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6일 저녁 6시 55분. 


일본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북한 미사일 발사한 듯…건물 안이나 지하로 대피를”


휴대폰으로 날아든 경보 때문에 일본 시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5분 뒤인 저녁 7시. “경보는 잘못된 것”이라는 정정 알림이 다시 떴다. 대단히 죄송하다는 문구도 덧붙였다. 이유를 알아보니 온라인에 속보를 발송하는 장치를 잘못 조작했단다. 실제 상황이 아니어서 일본 시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영 개운치 않았다.


하와이 상황은 더 심각했다.


1월 13일 토요일 아침 8시7분. 하와이 전역에 사이렌이 울려퍼졌다. “탄도 미사일 하와이 위협. 즉시 대피처를 찾아라. 이건 훈련이 아니다”는 비상경보 메시지가 발신됐다. 주민들은 혼비백산, 혼돈 그 자체였다. 실제 상황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기까지 ‘공포의 38분’이었다. 가뜩이나 북한 핵 미사일 위협으로 대피 훈련까지 한 터라 하와이 주민과 관광객들은 죽음이 임박했다고 느꼈을 법하다.





이번 사건도 실수 때문에 발생했다. “비상관리국 직원이 작업 교대 중 경보 시스템을 점검하다가 버튼을 잘못 누른 탓”이란다.


그런데 주목되는 건 북한의 반응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핵의 곤봉을 휘둘러 악행을 해오던 미국이 지금은 언제 머리 위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핵 공포증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웃지 않을 수 없는 희비극이 연출됐다”고 논평까지 하면서 자신들의 선전전에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소동이 단순히 실수라고 치부하거나, 희비극이라며 조롱할 일일까?


자칫 미국과 일본 당국이 이 오보를 기반으로 대응에 나서기라도 했다면, 그래서 미사일로 대응하거나 전투기를 발진시키는 군사적 조치를 취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더구나 미국은 이른바 북한 코피(Bloody Nose) 전략을 만지작거리는 상황이고 보면 더 그렇다. 


북한의 위험한 행동을 막기 위해 사전에 제한적으로 북한 핵시설과 미사일 기지 등을 선제 타격하겠다는 전략인데,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게 제한 타격인지 전쟁 개전인지 알 수 없어 만약 미국의 선제 타격을 받으면, 자신들의 무기를 서울과 도쿄 혹은 미국에까지도 쏟아 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평창 올림픽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가 남북한에는 회담을 넘어 이제 인적 교류도 시작될 조짐이다. 북한 대표단과 응원단 수 백 명이 분단된 한반도의 동쪽과 서쪽 비무장 지대를 통과해 넘어올 계획이다. 전 세계는 대결과 대립의 장소가 화해와 교류의 상징으로 바뀌는 모습을 1월말과 2월초 미디어를 통해 보게 될 것이다. 분명 한반도 해빙의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위의 두 소동과 미국과 북한의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중이고 살얼음판이다. 자칫 사소한 오해나 실수가 한반도 평화를 순식간에 날려버리고 전쟁의 참화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평양을 방문한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은 북한에 ‘몽유병 환자들’을 전달했다. 


2013년 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된 [The Sleepwal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 라는 제목의 책이다. 의도치 않은 충돌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리는 책이다.


크리스토퍼 클라크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2012년 낸 이 책에는 1차 대전의 책임은 독일뿐 아니라 참전국 모두에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어느 나라도 실제로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해지면서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전쟁으로 끌려 들어가게 됐다는 것이다.


“그게 아닌데…” “그럴 의도가 아닌데…” “그런 줄 몰랐는데…” 

이런 대화들은 갈등을 겪는 국가들 사이에선 소용없는 변명들이다.





3차 대전으로까지 치달을 뻔 한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미국의 강력한 조치에 당황한 소련 지도자가 케네디 미 대통령측에 전보를 보내면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미국이 쿠바 침공을 않는다면 소련은 쿠바 미사일 배치를 철회할 수 있음을 알리면서 해결책의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인 1963년 백악관과 크렘린 사이엔 직통전화가 설치됐다. 오해로 인한 인류 공멸을 막기 위한 말 그대로 ‘핫라인’인 것이다.


남북은 물론 북-미 간에도, 그리고 한반도 주변 관련국들도 사소한 오해로 인한, 그래서 서로의 진의를 왜곡한 탓에 발생하는 참화는 막아야한 한다. 더구나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해빙 무드에선 사소한 오해가 자칫 판을 송두리째 뒤엎을 수 있다.


몽유병 환자들에게 필요한 건 핫라인일지도 모른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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