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13일 오전 10시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


남북 고위급 회담 대표가 악수를 하고 덕담을 나눈다.


북측 리선권 단장이 “소싯적에 수수대로 말을 만들어서 뛰어다닐 때부터 한 것을 막역지우 (莫逆之友)라고 하는데, 북과 남이 이제는 서로가 서로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함께 손잡고 나가는 시대가 됐구나 하는 이런 문제를 새삼 실감하게 됐다”며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남측 조명균 수석 대표는 ‘한배를 타면 한마음이 된다’는 북한 속담을 인용하며 화답했다.


“북측에 한배를 타면 한마음이 된다는 속담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1년 전만 해도 남북관계가 상당히 긴장이 고조되고, 대결이 오고 가는 관계 속이었는데, 남북 정상이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해줘서 판문점 선언이 나오고 각 분야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막역지우라고 말씀하셨는데 서로 같은 마음으로 해 나가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 말에 대한 리선권 북측 단장의 응답.


“한배를 타면 운명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도 같이한다. 북남 관계 개선이 온 겨레의 일관된 견해이다. 관계 개선을 하면 민족의 전도가 열리는 것이고, 악화되면 민족의 앞날이 불운해진다”


말에 가시가 담겼는지 조금 듣기가 불편하다.


남북은 이후 70분간 전체회의를 가졌다. 이어 두 차례의 수석 대표 접촉을 거쳐 오후 1시 35분에 회담을 마무리 했다. 만남에서 회담 종료까지 걸린 시간은 3시간 35분. 남북이 얼굴을 마주 대고 앉은 시간은 전체회의 70분에 두 차례의 대표 접촉 10분, 종결회의 9분, 모두 합쳐 89분이다.


남북 간의 물밑 접촉이 진행된 이후에 만난 고위급 회담이라 합의에 쉽게 이를 것이라는 예측은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회담은 너무나 신속했고 결과물은 간략했다. 4차 남북 고위급 회담 공동보도문은 3문장으로 정리됐다. 


‘남과 북은 2018년 8월 13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제4차 남북고위급 회담을 진행하였다’며 시기와 장소, 목적을 확인하더니 ‘회담에서 쌍방은 판문점 선언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기 위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협의하였다’면서 ‘회담에서는 또한 일정에 올라 있는 남북정상회담을 9월 안에 평양에서 가지기로 합의하였다’고 마무리한다. 


3차 남북정상회담을 9월 중에 평양에서 열기로 한 게 이번 회담의 가시적인 성과. 하지만 당초 이번 회담에선 3차 남북정상회담의 날짜를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확정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무슨 속사정이 있었을까? 





북한이 혹시나 자신들의 정권 수립일 70주년인 9월 9일과 가까운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모양새를 취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북한으로서는 정권수립일에 맞춰 남측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회담하면 김정은 체제의 정통성을 선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혹을 느낄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한 입장에서는 9월 9일만큼은 피해야 한다. 자칫 그 즈음에 평양을 방문한다면 그래서 북한 정권 수립일에 김정은 위원장의 손이라도 들어준다면, 그 정치적 후폭풍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메가톤 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8월 말을 선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9월 남북정상회담의 구체적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혹시라도 행여나 북한이 9월 9일 초청이라는 (남한에서 보면)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종전선언과 비핵화 실질조치를 두고 힘겨루기 모양새가 길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시점에선 남북 관계도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해야 한다. 자칫 판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고위급 회담 종결회의 때 나온 북측 대표의 발언이 보면 더 불편해진다. 


리선권 북측 단장은 회담을 끝내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북 회담과 개별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만약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탄생될 수 있고, 또 일정에 오른 모든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엄포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남한이 기존 합의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만약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남북관계 자체가 앞으로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질책성 말이기도 한 것이다. 


이번 회담에는 김윤혁 철도성 부상과 박호영 국토환경보호성 부상 등이 대표단으로 함께 나왔다. 철도와 도로 분야 남북 경협 담당자들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남측 정부가 경협에 적극적이지 못하다며 대놓고 압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회담 이전부터 예상됐던 터다. 7월 31일자 노동신문에선 ‘대북제재라는 족쇄에 두 손과 두 발을 들이밀고 남북관계까지 얽어매느냐’고 불평을 쏟아내더니 대남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8월 12일 “대북 제재에 편승해 철도와 도로 협력 사업에서도 ‘돈 안 드는 일’만 하겠다는 심산”이라며 남측 정부를 대놓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한은 ‘돈 드는 일’을 하라는 것인지…


남북관계는 남한 정부와 북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국과 정치권, 국민, 여론 등이 모두 얽혀 있다. 더구나 북한 핵 문제라는 핵심이슈가 걸린 상황이고 보면 관련 국가들의 시각과 입장, 국제사회 여론 등등 모든 것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말 그대로 고차 방정식이다. 남한의 행동 하나, 북한의 몸짓 하나가 핵 문제라는 국제정치적 이슈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역으로 더 풀기 힘든 나락으로도 몰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북한의 태도는 그래서 불편하다. 특히 북한 선전 매체의 ‘돈 안 드는 일’이라는 표현은 더더욱 불편하다. 





남북 경제협력 비용, 넓게는 북한 재건을 위한 자본 투자는 이해 당사국 모두가 함께 지혜를 짜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 문제를 마치 이제 돈 드는 일을 남한이 해야 할 때인데 하지 않아 문제라는 식이라는 북한의 태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남한에선 대북 퍼주기라는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고 보면, 마치 빚을 갚으라는 식의 북한 태도는 남북관계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북한으로서는 풍계리 핵 실험장 폭파 폐쇄와 참전 미군의 유해 송환이라는 조치들을 취했음에도 미국의 움직임이 없다며 불만스러울 수 있다. 또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이라는 큰 이벤트를 맞아 북한 인민들에게 특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가시적인 성과물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그런 조바심이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북 당국 사이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런 만큼 회담 상대방이자 한민족인 남한에 대해 불평과 엄포성 발언을 쏟아내는 것이 일회성 협상 전술일지라도 삼가야 한다.


9월 3차 평양 남북정상회담은 일정을 고려하면 9월 중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연내 종전선언이라는 판문점 선언의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물론 북한과 미국 사이의 비핵화 논의도 진전돼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평양 회담을 포함해 앞으로 있을 각종 회담에서 불편한 상황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건 지나친 바람일까?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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