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4-11.03 place MAK




나이 지긋한, 몸이 부실한 친구가 어깨뼈가 부러져 00병원에 위문차 그녀를 방문했다.


날도 하루종일 흐리다.


만인에게 사랑받던, 순박하고 정직해 보였던 한 유명배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황망하고 멍한 기분이었던 차라 마음도 흐리다.





마음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길을 헤매고 있었다.


나는 어깨뼈가 뿌러진 그녀를 위로하고 그녀에게 어깨뼈 골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늙는다는 것과 유명 배우의 죽음 등... 우리는 두서없는 대화를 했고 병원을 나와 나는 근처 연희동 경계자락에 있는 플레이스 막 (place MAK) 이라고 하는 전시공간에 박정원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러 발을 돌렸다.





이 전시 공간은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라 마음을 새롭게 하고 그곳을 향했다.


플레이스 막은 나즈막한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전시공간으로 기분 좋은 나무 색의 벽이 눈이 띄었고 Still Life (정물화) 라는 전시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눈에 들어 왔다. 묘한 플래카드다.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시장엔 꽃들이 한 가득 하여 마음이 화사해지는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다.


13점의 꽃이 그려진 정물화는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온몸 벌려 자신을 드러내는 반짝이는, 아름다운 생명의 상징인, 화려하고 아름다워야 할 것 같은 꽃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꽃은 꽃인데 초생의 늙어감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림 속 장미 잎이 떨어져 누렇게 변색되고 있었고, 백합머리는 땅에 떨어졌으며 개미들은 죽은 꽃잎을 향해 줄 서 모여들고 있었다.





지금이야 꽃은 보편적 소재이지만 과거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성행했던 정물화에 등장하는 꽃은 그 당시 부자들이 소유할 수 있는 전유물로 그들의 부를 과시할 수 있었기에 즐겨 찾는 소재였다. 네덜란드 정물화를 찾아보면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싱싱하게 살아있는 꽃들을 그려낸 그림이 많다.


박정원 작가는 남편의 꽃사랑에 꽃을 늘 삶의 터전에서 만날 수 있었지만 외출하고 돌아오면 화병에서 거짓말처럼 시들어버린 꽃을 보며 놀라곤 했단다.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그들의 생을 그녀는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었다.


그 꽃들의 죽음도 감정이 있고 드라마가 있음을...


꽃같은 젊은 배우의 황망한 죽음으로 말미 암아 또 친구의 어깨부상으로 인해 나는 늙는다는 것, 우리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일을 모르는 한정된 시간을 경험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인생이 식물의 생을 보면 순간이라 하지만 신이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을 보면 어떠할까?


생의 순간을 우리가 제대로만 인식한다면 우리는 이 짧은 생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


Memento mori!(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


전시관람 후 연희동 화교만두를 기대하며 중국집에 갔으나 유명 맛집 두 곳 다 수요휴무라고 한다.


오늘은 정말 애도의 날인가 보다.


만두도 허락칠 않는다.


Memento mori!


이연주/작가

한국에서 동양화를 배운 후 독일에서 회화와, 사회와 연관된 예술을 공부했다. 작품 활동을 하며 대학교에서 드로잉을 가르치고 생활 속에서 어떤 예술같은 일들이 마주하고 있는지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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