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6일 낮 평양 순안 비행장.


미 폼페이오 장관 일행이 트랩을 내려왔다. 폼페이오 장관의 3번째 방북이다. 3월 말 첫 번째는 극비리에, 5월 초 두 번째는 공개적으로 방문한 게 특징이라면 이번 세 번째 방문은 1박2일 숙박협상이라는 게 달라진 점이다. 미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실무진들도 동행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주역인 성 김 대사, 앤드루 김 CIA 코리아임무센터 센터장, 판문점 실무회담 멤버인 앨리슨 후커 백악관 NSC 한반도 보좌관, 랜달 슈라이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알렉스 웡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그리고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이 바로 그들이다. 수행원들 면면을 봐도 이번 방문의 목적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20일 남짓 만에 열리는 북미 고위급 후속 회담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방북 전 미국 언론들은 북한을 믿지 못하겠다며 이런저런 의구심을 쏟아냈다.

미 NBC “북한이 농축 우라늄 생산을 늘리고 있다” (6월 30일)

워싱턴 포스트 “북 핵시설과 핵탄두 은폐, 강선에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 가동” (7월 1일)

월 스트리트 저널 “북 함흥 미사일 공장 확장 공사중”(7월2일)

미 CNN “미 정보당국, 김정은 비핵화 할 의도 없다고 평가”(7월 2일)


이번 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북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숨기지 말고 핵 리스트 작성에 협조하라’는 일종의 북한 외곽 때리기라는 분석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가 지나치게 북한에 양보할 것을 우려해 협상 제대로 하라는 미국 내부의 견제와 불만 표출이라는 해석이 동시에 나왔다. 그만큼 이번 첫 고위급 후속 회담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① “세금 내야겠네” 농담과 와이파이


폼페이오 장관의 상대는 여전히 북한 김영철 부위원장이었다. 직접 공항 영접도 나왔다. 일부 미국 언론에서 폼페이오의 협상 상대가 리용호 외무상으로 바뀔 거라는 관측을 제기했지만, 북미 정상회담의 산파인 두 정보수장 출신들이 그대로 협상의 틀을 이어간 것이다.


첫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한 번 더 북한에 오면 세금을 내야겠다'고 했던 농담을 거론하자, 김영철 부위원장은 더 많이 올수록, 서로에게 더 많은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전 방북 때와는 달리 이런저런 편의 시설들을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특히 휴대폰으로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게 조치한 게 크게 다른 점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위터에 백화원 영빈관에서 북측 인사들과 회담하는 사진, 성 김 대사 등과 서서 작전회의를 하는 사진 등을 올려 현장 분위기를 생중계했다. 동행한 기자들도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이 첫날인 6일에는 2시간 45분 만에 회의를 끝냈으며 다음 회의는 7일 오전 9시에 열릴 예정이라며 관련 소식을 시시각각 전 세계로 타전했다. 또 오찬 메뉴 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기자들의 평양 시내 취재 모습 등도 실시간으로 알렸다.


첩보 작전처럼 모든 게 베일에 가려졌던, 그래서 방북 소식을 깜깜이로 기다려야만 했던 이전 방북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5월 2차 방북 당시에 동행한 워싱턴 포스트 캐럴 모렐 기자는 10시간 동안 호텔 로비에서 보내며 '대기'해야 했으며 휴대폰과 와이파이도 안 터지고 정부 경호원 없이는 호텔도 떠날 수 없는 고립 상태였다. 때문에 평양을 떠나기 전까지 현장의 소식을 전송할 수 없었고, 호텔 내 식료품점과 공예품점, 선물가게 등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② 북미 두 협상 대표의 ‘언중유골’





회담장 밖의 조건과 분위기와는 달리 7월 7일 속개된 이틀째 회담은 면도날 같은 긴장감 속에 시작됐다. 비핵화를 위한 후속 협상답게 서로의 힘겨루기가 팽팽했다.


선공은 김영철 부위원장이 시작했다.


“우리가 어제 매우 중요한 문제들에 관해 매우 심각한 논의를 했다. 그 생각 때문에 지난밤에 잘 못 주무신 것 아니냐”


말속에 뼈를 담은 인사말을 건넸다.


폼페이오 장관은 여유롭게 받는가 싶더니 이내 핵심으로 곧장 내달렸다.


“괜찮다. 잘 잤다. 우린 어제 좋은 대화를 했다. 감사드리고, 계속되는 오늘의 대화 역시 기대한다. 양국관계를 구축해 나가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이번 회담은 더 밝은 북한을 위해,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에게 요구한 성공을 위해 극히 중대하다”


미국은 이번 회담의 목표를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실행계획 도출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더 밝은 북한을 위해 확실한 경제 보상을 약속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지지 않고 응수했다.


“물론 그것은 중요하다. 그렇더라도 내겐 분명히 해야 할 것들이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조치 이전에 북한으로서도 먼저 확인할 사항들이 있다는 점을 못 박은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은 1박 2일 동안 9시간 넘게 머리를 맞대고 비핵화와 안전 보장에 대한 협상을 계속했다. 그리고 일단 비핵화를 위한 핵심 실무 그룹을 구성하는 데 양국은 합의했다고 미 국무부가 밝혔다.


③ 김정은 못 만난 채 떠나고, 북한은 불만 토로하고


하지만 협상이 순탄치 않았음을, 이어질 후속 협상들이 살얼음판을 걷게 될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이 잇따라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도 없이 평양을 떠난 폼페이오 장관은 도쿄에서 ‘비핵화를 위한 시간표에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복잡하긴 하지만 거의 모든 주요 이슈에서 진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며 “생산적인, 선의의 협상을 했다”고 평가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구체적 성과로는 북한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실험장 해체를 위한 실무회담이 곧 열릴 것이며, 미 국방부가 오는 12일쯤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논의를 판문점에서 북한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발표로 비판 여론을 잠재울 수는 없다. 북한 미사일 엔진 실험장 해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곧 이뤄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항목이다. 비핵화의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됐는데, 북한이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게 아니라 이를 위한 실무회담을 먼저 갖겠다는 게, 시간 끌기로 인식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미군 유해 송환 역시 곧 이뤄질 이벤트로 예상됐는데, 판문점 협의가 남았다는 점도 썩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선제적인 조치나 가시적인 시간표를 제시해 줄 것을 기대했는데 이 부분이 충족되지 않았다.


북한도 고위급 회담 직후 미국 측의 태도가 유감스럽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그것도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다. “미국 측이 신뢰 조성에 도움이 되는 건설적 방안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했는데, 첫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나타난 미국의 태도와 입장은 실로 유감스럽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단계적이고 동시 행동 원칙이 비핵화 실현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이 핵 실험장 폐쇄와 미사일 엔진 실험장 해체를 약속한 만큼 적어도 종전 선언을 위한 일정을 제시하거나, 체제 보장 혹은 제재 해제를 위한 일종의 반대급부를 기대했을 텐데 이 부분이 없어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결국 이번 북미 고위급 회담에선 핵심 의제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어떻게 정의하고 이를 달성할 것인지 양쪽 입장이 팽팽했던 사실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언제, 어떻게, 어떤 단계를 밟아나갈지,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세부논의는 쉽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은 예상대로 비판을 쏟아냈다.


미 CNN “북한이 협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월스트리트저널 "미국의 기대치를 낮추려는 아주 나쁜 신호“

워싱턴포스트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의 의도 없다”


④ 비핵화, Long and Winding Road


가장 덜 생산적이었던 폼페이오 세 번째 방북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길어지고 어려울 것이라는 뚜렷한 신호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기대를 접을 만큼 비관적이지는 않다. 미국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했다”는 점을 강조했고, 북한은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맺은 신뢰가 앞으로 대화 과정을 통해 더욱 공고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했다. 비록 북한이 자신들의 비핵화 의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경고장을 날렸지만, 양측 모두 회담의 틀 자체를 깨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북미간 후속 협의, 특히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합의한 ‘비핵화를 위한 실무 그룹 회담’이 비핵화 과정에서 드러날 ‘디테일의 악마’와 싸우게 될 것이다.


비핵화 여정, 멀고 험난한 길이 이제 앞에 남았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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