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여성이 런던의 번화가에서 인종차별적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지 경찰에 신고했으나 무시당했고, 주영 한국대사관에도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도 했다. 대사관 측은 “신속한 수사를 요청했다”면서도 “현지 경찰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ㄱ씨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11일 오후 5시50분경 옥스포드 거리 ‘마크 앤 스펜서’ 앞에서 청소년으로 보이는 흑인과 백인 무리 10여명에게 무차별적인 집단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이 ㄱ씨 체격(160cm)보다 컸고, 180cm 이상의 남성도 포함돼있었다.


ㄱ씨는 친구와 길을 걷던 도중 이들 무리가 자신의 등 뒤에서 쓰레기를 던지기 시작했고, 여기에 강하게 항의하자 폭행이 시작됐다고 했다. “뒤를 돌아 그만하라는 의사를 표현하자 한 흑인여자애가 팔을 잡으며 ‘어? 영어할줄알잖아? 너 괜찮아?’ 라며 머리에 또 쓰레기를 던졌다. 그 순간 너무 화가나서 저도 들고 있던 쓰레기를 그 흑인여자애에게 던졌다”고 썼다. 이에 격분한 여성이 ㄱ씨를 바닥에 쓰러뜨렸고, 다른 이들과 함께 발길질을 하거나 머리와 뺨을 수차례 때렸다는게 ㄱ씨의 주장이다.





ㄱ씨는 폭행이 6~7분가량 이어졌지만 “도와주는 사람이라곤 행인 두명 뿐이었고, 모든 사람이 그 상황을 핸드폰으로 찍고만 있었다”고 했다. 현지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지만 한 시간이 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고, 자신의 전화번호와 집주소를 남겼지만 끝내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도 썼다.


ㄱ씨는 폭행 이후 영국 경찰과 주영 한국대사관의 대처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날 저녁 인터넷으로 사건 접수를 하고, 폭행 현장 인근의 CCTV 확인을 요청했지만, 현지 경찰은 심리치료를 신청하라는 메일만 보냈다는 것이다. 대사관 측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민사 사건이라 직접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 “CCTV를 통해 범인이 잡히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주영 한국대사관 측은 “현지 경찰에 신속한 수사를 요청한 상태고, 피해자를 통해 담당 경찰관 연락처를 전달받았다. (면담 등을 통해) 수사 상황을 논의할 예정”이라면서도 “피해자가 동양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혐오 범죄(hate crime)의 대상이 된 건지 면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게 현지 경찰의 판단이다. 대사관에서 바라는 수준으로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수사권 침해 우려가 있을 수 있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민사사건이라 직접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말은 직원과의 소통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고 했다. 폭행 당일 신고를 받고도 출동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영국에서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 범죄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브라이턴 중심가에서 한국인 유학생 ㄴ씨가 영국인 10대 2명으로부터 샴페인 병으로 얼굴을 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편 주영 한국대사관의 해명에 대해 일각에서는 '너무 미온적인 대책이다'라는 평가도 나온다. 유럽 대부분의 한국 대사관은 유럽이 선진국이라는 이유로 자국민들의 피해사실이 발생했을 시 일단 수동적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현지 경찰의 수사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는 해명이 그동안 대사관들이 주로 해오던 미온적인 대처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많다. 자국 피해자들을 면담하거나 구체적인 사건 진술을 청취해 현지 경찰에 의견을 구하는 등의 적극적인 행위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수사권 침해와 수사 협조는 다른 문제다.


더구나 피해자가 사건의 피해정도가 심각함을 인지하고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까지 감수하며 공개적인 글을 올렸다는 것은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폭행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현지 대사관들은 가급적 '귀찮은 일'에 휘말리려 하지 않고, 현지 경찰의 처분을 기다려라는 형식적인 대답할 뿐이다. 대사관의 존재 이유는 외국 자국민의 보호가 그 첫번째 역할이다. 대사관들이 과연 그 직무에 충실한지, 한 유학생의 애절한 호소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대사관 관계자들은 외국에 사교하러 간 것이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그 사람들을 보호하는 게 1차 목표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저작권자 © 피처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