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됐다”


2018년 9월 19일 오전 11시 40분 .

문재인 김정은 두 남북 정상이 기자회견장에 섰다. 9월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는 자리. 

문 대통령은 “남북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위협을 없애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했다.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됐다” 


이 발표에 사실상의 종전 선언이라는 평가들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또 남과 북이 처음으로 비핵화 방안도 합의했다며 “이제 한반도의 영구 비핵화도 머지않았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도 "수십 년 세월 지속돼 온 처절하고 비극적인 대결과 적대의 역사를 끝장내기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핵 없는 한반도를 육성으로 언급했다.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


② “15년 북핵문제 돌파구”…그러나 


그때는 추석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베이징에서 열리는 6자회담 취재를 위해 추석 연휴를 꼬박 날린 취재기자들은 입이 나올 대로 나와 있었다. 하지만 2년에 걸친 마라톤 회담 끝에, 그것도 6개 나라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해, 이제 곧 북한 핵문제를 풀 해법이 도출된다는 기대감에 피곤함과 초조함은 조금 달랠 수 있었다. 


한 베테랑 외교전문 기자는 “90년대 초반부터 15년 가까이 끌어온 북한 핵문제의 돌파구가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복잡한 핵 문제여서 어렵고 관심도 덜하겠지만 한 번쯤은 베이징에서 날아오는 뉴스에 귀를 기울여도 좋겠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지금부터 13년 전인 2005년 9월 19일 발표된 6자회담 공동성명 이야기다. 


‘9.19 공동성명’


북한 핵문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남북과 미-일-중-러 6개국의 합의서이다. 북핵과 북미관계 개선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면서도 행동 대 행동이라는 서로 상응하는 실천적인 해법 프로세스를 담고 있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조속한 시일 안에 NPT와 IAEA 안전조치에 복귀한다.


*미국은 한반도내 핵무기 부재 및 북한에 대한 공격 또는 침공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다.


*6개국은 에너지 교역 투자 분야에서 경제 협력을 증진하고 동북아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


그렇게 그해 2005년 한가위는 북핵 해법 도출이라는 결실로 풍성했다. 


그리고 6개국의 상호 조율된 조치는 2007년 2월 13일과 10월 3일 또 다른 후속 합의를 만들어 내면서, 실행계획을 더욱 구체화시킨다. 핵심은 북한에 100만 톤 상당의 중유나 대북 경제 지원을 제공하고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의 목록을 작성하며, 2007년 안에 모든 현존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모든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완료하는 것이다.


요즘 많이 들리는 이른바 핵 리스트 제출과 신고, 검증을 당시 6자회담 대표들도 합의한 것이다.


2008년 6월 영변 냉각탑 폭파라는 북핵 불능화의 상징적인 장면도 나왔지만, 그때뿐이었다. 테러지원국 지정을 놓고 북미간의 힘겨루기가 재개되고, 대북 중유 지원 중단조치에 폐연료봉 재처리로 맞서면서 역사적인 문건인 9.19 공동성명은 사실상 사문화되고 만다. 그리고 외교부의 표현대로 ‘6자 회담은 핵물질 및 핵시설 검증에 대한 북한의 비협조로 2008년 12월을 마지막으로 재개되지 못했다.’





③ 반복되는 역사?… 이번 9월 합의는? 


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이제 풍성한 가을을 맞이하자는 남과 북.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방안에 남북이 처음 합의했다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이번에 합의한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는 이렇다.


북한이 동창리 엔진 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 하에 영구적으로 폐기하고-->미국은 상응 조치를 취하고-->다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 같은 추가 조치를 계속 취하기로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의 합의에 매우 흥분된다며 환영했다.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즉각 협의에 나서자며 북한 대표를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나자고 했다. 국제 원자력 기구, IAEA가 있는 바로 그 곳에서 비핵화 협상을 갖자는 것이다. 그리고 2021년 1월까지 비핵화를 완성하자며 시한도 제시했다. 남북 9월 평양공동선언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 협상은 곧장 재개될 계기를 잡은 것이다. 9월 남북 정상회담이 다시 북미 협상을 견인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북미 협상은 과연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고 힐난하고 있다. 특히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MIT의 저명한 학자 비핀 나랑은 “겨우 영변 때문에 미국이 상응조치를 하라고…말장난(“Should the US take corresponding measures” and just “Yongbyon”…Nice word play)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비핵화의 핵심인 핵 신고와 검증이 빠져 있는데다, 영변을 폐쇄하더라도 이미 북한 내 다른 핵 시설이 있다는 게 미국 정보 당국의 판단이어서 이걸로는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린 것이다. 때문에 이번 공동선언으로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관계에 계속 열의를 갖게 되겠지만, 비핵화 진전에 대한 미국 관리들의 회의론도 계속 될 것”이라는 영국 가디언의 분석은 뼈아프다. 


역사에 기록될 두 번의 9월 19일.


첫 번째 9.19는 성과를 유지하지 못하고 끝났다. 과연 두 번째 9.19는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인지, 북미 실무협상과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두 번째 9.19의 명운이 달려 있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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