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극비리에 날아갔고 한 번은 공개리에 갔다. 


두 번째 평양행은 전용 비행기에 기자들까지 동승했다. 무언가 극적 이벤트가 있을 거라는 걸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평양 도착 전 기자들과의 환담에선 ‘위대한 제스처’를 언급했다. 하지만 폼페이오의 평양 체류 13시간, 무박 2일 장거리 비행 출장의 성과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 


①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적국이었다. 이제 함께 평화로”





미 국무장관 전용비행기에서 내린 폼페이오 장관.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김영철이 반갑게 맞이한다. 북미회담 준비 과정을 관리한 북한의 책임자이자 북한의 정보파트를 이끈 실세이다. 폼페이오 역시 미국 CIA 수장을 지낸 인물. 두 스파이 수장이 맞잡은 손을 북한 방송은 다큐멘터리처럼 편집해 북한 주민들에게도 공개했다.


김영철 부위원장이 마련한 환영 오찬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외교가의 오랜 레토릭인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적국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고, 세계를 향한 위협을 치워버리며, 여러분의 나라가 자국민이 받을 자격이 있는 모든 기회를 누리도록 함께 협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는 북한 김영철 부위원장을 훌륭한 파트너라고 추켜세웠다.


② 활짝 웃는 두 사람, 김정은과 폼페이오





내막을 모르고 보면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 오랜만에 해후한 것처럼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과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면서, 왼손은 김 위원장의 팔 뒤쪽을 감싸 안았다. 김위원장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큰 눈웃음에 이가 보일 정도로 파안대소하고 있다. 


불과 40여일 전 두 사람의 딱딱하고 공식적인 첫 번째 악수 때와는 너무나 비교가 된다. 그동안 진행된 북-미간 협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극적으로 변했을까?


김 위원장은 90분 동안 진행한 폼페이오 장관과의 두 번째 방북 회담에서 ‘만족한 합의’를 봤다고 조선중앙 통신은 전하고 있다. 다가올 북미 회담의 실무적인 문제와 절차, 방법 등을 놓고 심도있게 논의했는데, 미국이 새로운 제안을 했고 거기에 “만족”했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도 전달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감사하다고 표시하면서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도 힘든 단어들을 구사했다.


"다가올 북미 회담이 훌륭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훌륭한 첫 걸음을 떼는 역사적인 만남이 될 것입니다"

  

폼페이오 특사와의 회담에서 북미 양측이 사실상 한반도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에 될 빅딜에 사실상 합의했다고 봐도 무방한 대목이다.


③ 번쩍 든 두 팔, 손가락으로 그린 V





여명을 밝기 직전 가장 어둡다는 새벽 3시. 미국 메릴랜드 앤드루스 공군기지.

도쿄와 앵커리지의 밤공기를 가르며 날아온 국무장관 비행기가 착륙했다. 이어서 UNITED STATES OF AMERICA 글자가 새겨진 미국 군용기가 거대한  성조기가 걸린 곳 앞에 멈춰 섰다. 북한에 억류됐다 석방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태운, 의료시설을 갖춘 보잉 C-40 비행기였다.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 내외, 펜스 부통령 내외, 볼턴 보좌관 등 미국 수뇌부가 총출동했다.


길게는 30개월이 넘는 북한 억류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한국계 미국인 3명(김동철,김상덕,김학송)이 다시 미국 땅을 밟는 순간이다.


두 팔을 번쩍 들었고, 손가락으로는 승리의 V를 그렸다. 북한 땅에서의 억류 생활을 과연 끝낼 수 있을까 하는 희망조차 없었던 그들이, 극적으로 변한 북미관계 그리고 극적으로 변한 한반도 정세의 첫 수혜자가 된 것이다. 평양에서 폼페이오 전용기가 이륙해 북한을 떠나기 겨우 한 시간 전에 이들에 대한 특별 사면이 단행될 만큼 억류자 석방은 극적이었다.


이들의 석방에 고무된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직접 전했다. 북미 회담이 열리기 전에 이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줘서 매우 감사하다고 밝혔다. 


다가올 북미 회담에 대한 기대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우리 미국과 북한은 새로운 기반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과거 북-미간에는 지금과 같은 관계가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굉장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고 이를 희망합니다”


“훌륭한 역사적 첫걸음과 만족...새로운 기반과 굉장한 일”


다가올 북미 정상회담에서 마주 앉을 두 협상가가 무릎맞춤을 하기도 전에 벌써 엄청난 기대감을 표시한 것이다. 북-미간의 사전 빅딜이 단단히 진행된 모양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억류자 도착이후 자신의 트위터로 북미 회담의 장소와 날짜를 전격 공개했다. 사흘 안에 밝히겠다고 하고서는 자신의 트위터로 세계적 뉴스를 타전한 것이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와 역사에 남을 장소가 된 싱가포르. 

북미 두 정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과연 어떤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질까? 


미증유의 북-미 정상회담이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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