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9일 오전 10시 35분 북한의 북동쪽의 지축이 흔들렸다. 리히터 규모 3.9. 북한 여성 아나운서의 감격에 찬 보도가 이어졌다.


“강성대국 건설의 일대 비약을 창조해 나가는 벅찬 시기에 지하 핵 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인민에게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 주었다.”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시대 윤관이 북방 영토를 넓히면서 여진족을 정벌한 뒤 되찾아 이름 붙인 땅 길주. 조선 건국 초기 명재상인 황희는 “나이 일흔에 3000리 밖 임금의 명을 받들고 길주에 오니, 멀고 먼 지역 땅이 아닌 곳이로다. 주인이 잘 대해주어서 늙은 얼굴 센 머리털에도 오히려 운치 있게 지내도다.”라며 소감을 나타냈던 곳.


풍속이 중후하며 순박함을 좋아하는 길주. 하지만 꼭 그렇게 이름만큼 상서로운 곳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방랑 시인으로 유명한 김삿갓, 김병연이 노래한 패러디 글귀다.


길주(吉州) 길주 하나 길한 고을 아니요,

허가(許哥) 허가 하나 허가하지 않네.

명천(明川) 명천 하나 사람들은 밝지 못하고

어전(漁佃) 어전 하나 먹을 생선 없구나.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에 자리한 길주군에는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웅장한 산에 수많은 탑 모양의 봉우리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마치 만물상처럼 보이는 만탑산이 있다. 길주군 시내에서 약 42㎞ 떨어진 해발 2205m의 만탑산은 상부는 화강암, 하부는 현무암으로 이뤄져 있으며 핵 실험장은 만탑산과 주변 1000m 이상의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


만탑산 계곡이 바로 베일에 감춰진 북한 핵 무력 연구 개발의 핵심인 ‘북한 북부 지하 핵 실험장’ 바로 풍계리 핵 실험장이다. 


지축을 흔드는 6차례의 핵실험으로 세계를 뒤흔들었던 풍계리. 이번엔 또 다른 폭발이 진행됐다.


2018년 5월 24일 오전 11시. 


"촬영 준비됐나?" 질문에 "준비됐다"고 답하자 "3 2 1"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기폭 장치를 누르자 만탑산을 흔드는 묵직한 굉음이 산속에 울려 퍼졌다. 갱도 입구에 있는 흙과 부서진 바위들이 쏟아져 나왔다. 


입구 쪽에서 첫 폭음이 들린 이후, 안쪽으로 더 들어간 듯한 곳에서 두 번 정도 폭음이 울렸다. 굉음과 함께 짙은 연기가 어마어마하게 계곡을 뒤덮다가 내려갔다. 연기가 걷히자 주변엔 부서져 나온 파편들로 사방이 가득 했다. 현장에서 폭파를 지켜본 한 외신 기자는 “흙과 바위들이 분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풍계리 핵 실험장의 폭파는 모두 5번에 걸쳐 진행됐다. 북쪽의 2번 갱도와 서쪽의 4번 갱도, 남쪽의 3번 갱도 순으로 폭파는 이뤄졌고 생활동과 군 막사 등 관련 시설들도 모두 폭파됐다. 이미 1차 핵실험 이후 방사능에 오염돼 폐쇄된 1번 갱도까지 포함하면 “북한은 핵 실험장의 모든 갱도를 폭파했고 입구를 완전히 봉쇄했다. 지상의 관측 설비와 연구소, 경비 부대 건물 등도 철거했다. 경비 인원과 연구원들을 철수시키고 완전히 핵 실험장 주변을 폐쇄했다.” 





지난 12년 동안 세계를 뒤흔들었던 풍계리 핵 실험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북한은 “사용가능한 3번과 4번 갱도까지 폭파시켰고, 폭파 당시 갱도 입구에서부터 50m, 70m, 200m, 300m 지점마다 양쪽에 다이너마트를 심었다“면서 ”폭파된 풍계리 핵 실험장 복원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북한은 풍계리 외에 다른 핵실험장이나 갱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핵개발은 힘들다는 점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은 ”핵개발 과정에 이란이나 시리아와 협력하지 않았다”면서 미국에게 점수를 따려는 듯한 모습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CNN방송은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 폐기가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쇼’라고 평가 절하하는 보도를 했다.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반영된 것이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을 때에도 비슷한 보도가 있었다. 당시 미국 언론은 “북한 1차 핵실험의 강도 등을 볼 때 조악한 수준의 실험”인데 그게 “실제 핵폭탄인지, 초보적인 장치(primitive device)인 지는 불분명하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재래식 폭발물을 터뜨려놓고 핵폭발로 가장하려 할 수도 있다“고 보도해 북한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전달했다.


풍계리 핵실험장이 완전한 폐기됐느냐를 놓고도 엇갈리는 평가. 





“갱도 내부에 들어가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폭파 영상만으로는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외부 전문가의 참여 없이 진행된 이번 폭파로 풍계리 핵실험장이 완전히 폐기됐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더 나아가 북한의 핵 개발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앞으로 물리적인 핵 실험은 필요 없고, 시뮬레이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시각도 있다. 설령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쇄하더라도 북한은 핵 개발을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에서 핵 실험장 폐기를 결정했고, 막사 등 관련시설까지 폭파하고 이를 외부에 공개한 것 자체는 의미 있다고 봐야 한다는 평가도 있다. 또한 북한이 전문가는 배제하고 언론만 풍계리에 초청한 것은 추후에 북한 핵 폐기 검증 과정에서 풍계리 현장 방문 조사의 명분이 갖춰질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6번의 핵 실험으로 세계를 뒤흔들었던 풍계리 핵 실험장. 거대한 굉음과 함께 먼지와 분진 속에 그 상징적인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풍계리 핵 실험장을 둘러싼 논란은 북한의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완성될 때 까지 계속 입길에 오르내릴 것이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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