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은 자유다. 다 내 식대로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옳은지는 모르지만 그냥 내가 옳다고 믿는 게 편하다. 착각은 굉장히 편의적이다. 자기 식대로 받아들이고, 믿게 된다. 


맞다. 착각하는 거다. 모든 믿음은 착각이다. 정말 옳은지 알면 믿을 리 없다. 진실은 그냥 아는 거다. 나는 사과가 빨갛다고 믿지 않는다. 그냥 빨간 지 안다. 나는 하늘이 파랗다고 믿지 않는다. 그냥 파란지 안다. 믿는다는 것은 내가 모른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오쇼는 "믿음은 무지의 일부"라고 한다. "뭔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대가 알지도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누구나 믿는 건 자유다. 하지만 믿음이 곧 옮음은 아니다. 둘을 같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둘을 같다고 우기면 더 곤란하다. 그건 착각 속에서 살고, 착각 위에서 다투는 것이다. 머니투데이는 심리학자 허태균 교수의 말을 인용해 그 착각의 세계를 짚었다. 허 교수는 "내가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착각이 생각보다 훨씬 잦다는 것을 열린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착각을 인정할 때 나는 제정신이다. 나도 가끔은 제정신이다. 대개는 딴정신이다. 나는 '가끔은 제정신'을 '가끔은 딴정신'으로 고쳐야 하리라. 나아가 '언제나 제정신'으로 깨어나야 하리라.





그렇다면 나는 어떤 착각을 하면서 살까? 허태균 교수가 설명하는 심리학적 개념들을 이용해서 열 가지만 꼽아보자.


1. 사후예견 편향(hindsight bias) 

나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애초부터 그럴 줄 알았다고 큰소리친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글쎄, 정말 그럴 줄 알았을까? 

"알긴 뭘 알아. 그리 잘 알면 왜 가만히 있었어."


2. 비현실적 낙관성(unrealistic optimism) 

나는 나에게 좋은 일이 실제 일어날 확률보다 더 자주 일어나고, 나에게 나쁜 일은 덜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다 잘 될 거야." "아니야, 절대 그럴 리 없어." 

글쎄, 때로는 이 말이 더 맞겠지. "꿈 깨!"


3. 평균 이상(better than average) 착각

나는 긍정적인 점에서는 무조건 평균 이상은 될 거라고 믿는다.

"그래도 중간은 되지" "남들만큼은 하지".

자뻑! 다들 평균 이상이면 평균 아래는 누가 채우나?


4. 과대영향 편향(impact bias)

나는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이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 지각한다.

"못 살겠어." "죽고 싶어. "미칠 것 같아.“

하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5. 행위자-관찰자 효과(actor-observer effect)

나는 내 행동에 관대하고 당신 행동에 엄격하다. 

내가 그런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것은 당신이 원한 것이다. 


6. 내 집단 편애(ingroup bias)

나는 내가 속한 집단을 실제보다 좋게 평가하고 조금이라도 더 혜택을 주려 한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 언제나 "우리 편이 최고"이고 "우리 선수 파이팅"이지.


7. 선택적 사고(selective thinking)

나는 내가 원하는 것과 일치하는 정보를 더 쉽고 편하게 잘 받아들인다. 하지만 내가 선택적으로 그 정보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들으면서 객관적인 줄 안다.


8.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나는 내 생각이나 행동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도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 합리화하고 정당화한다. 나도 술 마시는 이유, 뒷담화 하는 이유, 미적거리는 이유, 세상탓 하는 이유 같은 게 100가지는 넘는다.


9. 본질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

나는 많은 사람이 그런 것과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하는 것을 혼동한다.

"다들 그러니까 너도 그래야 해!" 하지만 다들 그렇다고 나도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다른 애들은 안 그러는데 왜 너만 그러니?" 하지만 다른 애들은 안 그렇다고 나도 안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10. 탈개인화(deindividuation)

나도 완장만 차면 간부처럼 되고, 제복만 입으면 신병처럼 된다. 링거만 꼽으면 환자처럼 되고, 가운만 입으면 의사처럼 된다. 자리와 역할이 나인 줄 안다. 그래서 자리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이 열 가지는 심리학자들이 개념으로 묶을 만큼 보편화된 착각이다. 당연히 누구도 피하기 어렵다. 착각의 시스템이 내 무의식의 심연에서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쩌랴.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수밖에. 더구나 착각은 자유 아니던가. 그러니 마음껏 착각하면서 살자. 즐겁게 착각하면서 살자.





대신 나도 착각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기꺼이 인정하자. 흔쾌히 인정하자. 나는 착각하는 존재다. 내 믿음 속에는 언제나 일정량의 착각이 있다. 그것은 내 믿음 속의 무지와 비례하고, 내 믿음 속의 지성과 반비례한다. 내 믿음 속의 지성을 벼리지 한 나는 무지와 착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리라.


하여 오늘도 나는 묻는다. "혹시 내가 착각하는 거 아니야?" 내 부모가, 자녀가, 이웃이,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가, 때로는 나의 적이 내 믿음에 도전할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혹시 내가 착각하는 거 아니야?" 


허태균 교수는 "자신이 착각할 수 있다는 사실만 인정한다면 우리는 자신과 다른 주장이나 의견에 대해 무조건 비판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대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한다." "착각의 선물로 가득 찬 상자는 잘못 열면 판도라의 상자가 되겠지만, 조심해서 잘 열 수만 있다면 자신과 세상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게 하는 '행복의 선물이 되리라"고 한다. 부디 이런 믿음은 착각이 아니기를!


착각은 자신감과 때로는 혼동이 될 때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자기체면을 걸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게 착각인 것은 아닐까? 어쩌면 영원히 성공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아니겠지' 하는 착각에 빠져 평생을 허우적거리는 건 아닐까. 피처링이 잘 될 것이라고 믿는 것도, 착각인 것은 아닐까? 독자들이 판단해 주시리라 믿는다. 아, 믿는 것도 착각이지.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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