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다 칼로의 1943년 작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화상`



오랜만에 지인과의 약속으로 연남동 골목으로 들어가 작은 카페(Greenery Table) 테이블에 앉았다 .


청량하게 빛나는 옥색 벽에 느슨하게 서 있는 프리다의 얼굴.


그녀를 강하게 보이게 만드는 검은 빛의 눈썹과 눈동자, 구릿빛 피부, 남미 특유의 진초록 식물들과 함께 서 있는 그녀의 반신 복제 자화상은 내가 익히 안다고 생각했던 프리다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멕시코 출신 화가로 영화나 책들로 많이 소개된 바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전시가 있어 흐릿하게나마 원작을 직접 대했던 기억이 있다.


그녀의 성장 과정을 보면 정말이지 자세히 열거할 수 없이 불우하기 짝이 없다 .



▲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브런치카페 `그리너리 테이블`은 반기마다 새로운 콘셉트의 미술작품들을 전시한다. 지금은 `자화상`이란 주제로 유명작가들의 자화상을 전시중이다. 셰프의 잔잔한 정과 정갈한 맛이 느껴지는 브런치와 가끔 눈을 돌려 마주하는 미술작가들의 자화상이 행복한 일상을 느끼게 해준다. 사진제공=그리너리 테이블



47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기 전까지 어릴 적 교통사고로 인한 육체의 통증이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멕시코 민중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으로 유명해졌으나 그의 잦은 외도와 문란한 사생활도 고스란히 그녀의 정신적 고통의 몫이었다.


미술사에서 그녀만큼 자신의 고통을 적극적으로 울부짖었던 예술가가 있었을까?


그녀의 고통과 슬픔은 고스란히 그녀의 그림 주제가 되고 색과 선이 되어 요동친다.


거칠고 고통스러우며 아프다.


우리의 삶은 때론 충분히 고단하기에 예술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보며 우리는 아름다운 것, 행복한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그런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불충분할 때 우리는 '이게 예술이냐?'라고 반문한다. 삶이 아름답지만은 않듯 예술도 인간의 것이기에 그러함에도.


옥색의 아름답고 시원하며 청량한 색의 힘이었는지, 나 또한 어린 나이를 지나 인생의 중반을 달리다 보니 조금씩 어딘가 아프고, 어려움도 겪어봐서 인생이 그냥 달지만은 않았고, 조금의 통증을 견딘 터라 그녀는 달라 보였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다시 만난 그녀의 복제 자화상이 빛나는 옥색 배경의 힘을 빌려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 사진제공=그리너리테이블



나는 그녀를 찬찬히 볼 수 있었다.


다시 그런 프리다를 찬찬히 아주 찬찬히 나는 들여다 본다 .


그녀의 맑고 당당한 눈동자와 멕시코의 뜨거운 붉은 땅과 같은 구릿빛의 피부, 초록의 싱싱한 식물과 그녀를 감싸고 있는 검은 원숭이들까지...


그녀는 뜨거웠고, 행복했으며 당당했고 아름다웠다.


오늘 드디어 그녀를 만났다 .


생명과 모성의 푸른, 아주 푸르른 아름다운 세계다.



이연주/작가

한국에서 동양화를 배운 후 독일에서 회화와, 사회와 연관된 예술을 공부했다.

작품 활동을 하며 대학교에서 드로잉을 가르치고 생활 속에서 어떤 예술같은 일들이 마주하고 있는지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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