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권력 서열 재편을 단행했을까?




2017년 10월 8일 김정일 당 총비서 추대 20주년 경축대회. 


귀빈석인 이른바 주석단에 앉은 간부들이 호명된다.


김영남 상임위원장, 최룡해 당 중앙위 부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모두 25명의 이름이 불려졌다. 


북한의 권력 순위를 보여주는 주석단 호명. 그런데 바뀌었다. 


이전에는 주로 김영남-황병서-박봉주-최룡해 순으로 불리었는데, 최룡해와 박봉주가 북한 군 1인자인 황병서보다 앞에 나온 것이다. 


김정은은 자기들 말로 미국의 압살 책동이 극에 달한 이 시점에 왜 권력 서열을 재편했을까? 

핵-경제 병진 노선을 밀고 나가겠다고 강조도 했고 핵 무력에 양보는 없다며 큰소리도 쳤는데 

왜 북한 군의 1인자를 뒤로 뺐을까?


최룡해가 누구이길래?


최룡해는 말 그대로 북한판 금수저의 전형이다. 할아버지인 최화범은 일제치하 홍범도 부대에 몸을 담았으며, 아버지 최현은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 투쟁을 함께 해, 김일성의 절대적 신임을 받은 인물이다. 


북한에 몇 안 되는 가문 출신인 최룡해. 이른바 혁명 1세대 아버지를 둔 출신 성분 덕분에 정치 입문 후 승승장구했지만, 팔자가 센 탓인지 출세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 지난해 5월 식도암으로 사망한 강석주 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안치된 평양 서장회관에서 당·군·정 관계자들이 조문했다. 당시 최룡해(오른쪽에서 두번째)는 장례위원장을 맡아 당 간부들과 조문을 하고 있다.



북한 사로청 비서이던 98년 북한판 오렌지 생활로 해임된 뒤 평양 상하수도 관리 사무소로 쫓겨 간다. 2003년 당 총무부 부부장으로 재등장하지만 1년 뒤 비리 혐의로 협동농장에서 소위 혁명화 교육을 받게 된다. 김정은 집권 이후 권력 정점에 다가갔지만 2015년 숙청설이 나돌더니 2015년 11월 지방 협동 농장에서 다시 한 번 혁명화 교육을 받는 수모를 당한다. 


그런 최룡해가 2017년 10월 한반도 핵 위기 국면에 오뚝이처럼 떠올라 김정은 다음인 사실상 북한 권력 2인자로 부상한 것이다. 특히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자리에 올랐다는 분석까지 나왔는데 그렇다면 그가 권력 2인자임은 명확해 진다.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북한 내 인사와 정무를 총괄하는 부서로, 말 그대로 핵심이다. 김정일은 1973년 당 조직지도부장에 오른 이후 2011년 사망할 때 까지 이 자리를 놓지 않았고, 김일성은 동생 김영주에게 조직지도부장을 맡겼다. 김정은도 집권 이후 이 자리에 부장을 두지 않고 부부장들만 둔 채 자신이 직접 관리할 정도로 핵심 요직이다. 그런 자리에 최룡해를 앉힌 것이다.


그렇다면 박봉주는 누구인가? 


현 직책은 내각 총리. 


당이 국가와 정치-사회 권력 모두를 지배하는 북한에서 내각 총리는 말 그대로 얼굴 마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내각 총리를 왜 북한 군 1인자인 황병서 총 정치국장보다 앞에 뒀을까?



▲ 2007년 2월 27일 평양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 환영만찬에서 이재정 남측 수석대표(왼쪽), 박봉주 내각총리(가운데)의 모습.



2000년대 초반 김정일 시대 북한은 7.1 조치로 대변되는 경제 개혁을 추진한다. 단번 도약론, 종자론 등 각종 구호와 이론을 내세우며 북한식 경제 개혁과 대외 개방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 과정을 2003년부터 내각 총리로서 보좌하던 인물이 바로 박봉주다.


하지만 북한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만이 살 길이라는 반론이 거세지면서 김정일은 2008년 이른바 6.18 담화를 통해 사회주의 계획경제 중심으로 회귀할 것을 공식 천명한다. 


북한식 경제 개혁의 후퇴와 함께 박봉주는 지방으로 좌천된다. 


그런 박봉주가 다시 중앙으로 복귀한 것은 김정은 집권 이후이다. 


김정은은 집권 초인 2012년 경제개혁 청사진을 그릴 태스크 포스로 ‘경제관리방식 개선 소조’를 결성하는 데 여기에 바로 박봉주를 포함한 노두철 곽범기 등 젊은 관리를 참여시킨다. 이들이 내놓은 안이 배급제 폐지와 개인투자 합법화, 경영 현장의 권한 강화 등을 담은 이른바  6.28 새로운 경제관리 체계이다. 


김정은은 또 내각이 경제 사령부라면서 박봉주를 2013년 당의 최고 권력기구인 정치국의 위원으로 초고속 승진시킨다. 


그런 박봉주를 이번에 최룡해 바로 다음의 권력 서열에 배치한 것이다.


북한 핵 고도화와 이에 대응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발로 한반도 핵 위기가 고조된 지금 김정은은 왜 이 두 사람을 권력 전면에 배치했을까?





김정은이 예상외로 강한 미국의 반발과 무력시위에 당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북한 내부의 체제 결속을 더 다져야 한다는 지상 과제에 맞닥뜨린 건 분명해 보인다. 


북한 내에서 명망이 높은 빨치산 가문 출신인 최룡해를 앞세워 내부 단속, 특히 당의 결속을 다지면서도 김기남, 최태복 등 노쇠화한 기존 엘리트들을 자연스럽게 퇴진시킴으로써 김정은 자신 만의 당으로 색깔을 더 분명히 한 것이다. 


또한 각종 제재로 어려워 질 수 밖에 없는 북한 경제를 박봉주라는 인물을 통해 단단히 틀어 쥐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북한 표현대로 자력갱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북한 인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 이제는 핵 개발에 올인하기 보다는 경제 개혁에 나설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대외에, 특히 중국과 러시아에 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핵에서 경제로 넘어갈 수 있다는 시그널인 것이다. 북한 국가 노선인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핵과 경제 중 어디다 방점을 둘 지는 전적으로 김정은의 판단이다.


결국 빨치산 가문과 경제라는 두 축을 바탕으로 당을 김정은 키즈로 채우는 체제 재정비에 본격 나서면서 김정은의 북한을 확고히 하고, 미국과의 대립에서 지구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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