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빨치산 칼로 軍을 친 김정은


김정은이 차도살계로 북한군 1인자를 내쳤다. 빨치산 혈통을 내세워 군에 본때를 보인 것이다. 북한이 최룡해 주재로 당 지도부에 불순하게 행동한 군총정치국을 검열하고 있다고 국정원이 밝혔다. 총정치국장 황병서와 제1부국장 김원홍 그리고 총정치국 소속 장교들이 처벌받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당을 통한 군의 기강 잡기라는 해석이 많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아버지 김정일의 소위 선군정치에서 벗어나 당 중심의 국가로 재편하고 있다. 36년 만에 당 대회를 개최했고, 정치국 등 당 기구를 활성화해서 자신의 통치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당 중심의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대내외에 선전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선군정치로 비대해진 군부를 확실하게 틀어쥐는 게 중요하다. 


이같은 작업이 20년 만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20년 전인 1997년 김정일은 고난의 행군으로 대표되는 대기근과 경제 정책의 실패로 인한 주민의 불만이 자신으로 향하는 걸 막기 위해 대대적인 숙청 작업에 나섰다. 


이른바 심화조(深化組) 사건이다. 김정일은 주민의 경력과 사상 조사를 심화시킨다며 비밀경찰 조직인 심화조를 설치해 주민들을 대대적으로 조사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당 농업담당비서인 서관히는 대기근의 책임을 지고 총살당했고, 고참 간부와 그들의 측근, 친척 등 25,000명이 숙청당했다. 1만명은 피살됐고, 1만 5천명은 수용소에 수감됐다.

 

김정일은 이같은 숙청으로 김일성 치하에서 권력을 누리던 세력을 제거하고 본인만의 권력을 확실하게 틀어 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이 지점을 김정은 체제에 대입해 보면 고개가 조금 갸우뚱해진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군부의 현영철을 총살시키고, 당 조직지도부에서 잔뼈가 굵은 황병서를 군부 1인자 지위인 총정치국장에 앉힘으로써 나름대로 군부를 장악한 것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왜 이 시점에 군대 기강잡기가 필요했을까? 더구나 국제 제재 국면에서 미국과의 대결도 불사하겠다며 허풍을 치고 있는 시점에 왜 군부를 건드렸을까? 


그래서 필자는 국정원의 또 다른 발표에 오히려 더 시선이 간다. 


② 음주가무는 왜 금지시켰나?


국정원은 북한이 "당 조직을 통해 주민 생활 일일 보고 체계를 마련하고 음주가무와 관련한 모임도 금지했으며 정보유통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유엔 안보리 제재로 부정적 파장이 예상됨에 따라 민심 관리에 총력 기울이고 있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북한 주민들이 모임을 갖고 술을 마시면 체제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낼 수 있기에 사전에 이를 막기 위해 음주가무 금지라는 조치를 내렸다는 게 국정원의 분석인 것이다.


안보리 제재로 고통을 받는 계층은 아무래도 체제에 대해 부정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안보리 제재는 북한에 대한 원유 차단, 광물과 섬유 제품 수출의 제한 등이 주요 골자이다. 이것은 주로 장마당을 통해 거래하는 계층이나 무역을 주로 하는 계층에게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또한 각종 사치품의 금수 같은 조치는 북한 핵심계층을 노린 것이다. 


그런데 북한 권력층은 김정일 시대부터 권력을 앞세워 장마당으로 대변되는 시장화 세력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시장 경제적 거래를 묵인하거나, 아니면 아예 각종 회사를 직접 차려 대외 무역과 대내 상거래를 상당부분 차지해 왔다. 



▲ 지난 2014년 10월4일 인천 송도 오크우드호텔에서 우리 측 류길재 통일부장관 등과 티타임을 갖고 있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왼쪽)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



여기에 북한 군부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오히려 김정일 선군시대 때에는 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시장화 추세에 개입해 이런 저런 이권과 뇌물을 챙겨 왔으며 직접 무역회사까지 운영해 왔다. 이 과정에 상당수준의 부정이 만연해 있다는 것은 탈북자들의 증언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최룡해를 통한 황병서 김원홍 처벌은 혹여 국제 제재로 인해 터져 나올 수 있는 주민 불만을 선제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그동안 각종 뇌물과 이권 개입으로 부를 축적해 온 군부 세력을 먼저 친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동시에 유엔 제재로 주민 불만이 고조되고 민심이 이반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김정은 체제 안정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외부 정보의 통제로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③날라리 바람에 말려든 청년이 사회적 우환거리?


실제로 북한은 최근 외부 문물에 대한 유입에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2017년 11월 3일 북한 노동신문은 ‘제국주의 사상 문화적 침투책동을 단호히 짓부시자’는 장문의 글을 실었다. 


“최근 들어서 반동적인 사상 문화가 침략의 주역이 되고 있으며 서방 세계가 협력과 교류 등 허울 좋은 간판 밑에 공개 또는 은폐된 방법으로 반동적인 사상 문화를 끈질기게 유포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노동신문은 특히 “주민의 자주의식 말살에는 반동적 사상문화의 침투가 군사적 침략보다 큰 밑천을 들이지 않고도 효과를 보고 있다”며 “여러 나라에서 비정상적인 정권교체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제국주의자들의 사상 문화적 침투 책동과 심리 모략전에 놀아난 결과”라며 오렌지 혁명 같은 아랍의 봄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고 있다. 


외부의 정보 유입이 북한 체제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체제 위기감을 공공연히 표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구나 노동신문은 외부 정보에 북한의 젊은 세대가 심하게 노출됐다는 점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고 있다. 노동신문은 “외부의 사상 문화적 침투 책동에서 첫 번째 대상은 청년들”이라며 “다른 나라들의 체제 전복과 같은 ‘색깔혁명’에는 반동사상문화에 젖은 청년들이 서 있었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청년들에 대한 사상 교양사업을 홀시하면 청년들이 쉽게 날라리 바람에 말려들 수 있으며 사회의 우환거리로 될 수 있다.”고 적었다.


이 문장에서 묘하게 11월 14일 판문점으로 넘어 온 북한 병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총탄으로 중상을 입은 20대의 북한 병사. 그가 의식을 되찾으면서 처음 한 말이 ‘남한 노래를 듣고 싶다’라는 보도를 보고는 북한 청년층에 남한 문화가 정말 많이 퍼졌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유엔 제재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걸로 보이는 북한.  


외부 문화와 정보 유입에 대한 경계심을 극도로 높이는 북한. 


이런 저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군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하는 김정은 체제. 


혹여 또 다른 도발을 일으켜 이같은 체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한반도 정세가 우려스럽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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