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과 김정은의 닮은 꼴 수사학...이번엔 언행일치?




① “꽃피는 시절이 오면 남으로”…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2000년 6월 1차 남북 정상회담 합의 가운데 당시 가장 눈길을 끈 조항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다. ‘적절한 시기’에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김정일의 방남을 성사시켜 남북 정상회담을 정례화하고, 이를 통해 남북관계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전략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측은 방남 시기를 확약해 달라고 김정일에 여러 차례 요구했고 이에 김정일 위원장이 이렇게 답한다.


“꽃피는 4월이나 5월에 방문하겠다. 그전에 김영남 위원장을 먼저 보내지요”


그리고는 2000년 9월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김용순 비서를 특사로 보내 남한 이곳저곳을 둘러보게 한다. 사실상 김정일 자신의 방문 코스를 사전 점검한 것이다.(2월 16일자 칼럼 “김정은 특명 받고 왔습니다” 새 길 열고 막힌 곳 뚫고…남북 특사회담의 추억 참고) 


하지만 김정일의 꽃피는 시절 남쪽 방문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들인 김정은 위원장이 꽃피는 4월 남쪽에 오기로 합의했다. 비록 서울은 아니지만.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4월 말 3차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로 정의용 특사 일행이 북한과 합의한 결과다.


6.25 전쟁 이후 북한 최고 지도자의 최초 남한 방문. 


김구 선생이 1948년 조국 분단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넘었던 그 38선을 이번엔 김일성의 손자이자 북한 최고 수뇌인 김정은이 넘어 온다고 하니 가히 역사적인 일이다.  


이번엔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까?


② “대화하는 동안 핵과 미사일 도발은 중단“





2000년 10월 하순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 들어선다. 당시 북한이 자랑하던 대형 집체극 ‘아리랑’ 관람을 위해서였다. 공연이 한창 무르익는 순간 갑자기 올브라이트 눈앞에 깜짝 놀랄 광경이 펼쳐진다. 북한 미사일이 창공으로 날아오른 것이다. 대형 카드 섹션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을 실감나게 연출한 것이다.


이때 옆자리에서 관람하던 김정일 위원장,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지금 본 미사일 발사가 당신네 미국이 보는 마지막 미사일 발사가 될 거요”


당시 올브라이트 장관은 김정일 위원장과 6시간여 회담을 했다. 그리고 양국은 평화구축이 공통의 관심사라며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직전 북한은 중·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파기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미사일은 계속 쏘아 올려졌다.


이번 3.5특사 합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대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선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같은 추가 도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 4월로 예정된 한미 훈련이 예전 수준으로 진행된다면 이해할 수 있다고 양보하듯 선심을 썼다. 대신 한반도 정세가 안정되면 훈련을 조절해 달라고 요구했다.


대화하는 동안 도발하지 않는 건 외교가의 불문율이다. 


‘대화 시 추가 도발은 없다’는 김정은의 언명이 이번엔 행동으로 옮겨지기를 기대한다.


③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 





이번 특사 방문 중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 바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고 말 한 부분이다. 


수령관과 주체사상을 내세운 북한에선 가부장적 위계질서가 국가 질서 유지와 통치에 있어 매우 강력한 정당화 기제이다. '선대의 유훈'은 선대의 존엄을 절대시하면서 후대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북한에서 당 규약이나 헌법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의 이 말에 많은 무게를 실린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입에서 비핵화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일단 북미 간에, 남북 간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무릎맞춤의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더구나 북한이 “군사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 보장되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밝힌 만큼 협상의 단초는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과거 김정일도 한반도의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수차례 공언했으며 김정은 시대인 불과 2년전인 2016년 7월 북한 정부 대변인 성명에도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는 이 언명이 등장한다.


2016년 당시 성명에는 “한반도 비핵화는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훈이며 김정은 동지와 당과 군대, 인민의 드팀없는 의지”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러면서 비핵화를 위한 조건을 달았다. 


“남한에 있을지도 모를 미국의 핵무기를 철수시키고, 한반도 주변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 운반 수단도 없애고. 북한을 핵으로 타격하지 말 것이며, 궁극적으로 주한 미군을 철수시켜야 진정한 비핵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④ 미국에 전할 추가 북한 메시지는?





이번 특사 합의는 한반도 평화를 가져올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또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미국에 전달할 북한의 추가적인 입장을 가지고 왔다”며 앞으로 여러 가지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헛된 길일지라도 일단 한번 가보기로 했다”며 북한과의 대화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 국무부도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 못했다”며 격하게 환영했다. 북한의 획기적인 태도 변화를 감지한 듯한 반응이다. 


하지만 북한과의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이 시작되면 북한은 위의 전제 조건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더욱 더 신중해야 한다. 살 얼음판위에서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은 사례를 우리는 그동안 많이 봐 왔기에 더욱 그렇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피처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