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물가는 그 체감온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웬만한 외국에 나가서 우리 물가와 비교해보면 한국 '고물가'에 입을 다물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일본은 그동안 물가가 비싸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실제로 일본 곳곳을 여행해본 사람들의 경험담은 그 선입견과는 많이 다르다. 알뜰정보를 잘만 활용하면 부산이나 제주도에 가는 것보다 훨씬 사고 만족도도 높다. 우리 여행업계의 고질적인 경쟁력 미비가 원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좀 심하다는 불만이 계속 나오고 있다. 


올해 휴가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해외로 떠나는 사람은 모두 282만명(예측치). 해마다 신기록을 경신 중이다. 이전 해외여행은 돈을 모아 '큰맘' 먹고 떠나는 것이었다. 최근엔 "국내 여행할 돈으로 해외 간다"는 사람들이 많다. 국내 여행비가 그만큼 비싸진 것이다. 그 사이 한국 물가는 올라도 너무 올랐다. 물론 엔화 등의 환율이 하락한 원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물가 차이가 심한 편이다. 이런 원인 때문에 여름철 휴가지가 해외로 점점 굳어져 가고 있다. 최근 부산과 일본 홋카이도, 베트남 다낭 등 국내외 인기 여행지의 숙박비와 음식값 등을 실제 비교해 본 자료를 토대로 해외와 한국의 물가 격차를 한번 검증해보자.


부산 갈 돈이면 삿포로 간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상민(28)씨는 지난달 말 2박 3일간 일본 홋카이도를 다녀왔다. 인천에서 삿포로까지 저비용 항공사(LCC)를 이용했다. 출발 2주일 전 예약한 왕복 항공료는 약 23만원. 삿포로역 근처 4성급 호텔의 하루 숙박료는 13만3000원이었다. 도착 첫날 점심은 신치토세 공항 내 일본 라멘 가게에서 7900원(780엔)짜리 시오라멘(소금라면)을 먹었다. 삿포로 'JR타워'에 입장료 7300원(720엔)을 내고 올라가 시내 전망을 감상했다. 저녁은 오타루의 유명 회전초밥집 '와라쿠'에서 한 접시당 1420 ~4820원(140~474엔)인 초밥 8접시와 생맥주 1잔을 먹고 2만8000원(2783엔)을 냈다. 여행 첫날 든 경비는 항공권 값을 빼면 숙박비 포함 약 20만원. 김씨는 "대중교통비가 한국보다 비싸지만, 먹는 건 오히려 싼 것 같다"고 했다.


출김씨의 일본 여행과 비슷한 수준으로 8월 초 성인 1명이 한국 부산과 베트남 다낭에 가는 데 드는 비용을 각각 내봤다. 저비용 항공사로 김포~부산 왕복 항공권은 16만6000원, 다낭은 38만3000원에 살 수 있었다. 해운대구 4성급 호텔 일반실은 하루 16만9400원으로 삿포로(13만3000원)보다 비쌌다. 다낭의 4성급 호텔은 하루 7만원. 2박만 해도 숙박비로 부산과 다낭의 항공료 가격 차이를 거의 뽑는 셈이다.



▲ 사진은 부산의 해운대 해수욕장과 그 주변 숙박업소들. 기사의 특정내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일본 라멘에 비견할 만한 부산 밀면은 평균 6000원. 다낭의 쌀국수는 2000원(4만동)이다. 부산의 한 회전초밥집 가격은 한 접시당 1800~7000원이다. 저녁으로 중간 가격(4400원) 초밥 8접시와 생맥주 1잔을 먹을 경우 4만2200원을 내야 한다. 같은 양의 초밥과 생맥주를 마신 김씨의 삿포로 저녁 한 끼보다 1만4200원이 더 나왔다. 다낭 시내 고급 음식점에서 반쎄오(베트남식 부침개)와 짜조(만두), 생맥주 1잔을 먹으면 한화로 약 1만2700원쯤 한다.


여행객이 많이 찾는 다른 메뉴의 가격도 한·일 간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삿포로 지역에서 제조해 판매하는 '삿포로 클래식'은 1잔에 5100원(500엔), 부산의 수제 맥주는 약 6000~7000원이다. 장어덮밥(히쓰마부시)은 삿포로 2만9900원(2937엔), 부산 2만9000원이었다.


이는 객관적으로도 비교된다. 각국 여행 경비를 비교해주는 '당신의 여행경비(Budget your trip)' 사이트에서 숙박비·교통비·식비 등을 포함한 한국의 하루 평균 여행 경비는 1인 기준 약 11만9000원이다. 일본(12만9700원)보다 1만원 덜 들고, 베트남(약 4만5300원)의 두 배가 넘는다.


바가지 물가에 중간급 없어


한국의 휴가철 여행 경비가 비싸진 것은 최근 기본적으로 물가가 오른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휴가철만 되면 되풀이되는 '바가지 물가'와 '중급 서비스'가 없는 점이 꼽힌다. 김영주 한국관광공사 홍보팀장은 "성수기에 요금이 오르는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지만, 유독 한국이 심하다"며 "휴가가 특정 시기에 몰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은 학교·학원 방학과 공장 휴무일이 '7말 8초(7월 말~8월 초)'에 집중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설문에 따르면, 이 2주일 동안 휴가를 떠나는 비중이 62.5%에 달한다.


한국의 서비스가 '싸구려' 아니면 '고급'으로 양극화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이유현 한태교류센터(KTCC) 대표는 "일본이나 태국은 숙박시설이 게스트하우스부터 6성급 호텔까지 다양한 반면, 한국은 콘도와 펜션 정도를 제외하면 중간급 호텔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했다.


부산이나 동해안, 제주도 등 특정 여행지에 사람이 몰리는 것도 피서지 물가가 비싼 이유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일본과 동남아 국가는 오랜 기간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면서 다양한 관광지를 개발했고, 지역끼리 경쟁하며 합리적 가격을 유지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려면 여행 서비스에도 다양한 등급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너무 비싸거나 너무 싼 서비스밖에 없으니 여행객들의 선택 폭이 좁아지고 그 선택을 다양한 상품 서비스가 있는 해외로 눈을 돌린다는 것이다. 이는 여행업계의 고리타분한 마케팅에서 비롯된다. 고객별로 세분화된 타깃을 선정하지 않고 적당히 가격을 올려놓으니 소비자들도 외면하는 것이다. 여행업계의 정밀하고 구체적인 마케팅이 아쉬운 대목이다. 


온라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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