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국정원 마티즈 사건을 둘러싼 의혹이 재점화 되고 있다. 당시 국정원이 이탈리아의 감청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민간인 사찰 의혹이 제기돼 국정원이 큰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들여온 실무자였던 임모 과장은 그 과정에서 마티즈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임 과장은 2015년 7월 18일 오후 12시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의 한 야산 중턱에서 자신의 마티즈 차량 안에서 번갯불을 피워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까지 발견돼 자살이라며 경찰이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지만 이후 타살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국정원도 이 과정에서 조직적 은폐를 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최근 이 사건을 둘러싸고 임 과장의 휴대폰이 복원되고 가족들도 '얼굴이 상처투성이였다'며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국정원이 조직을 살리기 위해 꼬리를 자른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일부에서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상부의 '지시'를 따랐던 임 과장이 책임을 지기 위해 본인이 사망에까지 이른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세간의 의혹을 정리해봤다.


먼저 가족들은 사건이 터지고 2년여만에 처음으로 임 과장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제기했다. 임씨의 아버지는 최근 CBS 노컷뉴스를 통해 사망 2주기를 앞두고 "이런 자살은 없다"며 억울한 속내를 털어놨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에 상처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놀랐다"며 "몸이 저렇게 당할 정도면 뼈까지 상했을까 걱정돼 오죽하면 감정(부검)을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간단하게 유서 쓰고 잠들게 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왜 몸뚱이에 상처가 있고 얼굴에 안 터진 곳이 없냐"며 "나만 본 것이 아니라 아들 염(시신을 씻고 수의를 입히는 일)을 한 사람들도 대번에 알아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지는 또 "아들은 자살할 성격과 상황이 아니었다"며 "자살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희문 씨 부부는 슬하에 2남 3녀를 뒀지만, 임 과장은 9년 전 세상을 떠난 형을 대신해 장남 노릇을 착실하게 해왔다.


아들의 얼굴에 상처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아들의 시신에 접근하는 것도 차단돼 어머니와 며느리마저 숨진 임 과장을 보지 못했다는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자살을 한 사람의 얼굴에 상처가 났다는 것은 타살의 의혹을 짙게 만드는 간접증거가 되고 있다. 가족들도 시신을 확인하지 못하게 한 것도 그의 시신 외부에 공개하지 못할 결정적 증거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 2015년 국가정보원 해킹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담당하다 목숨을 끊은 임모(45)씨 변사사건에 대해 내사종결했다.





집권여당 추미애 대표도 임과장의 자살 미스터리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적폐청산'의 일환이다. 그는 지난 7월 14일 오전 제주에서 열린 최고의원회의에 참석해 "국정원 직원의 자살이 타살로 의심된다는 한 아버지의 양심선언이 있었다"며 "국정원의 꼬리자르기 방식이 있었다면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차량 안에는 국정원 해킹프로그램 사건이 민간인 사찰과는 무관하다는 내용과 가족에게 전하는 유서가 발견됐다. 추 대표는 이에 대해 "국정원이 스파이앱을 통해 광범위한 사찰을 끊기 위해 극단적 방식의 꼬리자르기를 했다면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진실을 영원히 매장시킬 수는 없다"며 "국정원은 과거 적폐에 대한 철저한 진실규명과 국민적 의혹을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JTBC는 임 과장의 휴대전화를 복원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했다. 임 과장의 휴대전화와 문자, 통화 내용이 복원돼 공개됐는데, 임 과장은 숨지기 직전 사건을 은폐하려던 흔적과 임 과장이 자의적으로 파일을 삭제했다는 유서 내용이 윗선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정황이 다수 포함돼 충격을 주고 있다.


JTBC 뉴스룸은 2015년 발생한 ‘국정원 민간인 사찰 의혹’이 제기된 이탈리아 스마트폰 감청 프로그램을 국내로 들여온 국정원 실무자 임과장의 휴대전화의 문자와 통화 내용으로 복원했다고 17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건이 처음 불거진 2015년 7월6일 저녁 임 과장의 통화 목록엔 나나테크 허손구 이사가 등장한다. 임 과장은 국정원 동료 직원인 이모씨에게 “허 이사가 급하게 전화달라고 한다. 시스템을 오해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시스템 포맷이나 덮어쓰기로 추정돼 은폐 시도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고 JTBC는 추측했다.





또 임 과장이 숨지기 직전 유서에 자의적으로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고 주장한 것과 상반된 정황도 포착됐다. 임 과장이 문제의 해킹 파일을 삭제한 시간은 숨지가 하루 전날인 17일 새벽 1시~3시 사이이며 삭제 직전인 새벽 0시7분에 국정원 직원 최모씨와 이모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씨와는 21초간 통화를 하기도 했다. 파일을 삭제한 17일 저녁 임 과장을 감사실에서 찾는다는 문자와 함께 직원들의 전화가 잇따랐다.


그동안 국정원이 사실 확인 차원에서 전화를 했을 뿐 감찰은 없었다고 해명해왔던 것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특히 이날은 이병호 당시 국정원장이 해킹 파일을 국회에 공개하겠다고 밝힌 날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날 저녁 9시37분엔 직속 상관인 기술개발처 김 모 처장이 “조금만 더 버티면 우리가 이깁니다. 회신사양”라는 문자를 보냈고 임 과장은 다음날인 18일 새벽 1시23분에 “그리고...”라는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김 처장에 보내려다 삭제했다.


임 과장의 휴대전화엔 18일 오전 5시48분 3450원의 카드결제 문자 이후 긴급구조 문자들이 잇따라 수신됐다. 같은날 오후 12시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의 한 야산 중턱에서 자신이 몰던 마티즈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 안에는 번갯불과 유서가 발견됐으며 이를 근거로 경찰은 자살이라고 결론지었다.


당시 임 과장은 이날 오전 4시50분쯤 출근 한다며 집을 나섰다. 임 과장의 아내는 오전 10시쯤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119에 신고했다. 당시 임 과장의 아내가 119에 신고한 것은 국정원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전문가들도 국정원 임 과장의 유서에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2월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임 과장의 자살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는데, 한국 심리 과학센터 공정식 과장과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 등이 임 과장의 유서에서는 상당 부문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정식 과장은 임 과장의 유서는 자살하는 사람의 유서치고는 문장 수가 적다고 언급했으며, 또 자살을 할만한 정서적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수정 교수는 "대테러, 대북공작에 오해를 불러 일으킬 지원해던 자료들을 삭제했다"는 유서 대목을 언급하며 대북 공작 활동만 했다면 사실 자살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건이 이렇게 세간의 의혹으로 확산되자 정치권에서도 이를 재조명하면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5년 국정원 민간인 해킹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직원 임모(당시 45살) 과장이 자살한 사건에 대해서 그동안의 의혹을 총정리 한 것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은 “이런 자살은 없다.” 얼굴을 보면 안다는 임 과장 아버지의 증언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은 국정원 해킹프로그램 사건 그리고 임과장의 죽음. 같이 파헤쳐 봐요~”라며 국정원 직원 죽음 의혹 조사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정 전 의원은 7대 의혹 리스트를 공개했던 사진을 함께 올렸다.




① 고 임과장의 부인이 112 신고 후 취소→취소확인→재신고 한 이유

⓶ 두 번째 소방대원이 ‘거미줄을 치겠다’고 두 번 무전하는 동안 ‘발견했다’ 말이 없었던 이유

⓷ 차량 발견 시간이 11:30분인데 27분 후에 시신을 발견한 이유

⓸ ‘시신 뒷좌석에 발견’ 국회 첫 보고 후 ‘운전석에서 발견’으로 정정 보고한 이유

⓹ (무선 녹취록에 의하면) 경기도 소방본부가 현장 근처에 출동한 이유

⓺ 고 임과장 부인이 집 앞 경찰서 대신 5km 밖 파출소에 신고한 이유

⓻ 고 임과장의 마티즈 차량의 폐차를 서두른 이유


국정원은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이다. 해외에서 암약하는 국정원 요원들은 위험한 작전에 노출돼 있고 때로는 사망에까지 이르지만 보안을 이유로 그런 사실을 공개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국정원 요원들의 말 못할 속사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국가의 안보와 직결된 '작전'이 아닌 조직 상관의 개인적 안위 등을 이유로 부하 직원에 대해 꼬리자르기를 하거나 손쉽게 '제거 작전'을 펼친다면 이는 명백한 월권행위이자 범법행위다. 마티즈 임과장 자살 의혹은 지금까지 숱한 미스터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국정원이 적폐청산 차원에서 과감한 제살 도려내기의 실증적 사례를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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