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처링은 기획특집 시리즈로 세계 각국의 자원봉사 실태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마련했다. 최근 우리나라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20% 초반에서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학생들은 자원봉사를 대학이나 기업취직을 위한 점수따기 정도로 여기고 있다. 성인들도 자원봉사를 단순히 ‘선의 적립’ 개념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양적기준과 개인의 경력관리용으로만 머무는 자원봉사이기 때문에 아직도 사회전반에 자원봉사 문화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피처링은 외국 선진국의 자원봉사 문화를 소개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이것도 단순히 해외 사례를 따라가자는 의미가 아니라 과연 한국형 자원봉사 문화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첫회로 영국 사례를 소개한다. 영국의 재난 가이드를 통해 자원봉사자의 역할을 재조명한 것이다.


재난은 사회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사태다. 이제 그 대응을 온전히 정부와 국가기관에 맡겨서는 안 된다. 우리 이웃의 재난은 우리가 가장 잘 안다. 자원봉사자의 역할은 재난이 발생한 뒤 그 피해자들이 온전히 일상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회복탄력성’ 상태를 가장 잘 유지시킬 수 있는 것으로 존재한다. 재난과 자원봉사의 상호 연결성을 영국은 고민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시간이 멈춘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침몰 피해자들이다. 그리고 아무런 대가 없이 그들 곁에 머문 사람들이 있었다. 팽목 체육관에서 목 놓아 우는 부모를 일으켜 한 수저라도 음식을 먹이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슬픔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분향소와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을 안아주고, 찾아오는 손님에게 고개를 숙여 맞이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목포에서 뻘과 바다냄새에 절어진 수 백점의 유품을 씻어 가족들에게 돌려주고자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자원봉사자다.



2014년 이후에도 한국에서는 끊임없는 참사가 이어졌다. 지하철 화재사고, 건물붕괴 등 다양한 참사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람보다는 돈, 가치보다는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한 역사로 인해 위험과 안전을 도외시하면서 점차 재난과 위험을 겪는 사회가 되었다. 이를 울리히 백(Ulrich Beck)은 위험사회(risk society)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사람을 일으켜 일상성을 회복하게 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 상태를 위해 함께 하는 사람 가운데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그들이 어떤 역할과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안산에서 피해를 겪는 지역사회 속에서 재난 당사자들과 함께 하던 사회복지사가 만난 영국의 재난 시스템과 더럼대학교 Institute of Hazard, Risk and Resilience 연구소의 레나 도미넬리 (Lena.Dominelli)의 그린소셜워크(Green social-work) 재난가이드를 기반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영국의 재난 대비 및 대응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 사회가 가진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 복지국가의 뿌리였던 영국은 현재까지도 의료, 사회복지 등을 공공 영역에서 담당하고 있다. 한 영국교민은, “국가의 이러한 역할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국가는 국민인 나를 보호할 것이다’라는 깊은 신뢰를 영국 국민들이 가지도록 했다”고 전하고 있다.


내각 내 CCS(Civil Contingencies Secretariat)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은 ‘재난을 대비하는 것은 국민과 국가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2차 대전 이후, 전쟁 이 아닌 홍수, 전염병, 테러, 기차탈선 등의 재난이 반복되어 현재의 재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약 30년 정도 된 이 법을 개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원봉사자들이 재난 발생 시 분명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재난 대비 및 대응 시스템 내에서는 아직 자원봉사 및 사회단체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이를 위한 법 개정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지금 소개하는 시스템과 가이드 안에 자원봉사자의 역할이라고 규정할만 한 것이 없다. 다만 향후 만들어가야할 한국의 재난 대비 및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원봉사자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에 이 법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영국 내각은 한국의 중앙정부와 같은 위치의 공공기관이다. CCS는 그중에서도 영국 사회 내 재난을 위한 대비 및 대응을 관장하는 역할을 한다. 재난 대응 및 대비를 위한 영국의 전사적 시스템을 설명하는 그가 제일 먼저 시작한 말은 “재난을 대응하는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지역사회 주민이다”였다.


영국 내 재난 대비 및 대응을 하는 기관은 내각의 CCS, 지방의 LRF(Local Resilience Forum)이 각 시, 구에 구성되어 있다. 각 지역의 LRF는 각 지역사회 내 공공영역에 해당하는 경찰, 소방서, 의료기관, 사회복지 영역 등의 기관들과 민간 기업들의 포럼이다.


런던의 경우, 170여개의 기관 및 기업, 단체가 함께 하고 있으며, 이들은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해당 지역의 재난에 대한 대응, 대비, 가이드 점검 및 대응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다. 중앙정부는 이러한 지역사회 대응 과정에 참관자로 참여하며, 추가로 필요한 재원 및 인적자원 등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레나교수도 동일하게 이야기 한다.

‘They guide you!’


재난 피해자는 자신이 조정할 수 없는 외부요인에 의해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가족이나 재산을 잃은 사람들일 수 있으며, 그 스스로가 생명을 잃거나 장애를 입기도 한다. 회복탄력성 (Resilience)은 그들의 일상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재난이 발생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 가기 위한 힘을 스스로 가지고 있다고 믿는 일이다.


재난을 대응하는 일은 피해자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서 일상성을 회복해,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이다. 재난을 직접 겪은 당사자들은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쉽게 당황한다. 또한 가장 필요한 상황, 욕구, 요구를 다른 누군가보다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선의도 상대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그저 예측에 의한 것이라면, 선의라 할지라도 잘못된 선의일 수 있다. 재난 피해자 스스로는 상대에 대한 신뢰와 함께 피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스스로 참여하는 만큼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위한 힘을 더 낼 수 있다.


이에, 레나교수는 피해자와 피해지역이 가진 자발적인 힘을 신뢰하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매우 중요한 요건으로 강조 한다. 이러한 재난을 겪는 지역사회 속 지원을 위한 참여를 위해 이를 돕는 사람은 몇 가지의 원칙을 지킬 것을 안내하고 있다.





[재난을 실천할 때의 원칙]

∙ 윤리적으로 행동하기

∙ 피해를 일으키지 말 것

∙ 비밀을 유지하기

∙ 적극적으로 경청하기

∙ 그들을 <피해자>로 보고, 돕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생존자>로 보기 ∙ 강점중심의 관점으로 일하기

∙ 지역사회주민, 기관들과 협력하여 일하기

∙ 지역사회의 독특성과 문화를 고려한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하기

∙ 관련 이슈를 규정하기

∙ 안전보장하기

∙ 자원에 접근하기

∙ 돕는 자신을 돌보기


[지역사회에 참여해 재난을 지원할 때 원칙]

∙ 신뢰와 공감을 가장 우선하기

∙ 상호성과 호혜의 정신을 기반으로 일하기 ∙ 책임성과 연대의 정신을 유지하기

∙ 집합적 행동을 함께 하기

∙ 권력과 자원개발 과정과 결과를 지역사회와 공유하기

∙ 개인적 관심과 구조적 관심의 연결 지어 행동하기


영국 공공기관의 담당자의 실천에서도 이 원칙은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므로 재난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위험정보를 어떻게 꼼꼼하게 공유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위험에 대한 정보전달이 쉽지 않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집들은 가가호호 방문하고 묻는 방식을 통해 재난을 대비하고 대응했던 상황을 평가하고 있었다. 1년에 한번 정도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방하는 과정에 지역사회의 최대한 많은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재난의 대비 및 대응을 위한 지역사회 주민들의 지속적인 경험 축척을 위한 노력들이었다.


우리는 안전한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재난이 발생한 지역사회와 그 피해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


다른 이의 삶을 돕겠다는 희망 속에 당사자의 힘에 대한 신뢰는 존재했는가?


지역사회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위한 가능성을 믿고 지역사회와 함께 재난극복을 위한 지원을 해왔는가?


한국사회의 재난 속에서 자원봉사자의 역할은 이 질문에서 그렇다 답할 수 있는 때도 있을 것이고, 어떤 날들에는 그렇지 못해 아직은 준비되지 못했다고 말하는 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생명존중의 사회적 가치 공유, 재난을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으로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모두가 가장 바랄 것이다. 그러한 사회를 들기 전까지 아직은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전까지 우리는 누군가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드는 재난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는 사회를 살아가야 한다. 그때까지 위의 질문을 통해 재난을 극복해 가기 위한 시스템 구축과 함께 원칙을 실천함으로써, 재난이후 자원봉사자의 노력으로 회복탄력성(Resilience) 상태의 지역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자원봉사도 단순히 스펙쌓기나 자기만족의 범위를 벗어나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때 조속히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회복탄력성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의 자원봉사 문화를 한단계 발전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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