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부수고 들어가니까 신발이 딱 있었습니다. 그 순간 섬찟했는데 거실에 조카가…."


25일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하구 일가족 살인사건'의 유족이 잔혹한 범행에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사건 현장을 처음 목격한 한 유족 A 씨는 본보와 통화에서 "평소 펜션을 빌려 친척들끼리 같이 여행 갈 정도로 화목한 가정이었다"면서 "부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A 씨는 27일 부산 광안리에서 열리는 불꽃축제를 숨진 B(84·여) 씨와 함께 보기로 했었다. A 씨 집에서 불꽃축제가 잘 보이기 때문에 B 씨를 이틀 전 모셔 함께 밥도 먹고 목욕도 시켜드리며 지낼 생각이었다. A 씨는 "B 씨는 최근 심근경색으로 죽을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면서 "평소에도 10일씩 함께 지내는 등 왕래가 잦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B 씨를 모시고 가기 위해 25일 오전부터 수십 번 B 씨와 함께 사는 아들 내외에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다. A 씨는 "갑자기 연락되지 않아 친척들 모두 밥 숟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고 말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B 씨 집을 찾았지만, 문이 잠긴 채 불은 꺼져 있고 인기척도 없었다. 노인정에도 B 씨가 없었고, 함께 살던 B 씨 손녀인 C(33·여) 씨도 출근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낀 A 씨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경찰과 문을 열고 들어가 범행 현장을 목격했다.





A 씨는 용의자로 지목된 신 모(32) 씨에 대해 일절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A 씨는 "평소 만나기는커녕 C 씨 등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부산 사하경찰서에 따르면 신 씨는 C 씨와 1년 가까이 동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C 씨와의 이별 등이 유력한 범행 동기로 지목되고 있다. A 씨에 따르면 타지에 살던 C 씨는 2~3개월 전부터 가족들과 함께 지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사건 당일 경찰의 초기 대응에 불만을 토로했다. A 씨는 "처음 파출소에 실종신고를 하니, (연락이 안 된 지) 하루밖에 안됐는데 무슨 신고를 하느냐고 하더라"라며 "상황 판단이 안 되냐며 따지니 그제야 신고를 해줬다"고 말했다. 더불어 경찰이 문을 강제로 여는 것도 처음에 거부했었다고 말한다. A 씨는 "문을 열자고 하니까 마음대로 못한다고 말하더라"라며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판국에 도대체 무슨 소리냐며 따지니까 열쇠공을 불러 문을 개방했다"고 말했다.


현재 A 씨 등 유족들은 부검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피해 일가족의 휴대전화 등이 국과수에 넘어간 상태라, 지인 등에게 연락도 하지 못하는 처지다.


사건 정황은 CCTV와 현장 확인 등으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신씨는 24일 오후 4시 12분쯤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다. 신씨는 아파트 출입카드를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조씨 집에는 조씨 아버지 혼자 있었다. 경찰은 집 밖을 배회하던 신씨가 조씨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따라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1~2시간 뒤 어머니와 할머니가 귀가했다. 조씨는 8시간 뒤인 25일 자정 쯤 집에 들어섰다. 신씨는 이들을 집에 들어온 순서대로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살해당한 시신 중 전 여자친구 조씨를 제외한 나머지 3구는 화장실로 옮겨져 있었다.


조씨 시신만 그대로 거실에 놓여 있었다. 조씨 시신에선 다른 가족과 달리, 목에 졸린 흔적 뿐아니라, 둔기와 흉기를 모두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을 지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26일 YTN에서 "조씨 시신에 남은 상처는 고문의 흔적일 수도 있다"며 “조씨는 가장 마지막에 살해됐을 것으로 보인다. 용의자의 주요 목적이었다. 때문에 전 연인을 거실에 별도로 두고 (고문한 뒤) 나중에 살해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상훈 교수는 "보통 이별범죄가 그렇다. 자신을 무시하는 여자친구나 남자친구의 가족에 대한 망상적 원한을 가지고 공격한다"고 말했다. 또한 배 교수는 "(용의자는) 저항력이 가장 큰 사람을 가장 먼저 공격한다. 그러니까 (가장 먼저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 연인 조씨 아버지는) 남성이지 않느냐”면서 “65세지만 남성이고 나머지는 여성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제압하기 어려운 남성을 우선적으로 공격해 제압한 다음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한편 피의자의 자살 방법도 이상한 정황이 포착된다. 전 연인을 포함한 부산 일가족 살해를 벌인 용의자 A씨는 사건 후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흉기 등 끔찍한 방법으로 남의 목숨을 앗아간 데 반해 자신은 좀 더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그가 범행에 사용한 질소 가스를 큰 통에 담아 현장으로 들고 가는 장면도 CCTV에 담겼다. 일가족을 흉기 등으로 잔혹하게 살해했지만 정작 본인은 가스질식으로 자살을 선택했다. 가족을 모두 죽인 뒤 몇 시간 동안 혼자 시신을 두고 있으면서 자살결심을 주저하다 피의자는 마침내 밤을 세운 뒤 아침 9시가 넘어 자신의 차에서 질소탱크를 들고 들어가 비교적 고통 없이 자살을 한 셈이다.


범행 수법이나 자살 방법 등이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드러나 이번 사건의 충격은 쉽게 국민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향후 부검결과가 나오면 보다 자세한 범행 계획이 드러날 전망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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