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김정은 “비핵화 의지에 의문 제기해 답답”


2018년 9월 5일 평양 노동당 중앙청사. 남측에서 간 특사단을 웃는 얼굴로 맞이한 북한 김정은 위원장. 하지만 회담장에선 다소 불만 섞인 표정으로 하소연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나의 비핵화 의지는 분명한데 왜 국제사회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지 답답하다”


북한 방송도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구체적인 표현과 수사를 동원해 한 번 더 강조하고 나섰다.


“최고 영도자께서는 조선반도에서 무력충돌위험과 전쟁의 공포를 완전히 들어내고 이 땅을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며 자신의 의지라고 비핵화 의지를 거듭 확약하시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실현을 위해 북과 남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 나가자고 말씀하셨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이렇게 확고하다는 데 왜 국제사회에선 의구심이 나온다고 할까? 그 힌트를 2016년 7월 7일 나온 북한정부 대변인 성명에서 찾을 수 있을까?


북한 정부 대변인 성명 일부를 인용해 보자.


“핵이 없는 세상, 핵전쟁을 모르는 평화로운 세계에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려는 것은 인류의 공통된 지향이고 염원이다.…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수령님과 김정일 장군님의 유훈이며 김정은 위원장의 영도 따라 나아가는 우리 당과 군대 인민의 드팀없는 의지이다.”





핵 없는 세상은 인간 본성에 버금가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북한이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반도 비핵화의 의지가 충만하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측 특사단을 만나 내놓은 레토릭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성명을 더 읽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명백히 하건대 우리가 주장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이다. 여기에는 南핵폐기와 남조선 주변의 비핵화가 포함돼 있다…선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핵 위협 공갈의 근원부터 완전히 제거하는 데서 비핵화 조치는 시작돼야 한다.”


성명은 이어 ‘미국이 남한에 배치한 핵무기를 공개하고, 남한 핵무기와 기지를 철폐하고, 한반도 주변에 핵 타격 전략 자산을 전개하지 말 것이며, 남한에서 핵 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라’는 주장도 담고 있다.





비핵화 의지는 북한식 표현대로 ‘드팀없이’ 충만하지만 미국의 위협 때문에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명이 나온 지 불과 두 달 뒤 북한 풍계리 지축이 규모 5의 강도로 또 다시 흔들렸다.


2016년 9월 9일 오전 9시 30분. 북한 방송엔 우렁찬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핵 실험장에서 새로 연구한 핵탄두의 핵폭발 실험을 단행했다.… 우리의 존엄과 생존권을 보위하고 진정한 평화 수호를 위한 핵 무력의 질량적 강화 조치는 계속될 것이다.”


② 김정은 “선의로 받아들였으면…”


북한 김정은은 남측 특사단에게 이런 불만도 털어 놓았다. 폭파 폐쇄한 풍계리 핵 실험장은 갱도 3분의 2가 완전히 붕괴해서 핵실험이 불가능하게 됐고 동창리도 유일한 미사일 시험장이라서 이를 해체한 건 향후 장거리 탄도 완전히 중지한다는 걸 의미한다.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조치들인데 국제사회 평가가 왜 인색한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한마디 덧붙인다.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자신들은 비핵화를 위한 선제 조치를 취했는데 미국은 상응 조치가 없다는 것을 애둘러 강조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미국 입장에서 보면 조금 서운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의를 먼저 보인 것 미국이기에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2일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북한의 아무런 조치가 없는데도 올 여름으로 예정됐던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취소했다.


한미연합 군사 훈련은 무엇일까? 2017년 3월 31일에 나온 북한정부 비망록에선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미국은 방대한 침략무력을 총동원하여 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기 위한 북침합동 군사연습에 광분하였다. 미국은 모든 전략핵타격 수단들을 조선반도에 총집중하여 우리를 겨냥한 핵 선제공격 연습들에 열을 올렸다. 해마다 핵 항공모함 타격단들과 B-1B, B-52 전략폭격기들, F-22 스텔스전투기들 같은 미국의 핵전략자산들이 남조선에 쓸어들어 실전 훈련을 벌리는 포악무도한……”


트럼프 입장에서는 북한이 이토록 흥분하는, 속으로는 무서워하는 한미연합 군사 훈련을 2018년 여름에는 취소했는데, 자신의 선의는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김정은이 선의를 몰라준다며 불평하는 게 마뜩찮을 수 있지도 않을까?


③ 북미 정상 “변함없는 신뢰…함께 해낼 것”


이런 저런 불만에 서로에 대한 의구심이 똬리를 튼 북미 협상. 교착된 만큼 돌파구가 필요하지만 특사단 방북으로도 상황이 확 바뀌지는 않은 듯하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김정은이 남측 특사단에게 비핵화 의지를 밝히면서 미국의 상응조치를 촉구했다는 소식에 “북한이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는 말로 대답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북한 태도에 다소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볼턴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특사단의 평양 방문에 대한 내용을 종합적으로 전달받았고 상황을 잘 공유했다”라는 간단한 성명을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 얘기를 한 적이 없고 트럼프에 대한 신뢰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변함없는 신뢰에 감사하다”며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잘 해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두 정상의 신뢰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사상누각일 뿐이다.


북미 두 정상의 신뢰를 묶어줄 행동조치의 분수령은 9월 18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수석 협상가’라고 칭한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닐 것이다. 이번 평양 회담에서 꽉 막힌 비핵화 협상을 풀 계기를 만들어 달라는 은유 섞인 기대이자 압박일 수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고심하고 모색한 진지한 노력과 과감한 결단이 극적인 순간과 좋은 합의를 이룩했다”고 강조해 평양 회담의 기대를 높이기도 했다.


트럼프 임기 내인 2021년 1월까지를 비핵화 시한으로 밝힌 김정은 위원장. 그의 말이 2016년 북한 정부 대변인의 성명처럼 많은 복선을 깔린 외교적 문서가 아닌 진정성이 담긴 언명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시험대는 9월 18일 평양에서 열릴 남북 정상회담이 될 것이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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