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계를 미리 정해놓고 도전하지 않으면 죽을 때 후회한다” 여행 중 임택 작가가 수없이 되뇌인 문장이라고 한다.



최근 조선일보에는 한 행복한 아재의 사연이 소개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한편으론 노소 가릴 것 없이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연은 이렇다. 반평생 오로지 가족을 위해 '일벌레'로 살다가 나이 쉰이 넘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50+ 시니어'와 같은 '꽃중년'의 이야기다. 조선일보는 마을버스를 타고 677일간 48개국 세계여행에 도전한 '아재'를 만나 그 사연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것은 은퇴 후 폐차를 6개월 앞둔 중고 마을버스를 구입해, 용기 있는 도전으로 즐거운 인생을 낚은 '마을버스 세계를 가다'의 저자 임택씨의 이야기다. 그의 여행이 의미 있는 것은, 은퇴 후 여유적적 즐기는 단순한 여행이 아닌 오랫동안 간직해온 여행 작가라는 꿈을 향한 발돋움이기 때문이다. 인생 2모작을 위한 선전포고이자 출정식을 다녀온 지 꼭 일 년째 되는 날, 임택 작가를 만났다.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문제의 여행' 이후 작가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인생 2모작에서 거두고 있는 달콤한 열매들이 궁금해서였다.


―얼마 전, 첫 책을 출간했다. 요즘 근황은 어떤가?


50세에 은퇴를 하면서 선언한 여행 작가의 삶을 7년 만에 드디어 이뤘다. 마을버스를 타고 677일간 48개국 세계 여행을 다닌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이후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고, 현재는 여러 곳에서 강연 의뢰가 들어와 강의를 다니고 있다. 강의를 다니면서 나이 많은 게 강점이라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내 여행 이야기를 전할 때, 인생을 접목시켜서 이야기하다 보니 내용에 깊이가 있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은수는 어떻게 지내나? 은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은수에 대한 소개를 한다면?


은퇴를 앞둔 어느 날, 동네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는 마을버스에 보았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정해진 구간을 맴도는 것이 마을버스의 당연한 숙명인데, 문득 그러한 일상이 막 쉰 줄에 들어선 자신의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낡은 마을버스를 보며,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난다면 훨씬 의미 있는 일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은수교통에서 만난 인연으로 '은수'란 이름을 붙여줬다. 현재 은수는 종로구청에서 '종로를 세계 만방에 빛내고 온 자랑스러운 마을버스'라고 구청 한 쪽에 주차장을 마련해줘 거기에서 안식 중에 있다. 물론 한 달에 한 번, 5일 동안 다니는 국내 여행에 함께 출동한다. 세계 여행 후 페이스북(현재 그의 '페북' 친구는 5000명, 팔로워는 4000명이다)을 통해 함께 여행할 이들을 모집해 5일씩 여행을 다니고 있다. 8월에는 은수 입국 1주년 기념으로 삼척에서 예술인과의 행사가 잡혀 있고, 9월에는 군수 초청으로 고창에 다녀올 예정이다.


―강연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나?


은수는 평생 종로12번 마을버스로 살면서 60㎞ 이상 달려본 적이 없었다. 여행 전에 은수의 시속제한장치를 풀어줬다. 하지만 평생 정규 속도로만 운행해온 은수는 좀처럼 속도 내는 것을 겁냈다. 조금만 속도를 높이려고 액셀을 밟으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을 내었다. 그런 인수 인생에 가장 극적인 순간은, 바로 남미 칠레에서 은수가 시속 120㎞의 속도를 내며 대형차를 추월한 때였다. 그때 은수를 보며 한계를 정해 놓고 미리부터 포기하는 모든 이들에게 도전하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나누고 싶었다.


―세계 여행을 다녀온 지 1년이 지났다. 지금까지도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나의 여행은 시작부터 계획대로 이루어진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 시작인 남미에서부터 은수는 질이 안 좋은 연료 탓에 늘 탈이 나서 달리다 멈추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 때문에 제 시간, 제 날짜에 도착하는 일이 드물었다. 도난, 강도, 체포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나와 은수가 극도로 긴장감에 휩싸인 순간은 매번 국경을 넘을 때였다. 대개 이웃하는 나라들은 과거 잦은 다툼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데, 그 때문에 국경에서 일하는 관리들도 국경을 넘는 이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차라리 얼마의 돈을 요구하면 다행이지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입국 통과를 거부하는 관리들을 만나면 대책이 없다. 특히 뉴욕 국경을 넘기까지는 멕시코에서 만난 파비와 로돌프, 과테말라에서 만난 '천사' 시세로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덕분에 온갖 역경을 딛고 마을버스 은수는 마침내 타임스퀘어 광장에 위풍당당하게 입성했다. 그때 타임스퀘어 앞에 서 있는 은수의 사진을 SNS에 공개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수많은 이들에게서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가 쏟아졌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행 중에도, 귀국 후에도 청년들이 '은수'에 열광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마을버스로 세계 여행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젊은이들을 만났다. 애초 이 여행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5060세대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기획한 것인데, 오히려 20대 청년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환호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씩 젊은이들이 마을버스 여행에 동참한 덕분에 이 여행은 풍요로운 이야기들로 활력이 넘쳐났다. 여행에서 만난 청년들을 '여행이 낳은 아들과 딸'로 부르면서 이들에게 살갑게 '아부지'(낳아주고 길러준 아버지와 구별해서)라고 부르게 했다. 사실상 한국의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여행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 청년들은 '임택이라는 아부지'에게 스스럼없이 고민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는 아부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들을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 됐던 것 같다.


―여행 작가이자 50+활동가로 등극했다. 동시대 시니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청년 정신의 시니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자기의 생을 사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멘토가 돼주길 바란다. 더도 덜도 말고 현 5060 시니어들 중 딱 10% 젊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고령사회 속에서도 늙지 않을 것이다. '지하철 공짜로 타지 않는 노인들의 모임' '연금 타지 않는 노인들의 모임' '청바지를 입는 할배들의 모임' 등을 만들어 사회적인 분위기를 젊게 만들고 싶다.


▲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금방 친구가 된다. 임택(오른쪽 두번째)씨가 터키에서 만난 사람들과 종로12번 마을버스 ‘은수’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온라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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