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이 말은 생경하게 들린다. 힘 깨난 쓰는 고위층 인사쯤 되면, 인맥 혼맥 금맥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권력이 있으면 그것을 과시하려 하고, 힘 없는 서민들을 무시한다. 이런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천박한 처신은 사회 전체를 힘과 강자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게 만든다. 재벌총수들의 욕설이나 갑질 뉴스가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것도 바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평소 생각이나 습관이 투영된 결과다.


미국 예를 굳이 들 것도 없지만, 적어도 미국이란 나라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보여주는 규율과 도덕성은 그 나라를 온전히 지탱하는 하나의 큰 기둥과도 같다. 한국 지도층 인사들이 시정잡배보다도 못한 언행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미국의 지도층 인사들이 아랫사람들을 막 대하게 욕설을 하는 뉴스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지난 5월 영면한 바버라 부시 여사의 일생을 통해 미국의 노브레스 오블리주는 어떻게 실천하였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바버라 여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방식은 바로 자원봉사였다.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의 영부인이자 그 아들 대통령의 모친이기도 했던 바버라 부시(1925-2018) 여사는 생전에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했던 영부인이었다. 미국인들은 그녀의 죽음을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애도했다. 그 이유는 그녀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헌신과 봉사로 일관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특히 성실히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위해 성인문맹과 가족문맹퇴치운동에 진력해 왔다. 부모는 어린애들 생애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스승이므로, 성인가족의 문맹을 없애는 일이야말로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의 출발점이라는 자기 확신 아래, 자신의 저술 원고료 수입 등을 털어 1989년 가족문맹퇴치재단을 설립하고, 미국사회를 「문맹」의 대물림이 없는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평생 노력해왔다.


그녀가 가족문맹퇴치운동에 전념하게 된 계기는 자신의 셋째 아들 닐이 어렸을 때 난독증으로 읽기 장애 진단을 받고, 이를 치료했던 경험에서 출발한다. 영부인이 된 바버라 부시는 모든 성인 남성과 여성, 어린이가 문맹퇴치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사명 아래 재단의 가족교육 프로그램을 수립했다. 노숙자, 마약, 범죄 등 미국 내 만연하고 있는 모든 사회악의 근원은 당사자의 '무지와 문맹' 때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또한 전국적 라디오프로그램인 '영부인과의 대화' 등에 출연, 어린이들이 글을 소리 내어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강조함으로써 독서문제를 국민적 관심사로 등장시켰다. 이 같은 노력 끝에 1991년에는 문맹퇴치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어 문맹퇴치를 책임 맡은 국가기관이 설립되고, 미국 내 지역도서관이나 행정관청건물들을 야간 성인교육장소로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93년 백악관을 떠난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자원봉사활동은 인생 2막이라 할 수 있는 은퇴생활 중에 더욱 활발해졌다. 2014년 가족문맹퇴치기금의 대표직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날 때까지 그녀의 재단 조직은 미국 전역의 50개주와 워싱턴 D.C.로 확대되었고, 해마다 5천만 달러 이상의 기금으로 가족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교육 참여자도 수백만 명에 달하고 있다.


그녀는 또한 세계 곳곳에서 재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긴급구호봉사단체인 아메리케어스 순회대사로 활동했으며, 빈민무료치료 자선단체인 메이요 클리닉 재단의 운영이사직을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내 백혈병환자 지원단체인 미국 백혈병 협회, 불치병어린이환자 지원단체인 로널드 맥도널드 하우스, 불우 청소년 기술교육단체인 보이즈 & 걸즈 클럽 오브 아메리카 등 사회봉사단체의 유력한 후원자였다.


고 바버라 부시 여사의 삶은 영부인으로서 공식적인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원봉사와 관련된 일이라면 열 일을 제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녀의 자원봉사에 대한 애착과 정성은 국민을 위하는 사회 지도층 인사의 사랑 그 자체였다. 한 개인으로서, 또한 한 국가의 영부인으로서 자원봉사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인 그의 노력으로 지금도 미국은 성인의 절반 이상이 자원봉사를 경험한 볼런티어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바로 그것이 미국을 선진국으로 지탱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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