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책-남자>, 2017, 180x147cm



보통은 일상 가운데에는 규칙적인 동선이 있기 마련이다. 


출퇴근의 길도 그러할 테고 정기적으로 가는 헬스클럽이나 주민자치센터라든지.


우리 일상에는 늘 지나다니는 길은 한군데 있기 마련인데, 내게는 사당에서 남부터미널을 가는 남부순환으로가 항상 다니는 길 중의 하나이다. 그 곳은 늘 버스나 차로만 다녔지 걸을 생각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교통카드가 없는 이유로 자의 반 타의 반 한번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금요일 오후 날은 신선했고, 빛이 강한 초가을에 신발도 편하겠다 한번 발을 떼어 보았다.


구릉같은 선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 좁지만 한적한 느슨한 길이 앞에 놓여있고 그 동안 지나쳤던 길엔 나름 서초구가 마련한 길가 명작을 사진 찍어 가벽에 붙여 놓기도 했고, 매력적인 아가씨가 눈 인사를 해주며 외길에서 길을 비켜주기도 하고, 멋진 자동차 전시장이 나와 차도 구경하는 호사도 누리는 등 모든 것이 낯설지만 신선하게 다가오는 장면들이 보인다.


심지어 버스를 기다리는 한 낮의 빨간 점퍼 아주머니의 모습은 묘한 현대사회를 이야기하는 것 같고, 길 위에 뒹구는 신문지는 어느 현대미술 전시장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차로 본 풍경과 걸으면서 사물 하나 사람 하나 보고 눈과 마음을 주는 것은 다르다. 


만나는 세계가 다른 것이다.


이렇게 길을 걷다가 얼마 전 현대 갤러리의 유근택 작가의 ‘어떤 산책 ‘이라는 전시가 떠올랐다.


작가 유근택을 소개하자면 그는 1991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국 화단의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 뛰어난 작가임이 분명하다. 


그의 작업은 진중하고 무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업이 좋다.


이번 사간동에 위치한 갤러리 현대의 전시에서는 성북동 성곽의 길을 따라 산책하며 마주한 풍경을 그린 < 산책 > 시리즈가 눈에 띄었다.


작품 속 초록 빛의 나무 숲과 붉은 색의 나무 숲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서양화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초록의 무게. 



▲ <산책>, 2016, 147x153cm



수묵과 어우러진 올리브 그린의 초록과 빛이 한데 어우러져 기묘한 숲의 한 장면을 볼 수 있다. 또한 그 숲 어디일 것 같은 붉은 숲, 이 또한 기묘한 한 남자가 그 숲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가 나무인지 나무가 그인지 그도 붉게 물들어 있다.


관념보단 분명 현실인데 그냥 현실의 세계는 아니다. 


그는 작품 속에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소소한 순간들의 연속을 넘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점차 희미해지는 리얼리티, 즉 견고한 일상 뒤에 숨겨진 무게를 마주할 수 있게 했다.


일상을 이탈해 보면 일상 뒤에 숨겨진, 어떤 무게 있는 존재와 마주하는 시간, 그때 자아를 발견하기도, 현재라는 시간을 진하게 느끼기도, 또는 영감의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다만 우리는 표현하지 못했을 뿐 저마다 그러한 경험은 분명 어느 순간 문이 열렸고, 우리는 만났다. 


그러한 순간이 아주……많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순간을 그는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냈다. 


유근택은 1965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1997년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3년부터 성신여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삼성 리움, 국립현대미술관 등 다수의 미술관에서 작품 소장 중이며, 최근 갤러리 현대와 성곡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연주/작가

한국에서 동양화를 배운 후 독일에서 회화와, 사회와 연관된 예술을 공부했다. 작품 활동을 하며 대학교에서 드로잉을 가르치고 생활 속에서 어떤 예술같은 일들이 마주하고 있는지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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