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면 봄날에 꽃길 산책 나온 어르신과 조카 정도로 보였다. 


60대 중반의 신사는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진지하게 설득하고 또 달래는 것으로 보인다. 30대 중반의 젊은이는 때로는 얼굴을 붉히고 때로는 귀 기울여 경청하고, 또 무언가를 묻기도 한다.


전 세계가 주목한 이른바 도보다리 산책과 ‘벤치 밀담’. 두 정상이 함께 산책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40분가량. 둘만이 아는 속 깊은 대화였다. 


이어 발표된 4.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북한 최고 지도자가 처음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한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해체', 이른바 CVID는 북한에게 굴욕을 주는 것이라며 그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던 북한으로서는 커다란 전환이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에서 비핵화의 구체적 시점을 못박지 못했기에 말 포장에 그친 것이라는 부정적 해석이 일각에서 나온 것도 사실이다.


일주일 전인 2018년 4월 20일.


김정은 위원장은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열고 핵-경제 발전 2단계 전략 노선을 공표했다. 북한은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핵 개발 공정도 모두 진행됐고, 핵 병기화 작업도 완결됐기 때문에 앞으로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 발사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함경도 풍계리 핵 실험장도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동시에 핵 위협이나 핵 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밝혔다. 핵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NPT 체제의 핵보유국처럼 핵 국가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겠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때문에 핵동결이냐 핵보유국 선언이냐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결국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는 다가올 북미정상회담에서 핵 폐기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와 시간표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있다. 


그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얼마나 걸릴까?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 핵 관련 시설, 이 세 가지가 비핵화의 주요 대상이다. 핵시설은 영변 핵 단지에 원자로와 핵 재처리와 핵연료봉 시설 등이 있다. 영변 핵 단지엔 10년 전에는 건물이 5~6개 동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300여 동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20~60기, 확보한 핵물질은 플루토늄 50kg, 고농축우라늄 280kg으로 추정하며 매년 플루토늄 6kg, 고농축우라늄 40kg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핵시설의 완전폐쇄와 핵무기·ICBM의 해체나 해외반출, 핵물질의 이전 등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신고와 국제사회의 검증과 사찰이 필요하다. 이 프로세스를 마치는 데 얼마의 기간이 걸릴지 예상하기 어렵다. (어떤 전문가는 최소 10년의 세월을 예상하기도 한다)


또 이를 위한 협상 과정도 험난할 것이다. 북한의 신고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며 상시 사찰과 검증을 요구하게 될 국제사회와 자국 영토에 대한 상시 사찰은 주권 침해로 규정하게 될 북한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핵무기와 ICBM의 신속한 폐기나 이전이 이뤄지지 않은 채 사찰과 검증에 대한 줄다리기가 계속된다면 그사이 북한은 핵을 보유한 채 기능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투명성 확보와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행정부처럼 북한에 속지 않겠다고 하고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도 않다고 말한 바 있다. 불신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풍계리 핵 실험장을 전문가와 언론을 불러 놓고 공개리에 폐쇄하겠다며 결코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핵 폐기에 따른 보상으로 체제 보장과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북한, 완전한 비핵화 때까지 압박과 제재를 멈출 수 없다는 미국. 


두 나라의 불신을 불식시키고 신뢰구축을 위한 핵심 역할은 결국 오롯이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몫이다.


미국이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핵을 갖고 어렵게 살겠냐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를 미국에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중재자가 문 대통령이고, 한미 공조를 통한 트럼프의 뜻을 북한에 오해없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남북 정상 간의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남북 경협조치는 남북뿐 아니라 북미 간의 신뢰구축을 위한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이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한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천명한 만큼 남한이 경협으로 북한 경제 개발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북한을 개혁과 개방으로 이끈다면 미국도 북한의 변화를 믿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 완전한 비핵화 과정은 북미 간 신뢰구축과 한국의 중재, 그리고 남북 경협이라는 톱니바퀴까지 맞물려 돌아가야 가능할 수 있는 셈이다. 


2018. 4. 29. 

[판문점 정상회담 ③]이 이어집니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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