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각 6월 12일 아침 8시 1분. 싱가포르 도심 샹그릴라 호텔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 전용차. 야수라고 불리는 캐딜락 원이 삼엄한 호위 속에 회담장으로 출발한다. 목적지는 6킬로미터 남짓 거리에 있는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


11분 뒤 8시 12분. 500여 미터 떨어진 세인트 레지스 호텔. 김정은 위원장의 방탄 벤츠가 무장한 경호 차량 20여 대의 호위를 받으며 센토사 섬으로 향한다. 


세기의 담판이 열릴 카펠라 호텔 회담장 앞.


8시 53분. 긴장된 표정의 김정은 위원장이 왼손에 서류 가방, 오른손으로는 뿔테 안경을 든 채 차량에서 내린다. 싱가포르의 더운 날씨 탓에 안경에 습기가 잔뜩 낀 모습이었다. 8시 59분 짙은 색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맨 트럼프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기다리던 취재진을 한 번 쳐다보더니 회담 준비를 위해 들어선다.


아침 9시. 성조기와 인공기가 6개씩 나란히 걸린 회담장.


왼쪽에선 34세의 김정은 위원장, 오른쪽에선 72세의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손을 맞잡는다. 서로 자기 쪽으로 당기려는 시도를 잠시 하는가 싶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고 악수한다.


“Nice to meet you.” “만나뵙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12초간의 악수. 짧은 이 순간의 악수가 1948년 한반도 분단 이후 70년간 적대적이었던 두 나라 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이어진 단독 환담. 트럼프 대통령이 말문을 연다.


"우리는 아주 굉장히 성공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만나게 돼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훌륭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전혀 의심 없이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받은 김정은 위원장. 의미심장한 말을 전 세계를 향해 던진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우리한텐 우리 발목을 잡는 과오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기도 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과거 자신들의 잘못, 특히 김정일 시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고해성사로 읽히는 대목이다. 자신은, 선친이지만 김정일 시대와는 다른 프레임으로 핵문제와 대외 관계를 추진해 나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동시에 북한이라는 나라를 더 이상 색안경 끼고 봐서는 안 된다는, 국제사회 한 일원으로 북한을 대우해 달라는 중의적인 메시지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이 말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 “That's true"라며 맞장구를 치더니 엄지를 세워 보였다. 


이어진 확대 정상회담.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을 필두로 양측의 외교안보 라인이 배석했다. 특이한 것은 볼턴 미 안보보좌관의 참석이다. 리비아 식 해법을 강조하며 이번 회담을 저지하려 했던 볼턴 미 안보보좌관. 그래서 트럼프의 분노를 사기도 하고, 북한으로부터 사이비 우국지사라는 비난을 받았던 바로 그 볼턴 보좌관이다. 





회담 분위기는 부드러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문을 먼저 열고 김정은 위원장이 화답했다.


"협력해서 성공을 이룰 것입니다.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들을 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을 기회로 해서 함께 거대한 사업을 시작해 볼 결심이 서 있습니다.”


사실상의 세기의 빅딜. 확대 정상회담은 158분 동안 이어졌다.    


회담이 끝난 두 정상은 함께 업무 오찬을 하며 우의를 다졌다. 한식과 양식, 싱가포르식이 조화된 화합의 코스 요리였다. 오찬을 마치고 두 정상은 회담장 앞 정원을 약 1분, 100보 가량 함께 산책하면서 우의를 다졌다. 도보다리 산책, 다롄 해변 산책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짧았지만 북-미간 적대관계를 녹이는 첫 발걸음, 100보 산책이었다.


오후 1시 41분. 서명식장의 육중한 문이 열리고 두 정상이 함께 걸어와 4개항이 담긴 공동 성명을 앞에 두고 앉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김정은 위원장이 화답한다.


"북한, 한반도와의 관계가 과거와는 굉장히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후 1시 46분. 두 정상은 서명이 담긴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 성명을 교환하는 것으로 회담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적대관계 70년을 녹이는 285분간의 만남.


두 정상이 탄생시킨 북미 정상간 공동성명은 ①새로운 북미관계 형성 ②한반도 평화체제 수립③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 ④미군 포로와 실종자 유해 즉각 송환 이라는 4가지 항목에 합의했다. 


지구상 유일한 냉전체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해빙기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 이번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新몰타 선언에 까지 비유되며 한반도 질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세계사적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김정은 위원장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거나 판타지로 생각할 만큼” 이번 회담은 극적이고 기존 사고틀로는 예상하기 힘든 장면인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누가 더 협상을 잘했는지 손익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협상의 달인이라는 70대 대통령과 예측불허 30대 지도자의 진검승부의 손익 계산서는 어떻게 될까?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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