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지만 그래도 깜짝 등장이었다. 


2018년 4월 27일 오후 6시 15분.


판문점 선언이 발표된 직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벤츠가 평화의 집 현관에 도착했다. 수행원이 차 문을 열어주려고 다가가는 순간, 갑자기 반대쪽 차문이 열리더니 살구색 정장을 입은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퍼스트레이디의 첫 한국 방문.


하늘색 단정한 옷차림의 김정숙 여사가 갓 서른을 넘긴 리설주 여사를 다정하게 반겨주었다. 


하루 사이에 김 위원장과 친분을 많이 쌓았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환대에 “남편께서 회담 갔다 오셔서 대통령님과 좋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회담도 잘 됐다고 해 정말 기뻤습니다”라고 답한 리설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남편 김정은과 점심을 함께 했다는 사실을 은근히 내비치면서  자신이 무대에 등장할 순서가 되자 나왔다는 걸 굳이 숨기지 않았다.

 

만찬장에서 초등학생이 부르는 고향의 봄을 입모양으로 따라 부르기도 하고, 행사 내내 겸손한 자세를 보여줘 좋은 인상을 남겼다.


단아한 모습의 리설주는 인민복 차림의 살 찐 김정은, 혹은 독재자의 모습을 가진 김정은의 부정적 이미지를 한방에 날려주는 완벽한 보완재이다.


특히 리설주 여사가 김 위원장을 남편으로 부르는 것도 김정은 위원장 이미지에 플러스 효과다. 김 위원장의 생모인 고용희가 김정일 위원장을 ‘장군님’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조가 되는 부분이다. 통상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에게 ‘장군님’ 또는 ‘원수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데 리설주의 ‘남편’ 호칭은 북한 퍼스트 패밀리도 유별나지 않다는 걸 은연중에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의 베이징 방문 때 동행해 국제사회에 데뷔한 리설주 여사는 중국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 여사와 중국어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중국 시진핑 부부와 김정은 부부는 여느 정상회담처럼 네 사람이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고, 동석해 만찬과 오찬도 함께 했다.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다른 국가의 정상과 만날 때 배우자가 동석하는 건 국제 관례이다. 두 나라의 관계가 지극히 정상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난 북중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남북 정상회담 때에도 퍼스트레이디 리설주가 동행한 건 북한 스스로 자신들도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국가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리설주의 국제 사회 데뷔 화룡점정은 다가올 북미 정상회담일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트럼프-김정은의 만남은 가히 세기의 회담이 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리설주가 동행한다면, 그래서 트럼프 부인 멜라니아와 나란히 선 리설주의 모습이 전 세계에 긴급 타전된다면 서구사회와 관련국들은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가지게 될까?


비핵화와 제재 해제, 경협이라는 무겁고 딱딱한 이슈들이 남북미 간에 크게 어긋나지 않고 돌아간다면, 국제 사회도 북한이 믿을 수 있는 나라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완전한 비핵화와 경제 총력 노선 선포, 남북 경협의 박차 등을 통해 저개발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북한. 그 과정을 거쳐 정상국가로 거듭 나려는 시도에 북한의 히든 카드인 리설주라는 소프트파워가 전 세계에 통한다면 그 길이 좀 더 앞당겨지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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