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치료감호 탈주해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김선용(34)씨에게 법원이 성충동 약물치료(일명 '화학적

              거세') 선고했다.


정부가 성폭력 관련 범죄에 대한 초강경 칼을 뽑아들었다. 정부는 지난 18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성폭력 범죄자의 성 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심의, 의결했다. 의결된 개정안에 따르면 성 충동 약물 치료 대상 범죄에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 ▷강도강간 미수죄 ▷아동·청소년 강간 등 상해 치사죄가 추가됐다. 성 충동 약물치료는 성도착증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성 기능을 일정 기간 약화 또는 정상화하는 치료로 이른바 ‘화학적 거세’로 불린다.


이번 법률 개정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몰카범 역시 죄질이 나쁠 경우 화학적 거세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너무 과한 처벌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몰카범에 대해 강도높은 제재안을 꺼내 든 것은 각종 단속에도 불구하고 몰카 범죄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몰카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으로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검거된 사례는 2011년 전국 1344건에서 꾸준히 늘어 2015년 7430건으로 급증했다.


사실 최근 들어 몰카 범죄가 갈수록 빈번해지고, 또 카메라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은밀해지면서 국민 불안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처벌은 약한 편이다. 현행법상 몰카범에게는 최대 7년의 징역을 내릴 수 있게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처분을 강화할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돼왔다. 초범일 경우 대부분 그렇게 풀려난다는 것이다. 또 몰카 범죄의 경우 절반 가량이 2회 이상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고려해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 처벌 가운데 화학적 거세도 포함되는데 이는 약물을 투여해서 성 충동을 억제하는 방안을 말한다. 이는 성 기능을 완전히 없애는 물리적 거세와는 다른 ‘억제’의 개념이다. 주로 전립선 암을 치료하는데 쓰이는 약물을 통해 성욕을 유발하는 남성호르몬이 생성되는 것을 억제해 성 충동을 낮추는 방식을 말한다. 외국에서는 성범죄자들을 교정하는 방식으로 흔히 사용돼 왔다.


여러 논란 끝에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0년 관련법이 제정됐다. 19세 이상 성인 성폭력범죄자 중에서, 정신과전문의의 진단을 받아 ‘성도착증 환자’로 판명되는 경우, 그러니까 단순히 처벌만 해서는 앞으로 또 비슷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이런 처분이 내려지게 된다. 의학적 판단에 따라 최대 15년간 주기적으로 성 충동을 억제하는 약물을 맞게 된다.


약물치료 결정은 검찰이 청구해 법원이 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잔혹한 범죄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정신감정도 이뤄진다. 여기서 성도착증이 드러날 경우 형을 구형하며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수강 등과 더불어 약물치료 명령을 청구할 수 있다. 최종 결정은 법원이 하게 된다. 징역형을 받았을 경우 형이 다 끝나고 다시 사회로 나가기 2개월 전부터 집행이 된다. 약물 부작용이나 건강상태를 고려해 2달에 한 번 정도 주기적으로 약물을 투여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약물 투여가 치료인지 처벌인지를 놓고 논란도 많다. 화학적 거세는 사실 강력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그 대책으로 언급돼 왔다. 특히 지난 2008년 말 조두순 사건을 시작으로 김길태, 김수철 사건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성범죄가 연달아 발생하며 2010년 법제화 됐다. 첫 청구가 이뤄진 것은 2012년이다.


처음에는 아동 성범죄자를 대상으로만 이뤄지던 것이, 성폭력치료 프로그램이나 전자발찌가 효과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며 2013년 전체 성범죄자에게로 확대됐다. 국가가 성욕을 제어한다는 것이 사실 헌법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 과도한 개입이라는 논란이 일면서 헌법재판소까지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위한 치료의 개념이고, 영구적으로 성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시적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합헌 판정이 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치료의 개념이라지만 사실상 처벌로 볼 수 있는만큼 이중처벌이 아니냐는 것이다. 여성이나 아동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이뤄지는 문화를 바꾸고 교육을 통해 성폭력을 방지해야지 인간을 너무 생물학적 동물로 보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 인간의 본능을 물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제한할 수 있느냐는 논쟁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화학적 거세의 대상이 되는 범죄를 더 확대하고 나섰다. 범죄인의 인격에 대한 우려보다 범죄예방 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그 처벌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강력한 처벌을 하지 못하던 몰카범죄도 이번에 화학적 거세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또 기존에는 성폭력범죄자에게만 적용되던 것을 성폭력 범죄 ‘미수범’에게도 약물치료가 내려질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조항도 함께 추가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5년 화학적 거세에 대한 합헌 판정을 내렸지만, 일부 조항에 대해서는 헌법 불합치 판단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1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고 했을 때, 형을 처음 받았을 때는 성도착증세를 보였지만 10년 형기를 다 채우고 나올 때쯤에는 이런 증상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전까지는 이런 경우에도 어쨌든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다시 검토해달라고 신청을 할 수 있는 조항이 생겼다.


사실 화학적거세 자체가 논란이 많은데다, 몰카는 분명히 범죄이긴 하지만 화학적 거세까지 필요하느냐는 반론이 정부개정안 통과 직후부터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앞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두고 치열한 찬반 논쟁이 있을 전망이다.


몰카에 대한 개념도 우리나라는 모호한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몰래 촬영당한 피해자가 기분이 나쁘더라도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특정 신체 부위를 찍지 않고 옷을 입은 몸 전체를 찍을 경우엔 처벌 대상에서 제외돼 논란이 되고 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는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ㆍ판매ㆍ임대ㆍ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ㆍ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까지 따라가 몰래 여성의 상반신을 찍어 기소된 남성에 대해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사진 속 여성의 모습이 얼굴과 손 외에는 신체 노출이 없다는 점을 들어 “피해자와 같은 연령대의 일반적인 여성의 관점에서 해당 사진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이라는 전제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입법조사처는 “형사절차의 엄격한 증명책임 때문에 여성의 특정부위가 형식적으로 유무죄를 결정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은 사회의 성적 관념 및 성문화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데다 당사자의 수치심이 기준이 되는지 사회 통념에 따르는지도 불분명하다.


실제로 지난 9일 한 건물 여자 화장실에서 여성이 용변을 보는 모습을 몰래 촬영했다가 적발돼 유죄가 확정된 전 국회입법보좌관이 해당 조항에 대해 “개념이 모호해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관은 6 대 2로 합헌결정을 했지만 강일원ㆍ조용호 재판관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이란 표현이 명확치 않아 법관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위헌 의견을 냈다.


이같은 논란은 현행 법이 몰카 범죄를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일본ㆍ영국ㆍ미국 역시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타인의 사적행위를 촬영하거나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하지만 그 대상을 나체나 둔부, 가슴 등으로 제한한다.


반면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몰카 범죄를 사생활의 침해의 일종으로 보고 주거지 등 사적인 공간에 있는 타인의 모습을 찍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고 있다. 캐나다 역시 “사생활 보호를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자를 몰래 관찰하거나 촬영한 경우”로 규정해 폭넓게 처벌한다.


입법조사처는 “성적 자기 결정권과 별개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 촬영당하지 않고 사생활을 지키는 것을 형사상 보호법익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사생활 침해죄를 별도로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행 성폭력처벌법 제 14조 적용에 있어서도 특정 신체 부위 여부 외에도 촬영각도나 촬영 의도 등 당시 정황을 고려해 처벌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잠깐상식)화학적 거세란?

화학적 거세란 성적 활동이나 성욕을 감퇴시킬 목적으로 주기적으로 약물을 투여하는 치료 방법으로, 약물 중단 시 성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 고환을 제거하는 물리적 거세와 구분된다. 국내에서는 2011년 7월 16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게 처음으로 적용돼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화학적 거세를 도입했다. 이후 2013년 3월 피해자 연령 제한이 폐지되면서 재범 위험이 인정되는 모든 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를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화학적 거세 대상자는 석방 2개월 전 약물을 투여받은 뒤 출소 후 신체 상태에 따라 1개월, 3개월, 6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치료에 응해야 한다. 치료 약물로는 '루크린' 등 성선자극호르몬 길항제(GnRH Agonist)가 사용되는데, 성선자극호르몬 길항제란 뇌하수체에 작용해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억제함으로써 성충동을 억제하는 약품이다.


화학적 거세는 1인당 연간 500만원의 비용이 들며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 또 치료에 필요한 모든 과정에 법무부 보호관찰관이 동행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화학적 거세 선고를 받은 사람은 '탈주 성폭행범' 김모 씨다. 김씨는 2012년 6월 특수강간죄 등으로 징역 15년 및 치료감호를 선고받은 뒤 공주치료감호소에서 탈주했다. 이후 또 다시 성폭행을 저지르고 붙잡힌 김씨는 2016년 2월 징역 17년, 화학적 거세 7년 등을 선고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일부 주를 비롯해 많은 유럽 국가들이 성폭력 범죄자를 대상으로 화학적 거세를 시행 중이다. 특히 독일, 덴마크, 스웨덴, 체코 등은 물리적 거세까지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1996년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현재 10개주에서는 가석방을 전제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화학적 거세를 시행한다. 텍사스 주에서는 7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2회 이상 저지른 범죄자에게 물리적 거세를 시행한다.


1929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물리적 거세를 합법화한 덴마크는 이후 비인간적이라는 비판이 일자 1973년 이후 당사자의 동의를 구해 화학적 거세를 실시하고 있다.


독일은 나치 시절인 1933년부터 성범죄자에 대한 강제적 거세를 실시했지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이를 폐지했다. 이후 1970년 25세 이상 성범죄자에 한정해 당사자의 동의, 의사의 진단 등 요건이 충족될 경우에만 외과적 거세를 허용한다.


체코는 1966년 거세법을 제정한 이후 매우 제한적으로 실시한다. 본인의 자발적 요청이 있더라도 법률가와 불임 전문의사, 거세시술을 하지 않는 의료진 등 5명으로 구성된 전문가위원회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폴란드의 경우 2010년 9월 15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행범 또는 친족 간의 성폭행범에 대해 강제적인 화학적 거세를 실시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강제 집행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인도네시아는 최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게 화학적 거세를 실시하고, 몸 안에 위치추적용 전자칩을 이식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온라인팀




저작권자 © 피처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