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달인’을 자칭하는 그의 말은 현란하다. 상대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기를 살리기도 하고 은근히 슬쩍 꼬집기도 한다. 그의 말은 모호하다. 하겠다는 건지 안하겠다는 건지, 표현 그대로 믿으면 헷갈릴 때가 있다. 하지만 행간의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2018년 5월 23일 미국 백악관에서 돌발 기자회견을 가진 트럼프 말이다.


① ‘성동격서 갈라치기’ “나도, 시진핑도 최고의 포커 선수”


문재인 대통령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을 능력자라고 한껏 치켜세우더니 갑자기 중국 시진핑 주석을 화제에 올린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세계 최고 수준의 포커 플레이어”라고 칭찬 아닌 칭찬을 늘어놓은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평소 속내를 잘 알 수가 없지만 좋은 친구라고 말해왔던 트럼프 대통령. 


“시주석은 월드 클래스의 포커 선수입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 주석도 자신도 ‘세계 최고’ 포커 선수라며 한 자락을 깐 트럼프는 곧장 핵심을 찌른다.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두 번째 만남 이후에 북한 태도가 변했습니다. 내가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최근 북한이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내세워 북미 회담 재고론을 제기하면서 태도가 돌변했는데, 그 배후엔 중국이 있다고 몰아세운 것이다. 북미 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중국에 대해 ‘나 트럼프가 무척 기분이 나쁘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너무 중국만 믿지 말라는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잇따른 트럼프의 ‘배후론’에 놀란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을 급히 워싱턴에 보냈고, 왕이 외교부장은 “대북 국제 제재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며 고개를 숙이고 미국의 불편한 심기를 달래야 했다.


② 포커페이스 : “회담 안 해도 난 괜찮아…그런데 북한도 그럴까?”





북한에 대해서는 포커페이스를 보이며 판 휘어잡기에 나섰다. 회담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북한의 위협에 한판 기 싸움을 벌인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회담의 어떤 조건들이 있는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북미 회담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북미 회담 연기 혹은 불발 가능성을 미국 대통령이 공개리에 언급한 것이다. 바로 옆에 앉은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일이 있어도 북미 회담은 열릴 것이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 면전에서 말이다. 심지어 한발 더 나아갔다. 


“회담이 열리지 않아도 나는 괜찮습니다.”


그러면서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아픈 구석을 찔렀다. 이번 회담은 미국보다 북한이 더 필요로 하는 회담이라는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이 25년 후, 아니 50년 후를 내다본다면, 그가 북한에 내린 결정에 매우 자부심을 갖게 될 겁니다.”


회담이 열리면 경제 지원이다, 정권 보장이다, 평화 협정이다 등등 북한이 받을 게 더 많은 데 잘 생각하라며 한껏 블러핑을 한 것이다.


③ 은근한 밀당  “올인원이 좋지만 물리적으로 어렵기도 하고…”


그렇다고 북한의 체면을 일방적으로 깎아 내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인 비핵화에 대해 일정 정도 수용할 의사도 있음을 슬쩍 내비쳤다. 물론 말을 끝까지 들어야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모호한 화법을 잇따라 사용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다.





“물론 올 인 원 방식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 될까? 나는 그래야 한다고 완전히 확언하고 싶지 않습니다. 올 인 원이 상당히 바람직한 건 맞습니다. 그런데 똑떨어지게 그렇게 할 수 없는 물리적 이유가 정말 존재합니다. 물리적 이유 때문에 아주 짧은 기간이 걸릴 수 있는데...그렇더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올 인 원 방식입니다.”.


얼핏 들으면 무슨 말인지 헷갈리기 쉽다. 


단순화 시키면 ‘신속하고 압축적인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겠지만 북핵의 규모와 검증의 복잡성 등으로 어느 정도는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인 이행 방식을 수용할 수도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요구한 ‘일괄 해결’ 방식에서 한걸음 물러나 북핵의 단계적 폐기 가능성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그렇다고 북한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해석되는 건 싫었던 걸까? 다시 한 번 모호한 발언을 날린다.  


“협상에 들어가면 100% 확실했던 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고, 기회를 잃은 것처럼 보이는 협상도 때로는 쉽게 타결될 때가 많습니다.” 


북핵 게임판에서 북한 페이스에 말리지 않고 자신이 주도권을 잡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모호한 화법으로 회담 가능성과 불발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내며 판을 휘어잡고 있다. 과연 6월 12일 예정대로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김정은 두 협상가가 마주 앉게 될까? 두 럭비공 협상가의 밀당이 그렇게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이 칼럼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발언이 나오기 바로 직전 생산된 것입니다. 트럼프의 취소 발언에얽힌 그의 협상력을 읽고자 기획된 것이었습니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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