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절대적 권위와 무오류’ 수령의 눈물


해변에 서 있는 한 남자.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뺨에는 눈물이 타고 흐른다.


“강성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개혁이 순조롭게 되지 않는 답답함에 눈물을 흘린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한 북한 내부용 동영상의 모습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5월 30일 보도한 내용이다. 최고 존엄의 지도자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지난 4월 노동당 지방 조직이나 국영기업에 속한 말단 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상영됐다고 한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누구인가? 김일성 주석의 손자로 현존 북한의 수령이다. 주체사상에서 수령은 절대적 권위와 무오류성을 지닌 존재이다. 오류가 없는 존재, 신적 존재에 버금가는 위상을 가진 수령이다. 그런 수령이 눈물을 흘린다? 북한 내 유일신이 이제 인간의 모습으로 땅에, 인민들 속으로 내려온 것일까? 그만큼 북한이 처한 현실이 답답하다는 걸 반증할 지도 모른다. 


아사히신문은 다가올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핵 폐기’ 필요성을 내부에 호소하고, 동요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핵 무력을 민족 수호의 보검이라고 선전해 왔던 북한으로서는 무언가 정책 전환의 계기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경제 개혁의 성과가 나지 않아 답답해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눈물을 보여주면서 “동요하지 말고 김정은을 따르라”는 메시지를 낸 것으로 해석된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일견 타당한 분석이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도 존재한다. 핵 카드를 쥔 김정은이 중국식 개혁 개방을 결심하고 경제 발전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건 아닐까?

(북한이 핵 카드를 미국의 바람대로 포기할지, 아니면 시간끌기로 핵 카드를 쥔 채 개혁에 나설지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이 부분에 대한 분석은 북미회담이 종료된 이후 가능할 것이다)


② 스카이라인 보여주며 ‘어서와 뉴욕은 처음이지’





2018년 5월 31일 뉴욕 케네디 공항. 


미국의 철통 경호와 국가 원수급 의전 속에 북한 김정은의 오른팔 김영철 부위원장이 미국 땅을 밟는다. 미국은 공항 계류장에서부터 경호 차량 4~5대로 김영철 부위원장이 묵을 숙소까지 에스코트했다.


그리고 이어진 환대. 

고대 그리스 건축 양식을 본 딴 미국 뉴욕 맨해튼 38번가 코린트식 콘도미니엄. 미국 유엔차석대사가 관저로 사용하는 55층짜리 건물에서 환영만찬이 열렸다.


만찬 전 뉴욕 고층 건물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는 김영철 부위원장. 옆에선 폼페이오 장관은 통역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굳이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상황이 흥미롭다"며 운을 뗀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의 밝은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갈지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고 덧붙였다. “굳이 언급하자면 '여기가 뉴욕이니 랜드마크를 보라'는 식의 아이디어였다"는 설명이다.


이어진 90분간의 만찬. 스테이크와 옥수수, 치즈가 메뉴로 나왔는데 전형적인 미국 가정식 메뉴로 진행됐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 집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건 친밀한 사이라는 의미로, 최고의 환대를 베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며 가정식 저녁식사를 대접한 미국의 이유는 명확하다. 


이어 한국시각으로 5월 31일 밤 10시부터 약 140분간 진행된 폼페이오와 김영철의 북미 고위급 회담도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그리고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나는 미국의 목표를 매우 일관되고 분명하게 알려왔는데 그것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의 비핵화이다. 이것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며, 북한 체제안전에 진정한 위협이 되는 것은 핵무기를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맞바꾸는 빅딜의 윤곽도 제시했다.


"미국은 강하고 외부 세계와 연결된, 안전하고, 번영한 북한의 모습을 상상한다.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면서도 국제사회에 통합된 북한이다."


경제적 번영과 함께 국제사회 편입을 비핵화의 대가로 약속한 셈이다.





"북한이 과거에는 준비해본 적이 없는 전략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미래로 향한 길을 숙고하고 있다고 믿는다. 북한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걸어온 길과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세계의 흐름을 바꿀 일생에 한 번 뿐인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으려면 김정은 위원장의 과감한 결단과 리더십이 필요하다."


미국의 입장은 명확해 졌다. 이제 공은 그야말로 북한에게, 김정은 위원장으로 넘어갔다. 북한 김영철 부위원장은 그 해답의 단초를 담은 김정은의 친서를 가지고 미국 땅에 왔다. 우리 시각으로 6월 1일 밤늦게 이뤄질 김영철과 트럼프의 면담, 그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 될 것이고 미국은 이 친서를 통해 북한의 진정성을 파악하고 판단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상당히 기대한다고 밝힌 김정은의 친서. 

북미 협상의 화룡점정이 될 김정은의 친서. 


회담 취소발표에 재개 협상까지 우여곡절을 겪은 북미 정상 간의 줄다리기가 이제 그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미국의 표현대로 이제 양국은 “평화, 번영, 안보의 새 시대를 이끌 역사적 기회이자 흘려버리면 비극이 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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