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대차가 90도로 꺾였다는 건 강력한 힘을 가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없는 일이다.”


8일 오전 강릉역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KTX의 탈선사고를 두고 전문가들은 다양한 가능성을 제기했다. 서울행 KTX 806 열차는 이날 오전 7시 35분경 강릉역에서 출발한 지 10분만에 탈선했다.


일단 사고의 원인이 강추위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강릉시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아무래도 기온이 급강하해 선로 상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추정한다”며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사고원인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 사장의 발언을 두고 철도 전문가들은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철로를 깔 때 영상 40℃에서 영하 40℃까지 견딜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겨울 영하 20℃까지 내려가는 한파에도 탈선 사고는 없었다.


여기에 과거 나무 침목에 못을 박던 레일은 날씨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아 탈선 사고가 많았지만 콘크리트에 나사로 철로를 고정하면서 탈선 사고는 사라졌다. 앞뒤 상황을 확인하지 않은 채 나온 발언이라는 지적이 많다.


다만 사고 원인을 묻자 전문가들은 현장에 가지 않은 이상 단언하기 어렵다며 주저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다시 질문하자 조심스럽게 다양한 가능성을 제기했다.


일단 눈길을 끄는 것은 기관차를 포함한 열차 앞 두 량이 90도로 꺾였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90도로 꺾였다는 건 앞 두 량은 멈춰서 있었다는 것이고 뒤 객차는 앞으로 전진한 것”이라며 “멈춰선 두 량을 뒤 객차들이 사실상 밀고 들어오면서 옆으로 꺾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전문가가 제기한 것은 인터락킹(연동장치)의 문제였다. 궤도회로, 선로방향 전환기, 신호기 등 3개의 장치는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에러’가 발생하면서 이 장치들이 연동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선로방향 전환기 자체에 이상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코레일에 따르면 이날 사고는 KTX 강릉선과 영동선이 나누어지는 분기점(청량 신호소) 인근에서 발생했다. 이곳에는 분기기와 선로방향 전환기 등 열차 선로를 자동으로 바꿔주는 변환 장치가 있다.


선로방향 변환 장치는 통과 열차가 영동선 방향인지 서울 방향인지에 따라서 선로를 자동으로 해당 방향으로 붙여준다. 이 장치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는 얘기다.


인터락킹이나 선로방향 전환기 오작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열차들은 객차끼리 기계적으로 늘어 붙도록 설계된 관절대차 형태다. 쉽게 설명하자면 객차와 객차를 하나의 몸통으로 단단히 연결해 마치 사람의 관절처럼 자유로이 움직이도록 했다. 따라서 관절대차는 웬만한 충격도 받아들일 수 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관절대차를 90도로 꺾을 정도로 밀고 들어와야 했는데 100㎞도 안 되는 속도에서 그 정도 힘이 나올 수 없다”면서 “알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강릉역에서 출발하던 사고 열차는 100㎞로 달리던 중 속도가 줄었다. 기관사가 사고를 감지하고 속도를 줄였다는 얘기다. 국토부의 항공철도사고조사연구위원회도 이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 해당 차량을 운전한 기관사와 만났다. 기관사는 이날 부상을 입은 14명 중 한 명이다. 이들은 병원에서 진찰을 받은 뒤 부상이 경미해 귀가 조치됐다.


그나마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인명피해 부분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대형 인명 피해는 피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근거로 든 것이 일본 최악의 열차사고로 꼽히는 JR 후쿠치야마(福知山) 탈선 사고다. 2005년 4월 일본에서 발생한 이 사고로 106명이 숨지고 562명이 부상했다.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에서 운행 중이던 급행열차가 곡선 구간에서 탈선한 뒤 선로변의 아파트에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지체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기관사가 제한속도 시속 70㎞인 커브 구간에서 시속 116㎞로 달리다 제동 타이밍을 놓쳤다. 아파트와의 충돌이 있었다고 해도 KTX보다 10㎞ 정도 빨리 달린 것에 비해 피해 규모가 지나치게 컸다.


또 다른 익명의 전문가는 “후쿠치야마 사고 때 열차는 경량이지만 KTX는 고속열차에 맞게 내구성을 갖추도록 했다”면서 “여기에 관절대차라 충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했다.


한편 수습대책본부를 꾸리고 복구작업을 진행 중인 코레일은 “10일 강릉선 첫 열차(오전 5시30분 강릉역 출발)부터 정상 운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복구 작업은 사고 차량 이동, 전차선 복구, 레일 복구 등이 진행된다. 현재 현장에는 250여명의 직원이 작업 중이며 기중기·모터카 등의 설비도 투입됐다.


현재 강릉선 KTX는 서울~진부 구간만 운행중이다. 진부~강릉 구간은 대체버스 44대가 투입됐으며 복구가 완료될 때까지 계속 연계 수송될 예정이다. 코레일은 진부~강릉 간 대체버스에 소요되는 시간이 약40분인 점을 고려해 진부역 출발 시각을 정시보다 20여분 늦췄다.


일각에서는 최근 코레일의 잦은 '소형사고'가 대형사고를 위한 전조일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매너리즘에 빠진 운용상의 문제는 없는지 이번 기회에 코레일의 선제적인 대응과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덥고 추운 탓만 하고 있을 것인가.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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