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3일 한밤. 북한 원산 상공 350km 지점에 ‘죽음의 백조’가 떴다. 


미국이 자랑하는 전략 폭격기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는 B-1B 랜서다. 괌 미군 기지에서 출격해 2시간을 날아 북한 영공 코 앞까지 다가간 것이다. 죽음의 백조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첨단 전투기 F-15C의 호위를 받았으며, 공중 급유기와 조기 경보기 등 실전 전력을 모두 대동해 북녘 밤하늘을 지배했다. 


공대지 순항 미사일등 무기 61톤을 탑재할 수 있는 죽음의 백조. 명령이 떨어지면 북한 인근 상공에서는 20분이면 평양 하늘에 도착해 북한 주석궁과 지하 벙커 등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그렇게 북한 앞바다 상공에서 무력 시위를 감행한 죽음의 백조는 약 2시간의 작전 비행을 마치고 기지로 귀환했다.


비행직후 미 국방부는 이 사실을 즉각 공개했다. “이번 비행이 21세기 들어 NLL넘어 휴전선에서 가장 멀리 북쪽으로 비행한 것”이라며 “북한의 무모한 행동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성명까지 발표했다. 


트럼프의 '완전 파괴'가 외교적 수사만은 아니란 걸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미국 단독으로 북한을 타격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미국의 무력시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10월에는 웬만한 국가의 군사력에 버금간다는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호가 한반도 해역으로 올 예정이다. 핵 추진 항공모함인 레이건호는 60대 이상 항공기를 탑재하고 토마호크 순항미사일로 무장한 잠수함도 거느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9월 24일 새벽 유엔 총회장.


북한 외무상 리용호가 험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는 유엔 연설에서 트럼프를 정신 이상자, 악통령, 거짓말의 왕초, 최고통 사령관으로 불렀는데, 어쩌면 이런 다양한 표현을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동원 가능한 험악한 표현으로 트럼프를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미국을 향해 “선제 공격할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 등이 북한 지도부에 대해 참수나 공격 기미를 보일 때에는 가차 없는 선제행동으로 예방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북한은 10만 명을 동원한 반미 군중집회를 열고 ‘정말 한 목소리로’ 미국을 비난했다. “악마의 제국” 미국을 “불도가니에 쳐 넣겠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친미굴종의 삽살개"라며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도 자신을 맹비난한 북한 외무상은 ‘리틀 로켓맨‘이라며 “북한 외무상이 ‘로켓맨’ 김정은의 생각을 반복한 것이라면 그들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즉각 경고했다.


말 폭탄에 이어 무력시위까지…


북-미 간의 말 폭탄이 자칫 실제 폭탄으로 비화할지도 모를 일촉즉발의 한반도 정세다.


전쟁의 가장 큰 발발 원인은 경제적 이익 충돌, 편협한 민족주의, 군국주의, 인종적 차별, 종교적 차이 같은 가치 충돌이다. 하지만 가치의 충돌이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작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지도자의 성격이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존 스토신저는 저서 [전쟁의 탄생: 누가 국가를 전쟁으로 이끄는가]에서 방대한 전쟁 사례를 분석했다. 그리고 전쟁 그 자체는 특히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과 인식’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지도자가 ①자기 자신을 기만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과신하는 낙관주의를 갖거나  ②상대편지도자의 성격에 대해 왜곡하거나 ③ 적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거나 ④ 적의 능력을 잘못 판단할 경우 등의 ‘지도자의 4가지 인식’ 때문에 전쟁이 발발한다는 것이다. 


이를 북한에 대입해보면 상당히 우려스럽다.


북한 김정은은 핵 개발에 성공했다며 스스로를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아버지 김정일 사망 이후 5~6년간 집권하면서 확실하게 북한 권력을 틀어쥐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평양 주민 10만 명을 동원해 반미 궐기대회를 열 정도로 권력 기반에 대한 확고한 신념 혹은 도취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북한 김정은이 충동적, 폭력적 리더십으로 ‘전쟁 개시’라는 명령을 내릴 경우 이를 제어할 북한 내 세력이 없는 것도 매우 우려스럽다.


또한 미국이 자신들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오판에서 선제 공격으로 나설 수도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북한은 “미국이 참수작전과 대북선제타격, 비밀작전과 내부교란작전, 특수작전의 필요성을 서슴없이 역설하고 있고 이를 위해 B-52, B-1B 같은 전략자산들과 F-22 스텔스 전투기 편대도 남한에 끌어들이려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이런 믿음이 강화되면 실제로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을 공격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고, 그러면 공격받기 전에 먼저 나서겠다는 오판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같은 분석틀을 트럼프에게 대입해도 유사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은 사소한 일에서 발발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금 한반도는 사소한 일이 아니라 엄청한 말폭탄에 실제 무력시위까지 날아다니는 위기 국면이다. 한반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상황 관리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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