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의 주한미군 철수 발언을 보고


▲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미국 조야에서 북한 레짐 체인지 말이 계속 나온다. 김정은 정권 교체다. 미 정보 수장은 김정은 정권 축출을 위한 은밀한 작전 가능성도 슬며시 언급하고 있다. 미국 외교 정책의 거물인 헨리 키신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조언을 트럼프 행정부에 한다.  2017년 7월 31일 뉴욕 타임스의 보도다. 


“미국은 북한 정권 붕괴 이후 상황을 중국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구체적인 바게닝 칩도 제시한다. “주한 미군 철수 문제를 중국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만 줄곧 외쳐온 주한미군 철수를, 그래서 한국에서 이를 주장하면 으레 그렇듯 친북, 종북 딱지를 붙여온, 그래서 금기시 된 주한미군 철수라는 단어를 미국 외교 정책의 멘토인 키신저가 수면 위로 꺼집어 낸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교체가 될까? 가능성은 필자 생각으로는 ‘글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 교체에 대비한 이런 저런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북한 급변사태라는 이름으로 북한정권에 만약 어떤 급박한 일이 생긴다면 한국과 미국, 중국은 붕괴된 혹은 붕괴위기에 처한 북한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런 저런 시나리오들이 논의되기도 했다. 


핵심은 북한 김정은 정권이 붕괴된다면 북한 권력 공백 상태를 누가 대신 메울 것인가, 누가 북한이라는 영토를 통제하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우리는 당연히 통일된 한반도를 상상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세 가지 정도로 시나리오를 가정해 보자.


대한민국이 말 그대로 통일된 한반도를 지배하는 시나리오가 첫 번째이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권력 공백 상태를 메우면서 북한 땅을 우리 영토로 지배하는 것으로, 우리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다. 하지만 국제 정세를 고려하면 가능성이 높지만은 않다. 중국은 한국이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며 중국 국경과 맞닥뜨리는 상황, 그것도 굳건한 한미 동맹을 가진 나라가 아무런 완충지대 없이 중국과 인접하는 상황에 극구 반대할 것이다. 게다가 김정은이 만들어 놓은 핵과 대량 살상무기를 한국이 관리하게 하는 상황도 중국으로서는 용납 못할 것이다.(이 부분은 미국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상황은 미국이 북한 권력 진공 상태를 접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국이 북한을 접수하는 것보다도 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미국이 북한 땅에 들어오는 걸 중국은 말 그대로 목숨 걸고 반대할 것이다. 완충지대 없이 세계 최강 미국과 인접? 중국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세 번째 상황은 중국이 온전히 북한 지역을 접수하는 것이다. 기껏 북한 정권을 교체했는데 그 지역을 중국에게 넘긴다? 이 상황은 대한민국과 미국이 용납 못한다. 





그럼 현실 가능한 대안은 무엇일까?


북한 권력 진공 상태를 담당하고 북한의 치안과 질서를 유지할 유엔 평화유지군의 진출도 상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국제사회의 수많은 논쟁이 있어야 하고, 한국 정부의 양해도 있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미-중간의 빅딜이 이뤄져야 가능할 것이다.


결국 김정은 권력이 붕괴된다면, 김정은 정권이 교체된다면 김정은 이후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미-중간의 합의가 불가피하다고 인식하는 게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상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북한의 체제는 그대로 두고, 김정은을 대체한 뒤 다른 권력 엘리트에게 북한 정권을 맡기는 방안이다. 물론 이 경우 북한 정권 담당자는 미국과 중국이 합의 가능한 권력 엘리트, 아마도 권력욕이 상대적으로 덜한 실무 테크노크라트 정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게 과연 가능한 시나리오일까?


물론 북한 정권 교체 이야기가 미국에서 나오자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2017년 8월 2일 급히 진화에 나섰다. “미국은 북한 정권 교체나 붕괴의 의도가 없다. 급속한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리고 미국은 38선 이북에 군대를 보낼 생각도 없다”고 했다. 북한을 겨냥한 발언이기도 하지만 중국을 달래는 발언으로도 읽힌다. 


그렇다고 이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도 어렵다. 정치가 생물이듯 국제관계, 특히 헤게모니 국가간의 관계는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빅터 차 교수의 분석을 주목할 만하다.


미 조지타운 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부시 행정부 때 백악관 NSC 아시아 담당 국장을 역임한 빅터 차 미 CSIS 한국 석좌는 2009년 The Washington Quarterly 학술지 기고문에서 이렇게 분석한다.


“북한 체제 붕괴 시 한국은 국내 안정 회복에, 미국은 북한 대량 살상무기 확보에, 그리고 중국은 대량의 북한 난민 유입을 최우선시 할 것으로 보이므로 오인과 계산착오를 최소화 하려면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의 주요 관심사는 WMD 확산 방지와 통제에 있는 반면 중국은 북한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보에 우선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북한 내에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는 친중 공산정권의 집권을 용인하는 등 미·중간에 전략적 담합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 급변사태에 대해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여겨지기 쉬우나, 한반도와 동북아 국제질서의 안정적 운영이라는 차원에서 상호 협력을 추구할 가능성이 적지 않고, 이 경우 한국의 이해관계와 입장은 고려에서 배제될 위험성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이 지금이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이유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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