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한반도 훈풍과 김정은의 역설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을 비롯해 미국 동부가 꽁꽁 얼어붙었다. 미 대륙을 덮친 폭탄 사이클론 때문이다. 동사자까지 나왔다고 하니 가히 살인 한파다.  


그런데 2018년 새해 초 한반도 정세 기상도는 훈풍이다. 


불과 몇 달 전 전쟁까지 거론됐던 한반도 상황이고 보면 극적 반전이다. 계기는 물론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다. 자신들이 핵 강국임을 강조하면서도 북한 대표단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선언해 신 데탕트의 분위기를 띄웠기 때문이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화답하고, 시큰둥하던 트럼프마저 평창 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 군사 훈련을 중단하기로 한국과 조율하면서 남북대화가 곧바로 가시권에 들어왔다.


①핵과 미사일로 도발을 일삼던 김정은이 왜 그랬을까? 


김정은 올해 신년사는 얼핏 보면 예년과 유사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2017년 자신들이 취한 특출한 성과는 바로 국가 핵 무력 완성이라는 역사적 대업”이라며 핵무력 완성을 공식화한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있는 핵강국”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하지만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는 순간 김정은은 또 다른 숙제를 떠안아야 한다. 핵을 완성한 만큼 이제는 경제에 올인해서 인민들에게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거다. 


김정은은 권력 승계 직후 자신의 전략노선을 ‘핵 무력과 경제의 병진 노선’으로 정하고 핵 완성과 경제 발전을 인민들에게 약속했다. 


2013년 3월 말 김정은은 핵 무력이 완성되면 “국방비를 추가적으로 늘이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일 수 있게 되고 그러면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핵 무력 완성을 위해 허리띠를 좀 더 졸라매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시점, 고통 분담을 요구했던 ‘핵 무력’을 완성했기에, 이제는 공언한 대로 경제적 성과와 생활 향상을 인민들에게 보여줘야 할 시점인 것이다. 





특히 올해는 북한 정부 수립 70주년이다. 


북한 말 대로 ‘세계가 공인하는 전략국가’의 위상에 걸맞게 기념해야 할 시점에 경제 사정이 나아져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스트레스는 김정은의 신년사 곳곳에서 묻어난다. 


2018년 구호를 “혁명적인 총공세로 사회주의 강국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자”로 제시했다. 핵무력 건설의 승리를 모든 경제 부문으로 확산시키는 ‘혁명적 총공세’를 벌여 나갈 것을 주문하는 구호다. 


더구나 북한 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의 3번째 해인 올해에 경제 활성화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며 정치 군사적 성과보다는 구체적인 경제성과가 무엇보다 절박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성과를 이루고 장마당을 위시한 북한 내부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대북 제재가 먼저 조금이나마 느슨해져야 숨통이 트일 것이다. 또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돈이 들어와야 한다. 


이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선택은 첫 번째는 미국과의 담판이고 두 번째는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등으로부터의 투자를 이끌어 내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 트럼프는 제재 압박에서 요지부동이니, 탈출구로 한국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마침 평창 올림픽이라는 인류 평화 이벤트는 좋은 계기가 된 것이다.


②남북 접촉 급물살…김정은에겐 역설?


이런 계산이고 보면 남북 간의 접촉과 교류는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곧 열릴 평창 올림픽 참가를 논의할 남북 회담을 필두로 남북 간 교류와 접촉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가히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만개했던 남북 화해와 협력 시기가 다시 도래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남북 간 대화와 교류의 활성화가 오히려 김정은에게 해롭게 작용하고 나아가 김정은을 곤궁으로 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정은의 아킬레스건은 경제다. 제재를 느슨하게 하기 위해 화해 분위기로 나온다는 건 그만큼 제재의 효과가 있다는 걸 김정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번 신년사에서 자력과 자립을 11번 강조한 것도 결코 허투루 볼 일은 아니다. 


그런데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김정은의 목표는 양날의 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2000년대 초반의 북한 경제 구조와 2018년 지금의 북한 경제 구조는 다르다. 북한에 400개 가량의 장마당이 있고, 시장의 발달로 물자와 인력의 이동과 교역이 활성화됐고, 휴대 전화 등 통신의 발달로 북한 주민들 사이에 정보 교류도 빈번해졌다. 여기에 USB등을 통한 외부세상의 정보 유입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닐 만큼 북한 내에 넘쳐난다. 


단순화시킨다면 북한 내에 ‘시장 경제 혹은 자본주의 맛본 경제적 인간형’이 확산됐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실시한 신년사에서 핵이란 단어는 42번 등장하지만 경제는 120번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핵보다도 경제가 더 중요한데, 또 그만큼 김정은이 경제를 잘못 다뤘다는 걸 반증한다.


김정은이 그렇게 원하던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하지만 결국 김정은 권력 유지의 핵심은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이 경제를 살려서 시장을 맛본 주민들과 공존하느냐, 아니면 인민 경제 생활이 예상만큼 향상되지 않아 김정은 정권에 대한 인민들의 불신이 증대할 것이냐, 핵 무력이 완성된 이제 김정은에게 경제는 권력유지를 위한 진정한 시험대인 것이다. 


남한과의 대화에 적극 나선 김정은에게도 결국 문제는 경제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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