2주인데 1주를 연기했다고 한다.

대구로 자원봉사를 하러 간다고 했을 때 만류하던 어머니도 이젠 "당당하게 마치고 오라"고 격려했다.

대구는 S씨가 지명이 품은 숨은 역사를 알게 됐듯이, 코로나가 극복되면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 많다.

동성로에는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시인 이상화의 가옥이 보존돼 있다.

달서구 두류공원에는 '운수좋은 날'의 작가 현진건 문학비도 있다.

일제 강점기 소설가 겸 언론인이던 현진건은 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 재직 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 보도사건으로 구속돼 1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그는 일제와 타협하지 않은 지식인이었다.

이상화 가옥 인근에는 계산동 성당이 있다. 1902년 건축된 영남 최초의 고딕식 건축물이다. 한국전쟁 때도 폭격을 맞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런 볼거리들이 모두 대구 근대화 골목에 있다.

대구 중구청이 시작한 '근대골목투어'는 2008년 대구 도심의 근대문화 공간을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시작됐다.

첫해에는 고작 200여명이 찾는 초라한 상품이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며 대구의 숨은 매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기 전까지 이 투어는 매년 20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는 초대박 내수 여행 상품이었다.

S씨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대구의 공원에는 꽃이 피었다"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듯 매서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곧 회복할 수 있을 듯한 기대감이 들 정도로 화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이놈들 때문에 대구가 활력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대구 시민들과 대한민국 수많은 의료인이 한마음 한뜻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이 상황은 잠깐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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