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8일 북한의 국제 관문 평양 순안 공항.

미리 대기한 말쑥한 차림의 북한 남성들과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오전 9시 49분. 대한민국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고…그렇게 9월의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일정이 시작됐다.

 

① “산천은 갈라지지 않았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비행기로 방북한 뒤 18년 만의 남측 대통령의 하늘 길 방북이었다. 하늘 길을 처음 연 김대중 대통령은 비행기 문이 열리자 잠시 북녘 산하를 묵묵히 바라본다.  


“꿈에 그리던 북녘 산천, 평생 북녘 땅을 밟지 못할 것 같은 비감한 심정에 젖기도 했습니다. 너무나 긴 세월을 돌고 돌아 이제야 왔습니다.” 


평양 도착 성명에서 북한에 온 소감을 밝힌 김대중 대통령. 트랩을 천천히 내려와 김정일 위원장과 두 손으로 악수를 나눴다. 


18년 뒤인 2018년 9월 18일. 


평양 순안 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문재인 대통령. 


"비행기에서 육지가 보일 때부터 내릴 때까지 북한 산천과 평양 시내를 죽 봤습니다. 보기에는 갈라진 땅이라고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역시 우리 강산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늘 길로 평양에 온 남측 대통령들의 평양 소회는 그렇게 닮아 있었다.


하지만 강산이 2번 가까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다. 평양 순안 공항의 모습도, 북한 사람들의 태도도 바뀌었다. 





2000년 여름. 평양 순안 공항의 첫 인상은 김일성 주석의 사진으로 남아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공항 건물 위 한가운데 자리 잡은 김일성 주석의 커다란 초상화가 곧장 눈에 들어왔다. 초상화 좌우에는 붉은 색 글씨가 선명한 평양이라는 간판이 한글과 영어로 배치돼 있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는 찾아 볼 수 없었고 오히려 폐쇄된 북한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어 한편으론 씁쓸했다. 낡고 초라한 공항 청사는 과연 이곳이 한 나라의 국제 관문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당시 평양에 함께 간 동료 기자는 공항 내에 에스컬레이터가 없다는 사실에 측은한 마음을 표현할 정도였다.


하지만 2018년 9월 18일의 평양 순안 공항은 달랐다. 


2015년에 새로 지은 공항 신청사는 번듯했고, 청사 위에는 이곳이 평양임을 알리는 표시만 선명했다. 외국의 여느 국제공항과 유사했다. 남측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한 인파들 사이엔 푸른색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평양을 방문하는 문재인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나가자


푸른색 바탕에 흰색 글씨. 북한 하면 떠오르는 붉은 글씨가 아니었다. 


남측을 배려한 것일까? 아니면 북한의 미적 감각이 나아진 것일까?


② 대통령과 대통령 각하


2000년 6월 공항에 내려 김정일 위원장과 두 손 맞잡고 인사를 나눈 김대중 대통령. 첫 만남을 가진 남북의 두 정상은 북한군의 사열을 위해 자리를 잡는다. 북한군 의장대장이 두 정상 앞으로 절도 있게 걸어와 사열 준비 신고를 한다. 


사열 신고를 받은 사람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정렬했다는 사실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한 것이다.


18년이 지난 2018년 9월 18일엔 달랐다. 


세 차례 포옹으로 인사를 나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앞으로 의장 대장이 사열 신고를 위해 성큼성큼 발길을 옮긴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바로 멈추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사열 준비가 됐음을 신고한다.


"대통령 각하!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는 각하를 영접하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각하라는 존칭을 붙이고, 최고의 예우를 뜻하는 예포 21발도 발사됐다. 


북한의 예법이 달라진 것일까? 그사이 남측을 배려하는 마음이 커진 것일까?


③“결사옹위” 빠지고 “평화번영”


공항 행사를 마치고 문 대통령의 속소인 백화원 초대소로 이동하는 두 정상. 


공항에선 각각 리무진을 타고 출발했지만 평양 중심지 입구인 버드나무거리 연못동에서 두 정상은 잠시 내린다. 환영 꽃다발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잠시 걷더니 북한이 마련한 오픈카, 무개차에 함께 오른다. 북한이 준비한 환영 카 퍼레이드이다. 


2016년 고층빌딩으로 화려하게 조성된 여명 거리를 비롯해 김일성 주석의 집무실이 있던 금성 거리등 북한의 주요 거리 곳곳을 카 퍼레이드했다. 환영 나온 인파는 줄잡아 10만 명은 될 것 같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18년 전 김대중 김정일 두 정상은 공항에서 함께 리무진에 동승해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로 향했다. 두 사람의 깜짝 동승에 경호팀은 잠시 당황했고,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하는 궁금증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하지만 당시 두 정상은 60만 환영 인파들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카 퍼레이드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평양 주민들이 외치는 구호가 18년 전과는 달랐다. 조국통일이라는 외침은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했지만, 사라진 구호와 새롭게 등장한 외침이 있다.





18년 전 김대중 대통령 방북 당시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충성 구호를 간간히 그러나 목놓아 외쳤다. 


“김정일 결사옹위! 결사옹위”


하지만 이번엔 결사옹위같은 충성 구호는 사라졌다. 대신 “평화 번영” 이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환영 인파 속엔 한반도기를 든 사람도 눈에 띄었다. 


연도에 늘어선 평양 주민들이 ‘평화와 번영’을 외치고, 문 대통령 환영한다는 플래카드에서도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자고 강조한 북한. 


핵보다는 경제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 깨달은 걸까? 

진정성 있게 핵도 포기할 수 있다는 걸 내비친 걸까?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저작권자 © 피처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