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비박근혜)계 좌장 자유한국당 김무성 의원이 최근 친박(친박근혜)계 주요 인사들을 연이어 접촉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당은 오는 11일 원내대표 선거, 내년 2월말 즈음 전당대회 등 굵직한 선거들을 앞두고 있어 이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의원은 지난달 28일 구속 수감 중인 친박계 최경환 의원 면회를 다녀왔다. 다음날인 29일에는 권성동 의원과 함께 친박계 홍문종‧윤상현 의원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모임에는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 보수진영 인사 등도 동석했다.


앞서 지난달 중순 김 의원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정국 현안 등을 의논했다. 최근 한 달 사이에만 친박계와 바른미래당 등을 넘나들며 가히 '보수대통합'의 행보를 보여준 셈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원내대표 선거와 전당대회를 앞두고, 고질적인 계파갈등을 종식시키는 동시에 '보수통합'의 이미지를 얻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향식 공천을 한번 더 해보고 싶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황에서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당권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 의원은 지난 2016년 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 대표 시절 20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 수뇌부의 공천개입을 막기 위해 '상향식 공천제'를 추진했지만 결국 실패한 데 대해 언론 등을 통해 아쉬움을 토로해왔다.


김 의원과 홍 의원의 회동 자리에서 거론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불구속재판 촉구결의안' 발의도 추진되는 분위기다. 당내에선 두 전직 대통령의 불구속재판을 촉구하는 토론회 개최와 함께 당내 의원들에게 서명을 받는 작업이 조만간 시작될 것으로 전해졌다. 구속된 대통령들을 고리로 당내 계파갈등을 희석시키는 동시에 반문(反文)연대를 통해 보수통합을 도모하겠다는 구상이다.


당내에선 친박‧잔류파를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원내대표 선거를 불과 1주일 앞두고 김 의원 주도 하에 진행되는 이같은 움직임이 결국 선거의 판을 흔들고자 하는 정략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친박 좌장이었지만 계파갈등의 책임을 지고 지난 6월 20일 탈당한 서청원 의원은 4일 자신의 SNS(페이스북)를 통해 "탄핵에 찬성하고 탈당했던 사람들이 한 마디 사과와 반성도 없이 슬그머니 복당하더니, 이제 와서 정치적 입지를 위해 석방 결의안을 내겠다고 한다"며 "일부 중진들이 보이는 행태야 말로 후안무치한 일"이라고 김 의원을 정면 겨냥했다.


김 의원이 보여준 계파화합 행보가 진정성이 없다며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나아가 당내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박 전 대통령 탄핵' 문제에 대해 복당파들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범 친박계 의원은 "당내 선거를 노리고 김 의원이 주도하는 세력이 만든 이런 움직임에 누가 동의할 수 있겠냐"며 "설사 반문연대를 하더라도 김 의원과 복당파들이 중심이 되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의원은 지난해 한국당 친박계 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촉구할 당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정갑윤, 유기준, 최경환, 유재중 등 친박계 의원 16명은 지난해 9월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영장 청구가 부당하다며 불구속 수사 전환을 주장한 바 있다.


김 의원의 '보수통합' 행보가 선거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기류가 퍼지면서 원내대표 선거에 나선 비박‧복당파 김학용 의원도 불리해지는 형국이다. 김 의원은 친박‧잔류파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나경원 의원과 양자구도를 형성하고 있지만, 중립지대에 속한 의원들이 점점 나 의원으로 쏠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당초 원내대표 선거 출마를 검토했던 유재중 의원의 불출마 선언도 김학용 의원에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유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출마 준비 과정에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껴 포기했다며 당의 분열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지지하는 후보를 지칭하진 않았지만 유 의원이 지난해 9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수사 촉구'에 참여한 것을 감안하면 친박‧잔류파 쪽인 나 의원에 가깝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당내 한 중진의원은 "최근 언론에서 나온 발언을 유심히 들어보면 김학용 의원은 겉으론 여유 있는 척 하지만, 뭔가 뒤처진 사람의 초조함이 드러난다"며 "이미 대세는 나 의원 쪽으로 기운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진의원은 김무성 의원에 대해 "결국 홍준표, 오세훈, 정우택 등 당 대표 후보들이 난립할 경우, 김 의원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보고 미리 포석을 까는 것 아니겠냐"이라며 "자신이 출마하지 않더라도 전대 과정에서 다른 후보들에게 영향력을 보이며 일정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의원의 '커밍아웃'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근 문 대통령 지지율이 빠지면서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반문 정서가 깊어지고 있다. 이를 지렛대 삼아 내년 전당대회 출마 포석을 깔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친박계와의 화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지지했던 멍에 때문에 그런 작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무성 의원의 '복귀'는 정치적 명분도 없고 당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당 안팎의 시각이다. 당을 수습하겠다는 명분이 있을 수 있지만, 당 쓰러져 가는 당을 위해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후배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는 것이 6선 의원의 마지막 명예를 지키는 일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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