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올림픽 자원봉사자 유니폼.



자원봉사는 개인의 순수한 희생과 호의로 이뤄진다. 하지만 가끔 그 순수함을 당연시하는 경향도 있다. '당연히 봉사를 하니 우리(정부나 주최측)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가 가끔 논란이 되기도 한다. 지난 평창올림픽 때 자원봉사자들의 처우와 관련해 큰 논란이 됐고 대회 조직위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이웃 일본도 예는 다르지만 비슷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일본 도쿄올림픽 준비위원회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며 10일 동안 하루 8시간 봉사를 요구했다는 뉴스가 논란이 됐다. 사전에 연수를 반드시 받아야 하며 숙박비와 교통비를 각자 부담토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올림픽 개최에 일생일대의 기회라 꼭 해보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까다로운 조건에 불평을 호소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이들은 금전적인 대가를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시간적 문제를 호소하며 현 조건으로는 학생이나 직업이 없는 사람만 가능하다. 다양한 계층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산업계에서는 올림픽 기간 자원봉사를 위한 휴가 제도를 도입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도쿄 치요타구의 한 기계부품업체는 올림픽 기간 3일간의 ‘봉사휴가제도’를 마련하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기업은 유급휴가 3일과 나머지 일주일은 연차에서 소진한다는 방침이다.


대회 주최 측은 11만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를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만만치 않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대학생 등 젊은층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라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학 학사일정 변경까지 요구하는 등 무리수가 나타나 대학과 시민단체 등이 반발하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한국 교육부에 해당)과 스포츠청은 올림픽 자원봉사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전국 대학과 고등전문학교 등에 특별 공문을 내려보냈다. 올림픽 대회기간 중 수업·시험 기간 등을 유연하게 조절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문부과학성 등은 2020년에 ‘바다의 날’ 등 일반 공휴일 날짜를 올림픽 전후로 옮기는 내용의 특별조치법이 성립된 점을 들어 각 대학들도 ‘학사력’(수업, 시험, 행사 등 대학의 연간계획)을 올림픽에 맞춰 운용할 것을 촉구했다.


도쿄신문은 “공문은 대학들이 수업 시작시기 등을 문부과학성에 알리지 않고 임의로 바꿔도 된다고 밝히고 있다”며 결국 대학이 당국 몰래 학사일정을 바꾸는 것을 정부가 직접 나서 유도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이미 2020년 학사일정을 평년과 다르게 고치는 대학들이 나오고 있다. 도쿄 고쿠시칸대는 2020년 1학기 수업과 시험을 7월 23일까지 마치고, 대회기간은 ‘특별과제연구기간’으로 정해 수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수도대학도쿄도 기말시험을 올림픽 개막 전에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과거 자원봉사 경험자의 강연이나 자원봉사 의미를 배우는 수업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야마모토 아쓰히사 세이조대 심리사회학과 교수는 “국가가 자원봉사에 협력하라고 대학 등에 ‘선동’을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대학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학사일정을 상부의 관점에 따라 바꾸라는 것은 자발성을 바탕으로 한 자원봉사의 의미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저널리스트는 자원봉사가 취업용으로 변질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일본의 기업문화는 ‘멸사봉공’인데, ‘한여름 폭염 속에서 힘들게 자원봉사를 했다는 것은 잔업을 마다하지 않고 일하는 근면한 적성의 지표’라며 이를 채용에 반영하는 기업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대회조직위가 올 초에 발표한 자원봉사자 모집요강 안에는 교통비와 숙박비의 본인 부담은 물론이고 보험 지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교통비와 숙박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도쿄에서 자원봉사자들의 재정적 부담은 크지 않을 수 없다. 비판이 일자 대회조직위는 교통비에 한에서는 일정 한도 내에서 지원하고 보험가입도 검토하는 개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폭염주의보가 자주 발생하는 8월에 하루 8시간 활동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자원봉사자의 모집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대회조직위는 '만만한' 대학생들의 지원을 적극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상업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올림픽은 국가적 이벤트인 동시에 거대한 상업 이벤트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수백억의 스폰서 수입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 이벤트를 지탱하는 자원봉사자들은 무상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의 자발성과 순수성을 생각하더라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에 대해 대회 조직위는 자원봉사자를 공적인 미션에 찬동해 스스로 지원한 사람이라 규정하며, 모집도 동원이 아닌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지원에 한한다고 한다.



▲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 모습.



일본은 인력을 사용하는 분야에서 무상 서비스는 거의 없고 엄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자원봉사자는 무상으로 헌신해도 된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진실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접대한다는 뜻으로 자원봉사자 유니폼에도 영어로 표기가 돼 있다) 문화와 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어느 정도 용인된다는 의식도 깔려 있다. 하지만 이는 앞서 자원봉사자를 자원봉사라는 또 하나의 전문능력을 가진 인재로 활용하기 위해 레거시를 고민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대학생 동원 논란이 확산되자, NHK는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보다 참가하기 쉬운 환경을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자원봉사자문화를 레거시(유산)로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원봉사에 대한 인식 개선과 그들에 대한 진정한 존경,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최고의 대우가 뒷받침 돼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평창올림픽 때 자원봉사자 처우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유급'은 아니지만 방한복이나 숙소 문제가 너무 열악해 자원봉사를 탈퇴하는 등 말썽이 있었다. 대회조직위가 서둘러 수습을 하긴 했지만, 도쿄올림픽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자발적 희생'에 보상이 따라야 하는지, 이 명제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는다. 공론을 모아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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