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알바천국 광고의 한 장면.

한국 정서에 '아르바이트'는 철저한 비주류를 뜻한다. 강남출신에 '스카이' 대학과 대기업 대리 정도가 청년들이 선망하는 '주류'의 직장인 모습이다. 아르바이트는 그 경쟁에서 실패하고 도태된 사람들을 말한다. 일종의 루저다. 그들은 호구지책으로 '알바'자리라도 구해서 삶을 연명해 나간다. 이런 정형화된 아르바이트의 모습도 이제 바뀌고 있다. 세상은 정규직 전환으로 돌아가지만 요즘 '소신있는' 젊은이들은 '삶의 질'에 집착한다. 하루종일 직장 상사 눈치에 보고서 제출에 휘둘리다 보면 자신의 인생은 없어진다. 똑똑하고 영민한 청년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최소한의 경제적 비용을 마련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다. 다만 사회의 시선이 문제다. 루저로 바라보는 시선. 인생의 낙오자로 바라보는 비아냥거림. 이런 것만 감당해낸다면, 극복하는 용기와 소신이 있다면 아르바이트라고 해서 나쁠 게 뭐가 있는가.


정부가 최저임금을 1만원선까지 끌어올리기로 함으로써 앞으로 '아르바이트'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일본은 이미 '프리터족'이 사회의 뚜렷한 구성원으로 자리잡았다. 정부는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60원 오른 7530원으로 결정했다. 청년(만 15~29세) 실업률은 지난 4월 기준 11.2%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과거에 아르바이트(알바)는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임시로 하는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오르고 취업난이 더 극심해지면,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 자체를 직업으로 갖는 사람들이 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프리와 아르바이터의 일본식 조어)' 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알바해서 먹고살겠다"


요즘 청년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자유롭게 일하면서 생활은 어느 정도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분위기가 늘어나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가 된다. 그땐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일하면(유급 주휴수당을 포함) 월 209만원을 벌 수 있다.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오르는 내년부터는 같은 조건에서 월 157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 9급 공무원 1호봉 월급 152만880원(직급 보조비 12만5000원 포함·각종 수당은 제외)보다 많다.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주민센터에 온종일 앉아서 민원 업무 하는 것보다 자유롭게 알바하고 사는 게 더 낫지 않으냐"는 말이 나온다.


프리터족 시대의 도래


'최저임금 1만원'이 현실이 되면,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프리터 시대'가 열릴 거란 관측이 제기된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이 2015년 발표한 우리나라 알바 근로자는 101만2640명. 최기원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 대변인은 "알바나 다름없는 일을 하는 단기 근로자, 특수고용직 근로자까지 합치면 알바 근로자는 350만명 정도 된다"고 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알바만으로도 월 200만원 가까운 돈을 벌 수 있으니 정규직과 '임금 출발선'이 비슷하다는 점은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고용시장뿐 아니라 사회·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이 불안한 알바를 전전할수록 결혼을 뒤로 미루는 만혼 현상이 확산하고, 출산율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는 2020년쯤 되면 프리터족이 보편화된 일본과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했다.


일본도 최저임금 오르면서 프리터족 늘어


일본은 2000년대 초반부터 '프리터족'이 급증했다. 일본에는 수백만명의 프리터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프리터족이 늘어난 데는 높은 최저임금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현재 일본의 전국 평균 시간당 최저임금은 823엔(약 8348원).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6470원)보다 1878원 많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2020년 1만원으로 오르면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 사회에 나타난 프리터족과 취업 포기 청년들은 노동력 부족 사태를 부추겼다. 일본 대기업은 해외 인재 채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제가 되자 일본 정부는 2005년 프리터 20만명을 정사원으로 고용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또 전국 200여 곳에 '프리터 전문 지원 창구'를 개설하고 정규직 취업을 할 때까지 1대1 관리를 하도록 했다. 류상윤 LG 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프리터 문제 해결에 나섰지만 뒤늦은 대응으로 문제 해결이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제불황과 실업의 장기화가 진행된 게 프리터족을 양산한 주된 원인이지만 높은 최저임금도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의 요인이다. '프리터'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1987년에는 부정적 의미 보단 새로운 문화현상 정도로 여겨졌다. 기업에 종신고용돼 일하기보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남는 시간에 자신의 인생을 즐기려는 청년들을 일컬었다. 1990년대 들어 장기불황이 시작되면서는 파트와 아르바이트에 내 몰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불안정 고용의 대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도 일본에 프리터족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는 최저임금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최저임금으로,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에 자발적 프리터족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일본의 최저임금은 2000년대 초반 연평균 0.4%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2008~2017년 중에는 평균 1.8% 늘어나면서 증가폭이 크게 확대됐다.


우리나라 역시 자발적·비자발적 프리터족이 생겨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단기간에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질 경우 기업은 급격한 노동비용 증가로 인해 인력 절약방안을 찾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최저임금이 올라 먹고 살수 있는 수준이 되면 국내 취업희망자들 역시 굳이 정규직 취업을 하지 않고 프리터족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먹고 살만한 돈을 버는 비정규직 프리터라고 한다면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생각할 때 고민을 해 볼 문제라는 것이다.


인생관이 질적 가치 위주로 바뀌면 필연


하지만 경제 불황으로 인해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늘어나는 비자발적 프리터족이 아니라 자발적 프리터족이 늘어나는 것이라 해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청년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는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파트와 아르바이트 근무는 근무 시간이 정규직이나 다른 비정규 고용에 비해 대체로 짧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일에 얽매이지 않고 여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수입이 적고 교육·훈련을 통한 인적 자본 축적의 기회도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피고용인 입장에서 볼 때는 프리터가 최소한의 경제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것을 보장한다고 할 때 나머지 시간을 비교적 여유있게 개인생활에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프리터족의 증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는 사람들의 인생관이 질적인 가치 위주로 바뀌게 됨을 의미한다.


온라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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