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말과 행동에서 빅터 차를 보다




“내 마음에 각인된 풍경이 있다. 


헬리콥터를 타고 DMZ에서 서울로 올 때의 풍경이다. 헬기가 비스듬히 기울자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천 번도 넘게 본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평양 방문 후 의미가 달라졌다. 


초현대식 건물, 북적거리는 자동차, 서울의 에너지를 보면서 똑같은 광경이 북한에서 실현되지 않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단 하나의 설명 가능한 이유가 정치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헬기에서 바라본 서울을, 같은 유전자를 지닌 북한 사람들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사람들이 가난을 선택한 게 아니다. 정치가 가로막고 있다. 절대 잊을 수 없다. 화가 나고 슬프기도 하다 동시에 희망을 느낀다.”


주한 미국 대사로 내정된 걸로 알려진 빅터 차 교수가 평양 방문 이후 밝힌 소회다.


아마도 트럼프도 이런 감정을 느끼고 싶어 DMZ 방문을 추진했는지 모른다. 짙은 안개에 황사까지 겹쳐 DMZ 방문을 접게 되자 크게 실망한 트럼프. 비무장지대로 상징되는 가장 극적인 장소에서 남과 북의 현실, 그 엄연한 차이를 전 세계에 설명하며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골간을 외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트럼프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DMZ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과 국가를 꾸려나가고 자유와 정의, 문명과 성취의 미래를 선택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 북한은 부패한 지도자들이 압제와 파시즘 탄압의 기치 아래 자국민을 감옥에 가뒀다. 이 실험의 결과가 이제 도출됐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극명하다."


"한국의 기적은 자유국가의 병력이 1953년 진격했던 곳, 이곳으로부터 24마일 북쪽까지만 미쳤다"면서 "번영은 거기서 끝나고 북한이라는 교도소 국가가 시작된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잔혹한 독재자가 주민들을 저울질해 등급을 매기고, 주민들은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난방과 전기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생활하며, 영유아의 30%는 영양실조로 인한 발육 부진을 겪고 더 많은 사람이 기아로 목숨을 잃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제노역, 종교탄압, 영유야 영양실조 등 억압과 인권 침해, 경제적 궁핍으로 고통 받는 주민들의 생활상을 일일이 열거하며 김정은 정권을 향한 강력한 비판과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트럼프가 이처럼 북한 인권과 인도주의적 이슈를 들고 나온 건 향후 북한과의 접촉에서 비단 비핵화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도 포괄적으로 다루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인 “최대 압박을 통한 최대 관여(Engagement)”를 직접 설명한 것이다.


‘최대압박 최대관여’ 정책의 밑그림을 바로 빅터 차 교수가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 


2002년 1월 ‘매파 관여’ 정책(Hawk Engagement)이란 논문으로 주목을 받았던 빅터 차 교수.





그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비대칭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허를 찔려 쩔쩔맸던 경우는 2005년 BDA 사태와 2014년 2월 유엔 인권조사위가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했을 때 두 번 뿐 이라며 이게 새로운 대북 전략의 지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한의 현금을 줄이기 위한 추가조치와 함께 반인도적 인권범죄의 책임을 지속적으로 묻고 이를 통해 북한에게 핵무기는 무용지물일 뿐이며 안보, 인권, 경제 등을 포함하는 모든 문제를 논의하는 협상과정만이 유일한 출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국회 연설은 이같은 빅터 차의 Hawk Engagement구상을 충실히 반영한 트럼프 버전으로 이해된다.

 

트럼프는 북한에 대해 미사일 개발을 멈추고 검증 가능한 총체적 비핵화에 나서라며 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북한과의 접촉이 시작되면 비핵화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과 경제 상황 등 모든 이슈를 다루는 포괄적 대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과연 트럼프의 ‘최대 압박과 최대 관여’에 어떻게 반응할까? 북한이 비핵화 대화도 거부하고 있는 마당에 인권 문제까지 포함한 포괄적 협상에 응답하리라고 기대하는 건 지금 상황에서 무리다.


당장 북한은 미국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일 것이다. 트럼프 말은 “핵전쟁에 도화선을 달기 위한 망동”이라는 식으로 들고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내심 고민이 깊을 것이다. 미국의 대북 전략이 명확해진 이상 자신들의 전략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패를 본 북한 김정은의 다음 셈법은 무엇일까?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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