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간동에 나갔다.


경복궁의 옆 문에 마주한 사간동 거리는 우리나라 굵직한 갤러리들과 국립현대 서울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뒤편으로 가보면 고즈넉한 한옥을 개조한 게스트 하우스, 작은 수공방, 카페, 김밥 집까지도 만날 수 있는 아기자기하고 옛 정취가 흐르는 골목이 나타난다.


그 골목을 조금 탐색하는 마음으로 걷다 보면 담쟁이넝쿨이 그득한 벽을 마주하고 있는 소박하고 아담한 한 갤러리를 마주할 수 있는데, 이름도 자연친화적인 <자작나무 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이채원 작가의 < 해들의 둥지 >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2017.10.19-10.31 갤러리 자작나무).



▲ 거인의 발자국 소리



첫 그림을 조용히 보고 있으려니 스멀스멀 떠오르는 기억들, 아! 아름다운 곳 하와이의 마우이섬이 떠오른다.


따뜻한 바람이며, 온화한 바다와 아름다운 저녁 노을, 나무에 열린 꽃과 생명력이 넘치는 색들 하며 보이는 모든 것이 작품 같고, 그림 같았던 곳. 하와이!


신혼여행지로 각광받고 많이 이들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 실체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가보니 정말 그곳은 별천지였다.


고뇌하고 생각하고.. 비판하고 예술이 아니라 그곳에서는 마주하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곳, 그것이 그림도 되고 춤도 되고 노래가 되고 있었다.


아름다움에 충격이었다.


고갱이 문명을 뒤로하고 타히티 섬에 들어가 한평생을 그곳에서 보이는 빛과 사람을 그릴 수 밖에 없었던 심정도 이해가 갔다.


오늘 다시금 오랜만에 기억을 소환하고 그곳의 자연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한다.



▲ 빛이 나는 얼굴



나는 전시장에서 해들이 둥지를 틀고, 빛이 다가오고, 검은 개가 돌아다니며, 폭포가 흐르고 광경을 보며 잔을 든 여인과 함께 파도해변에서 달과 이야기 한다.


우리는 가끔 이러한 초현실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 사막이 밤



▲ 달이 내려오는 시간




작가노트


우리의 몸을 이루는 미세한 조각들은 우주의 폭발한 초신성의 조각들과 같다 한다. 우리 모두 스스로 빛을 내는 태양의 자식들이라 생각하면, 내 몸 속에는 필시 아주 오래된 기억과 흔적이 새겨져 있으리라 믿게 된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나의 손이 탁자 밑으로 툭 하고 통과할 수 없듯 나는 세상과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나, 간혹 지구의 땅과 공기로부터 내 모이 자라나와 이어져 있는 순간이 있다.


어떠한 형상에서 마을을 읽고 동질감을 느끼거나 햇빛, 물과 같은 속성들에 몸의 형체가 녹아사라지듯는 듯한 순간들처럼, 아주 찰나의 시간으로 스쳐 지나가 다시 떠올려 보려 해도 쉽사리 그 감각이 재현되지 않는다.


흘러 내려가는 시간과 퍼져나가는 공간 속에 외로이 동떨어져있음을 잊게 되는 그 순간은 영원히 붙들고 싶지만 불가능한 해들의 둥지 속에 있던 시간이다.


이채현 2017. 09


*<해들의 둥지>는 이채원(1985년 생)의 3번째 개인전으로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작품활동 중이다.



이연주/작가

한국에서 동양화를 배운 후 독일에서 회화와, 사회와 연관된 예술을 공부했다. 작품 활동을 하며 대학교에서 드로잉을 가르치고 생활 속에서 어떤 예술같은 일들이 마주하고 있는지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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