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사태가 일어난 지도 3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12사태는 지난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중심이 된 신군부 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 사건이다.


이 쿠데타가 일어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바로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피살되면서 정국은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졌고 군부가 권력의 주류를 이루던 그때 혼란기를 틈타 전두환 등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권력을 찬탈했었다.





해마다 돌아오는 10.26, 12.12 사건이지만 우리들에게 그 사건은 아련한 역사속의 기억으로만 머물 뿐이다. 생생한 현장은 사라진 지 오래다. 10여년 전인 2009년 한 일간지에 칼럼이 실렸다. 필자는 당시 국회도서관장을 맡고 있던 유종필 전 관악구청장이었다. 그의 칼럼 하나로 비롯된 '그때 그 사건의 권총' 이야기를 소개해본다.


유종필 전 구청장은 국회도서관장직을 맡으면서 한 일간지에 칼럼을 쓴 바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얼마 전 미국의 각종 도서관 및 유관 기관들을 방문했을 때 안내해 주었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한국인 직원 선애 에반스씨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스미스소니언은 지금 링컨 탄생 200주년 전시회 준비로 한창 바쁜데, 갑자기 한국의 일이 생각났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당시 쓰였던 총, 그가 입고 있었던 피 묻은 옷, 술병과 술잔, 기타 소지품 등등이 잘 보존돼 있나요? 지금 저희가 준비하는 것들이 링컨과 관련한 그런 것들입니다. 한국은 너무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중요한 것들이 무관심 속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아, 벌써 10·26 30주년이구나. 그런데 과연 그런 유물들은 지금 보존돼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보존상태는?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군인들이 그 유물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혹시 그 귀중품들을 단순히 '증(證)1, 증2, 증3'으로 처리하지는 않았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만일 어떤 상태로든 현존한다면 이제라도 보존처리를 하여 그 엄청난 역사적 유물들을 30주년인 올해 국민 앞에 전시하면 어떨까?


이 칼럼이 나가고 10여일 뒤 같은 지면에 또 다른 이야기가 실렸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권총'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 기사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당시 쓰였던 총, 그가 입고 있었던 피 묻은 옷, 술병과 술잔, 기타 소지품 등등이 잘 보존돼 있나요? … 과연 그런 유물들은 지금 보존돼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보존 상태는?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군인들이 그 유물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이 기사는 유종필 국회도서관장이 한 미국인의 의문에 영감을 얻어 10.26의 역사적 현장을 보존하자는 칼럼을 쓴 데 대한 일종의 '답변'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40분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김영삼 정권 때 당시 안가를 모두 헐어버리고 지금의 공원을 만들었다)에서 총성이 울렸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유신의 심장을 쏘기 위한 심정이라며 일으킨 역모의 신호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을 절명시킨 그때 그 권총은 어디에 있을까. 이 기사는 일종의 권총 추적기에 해당한다. 12.12 사태가 와도 기계적으로 당시의 상황을 기억한다. 역사의 엇갈린 수레바퀴가 바로 문제의 그 권총 한자루에 의해 비롯됐다.




범행에 사용된 총기의 총번은 159270이다. 이 독일제 월터 PPK(Polizei Pistole Kurz 혹은 Kriminale) 권총은 32구경 7연발 탄창식으로 길이가 15.5㎝, 무게가 570g이다. 이 권총은 분해와 조립하기가 쉽고 명중률과 안전성이 우수해 호신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1929년 경찰용으로 제작된 월터 PP를 더 짧게 만든 PPK는 007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김재규가 육군대학 부총장으로 있던 1960년 육군대 총장이던 이성가(李成佳) 장군이 김에게 권총을 선물했다. 사건 당일 김재규는 정보부 사무실 금고에 보관하던 이 권총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만찬에 참석했다.


사건 발생 후 현장을 감식했던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당시 육군과학수사연구소)의 지장현 당시 총기감식팀장은 "박 전 대통령 시해사건 관련 총기는 대부분 반납했다. 당시 감정 기간은 1주일 정도였는데 감정이 끝나면 의뢰한 부대에 바로 회송했다"고 했다. 그는 "김계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갖고 있던 총도 김 실장이 소유를 포기하겠다고 해 내가 회수했다"며 "구두와 양복, 와이셔츠도 화약 감정을 하기 위해 보관하고 있었는데 보안사에서 다 가져간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 지장현 총기감식팀장이 10월 27일 새벽 5시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찍은 당시의 사진. 지씨는 이 사진을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다가 공개한 바 있다.



지씨는 재직 당시 군과 경찰에 반납되거나 사건과 관련된 총기 중 특이한 것을 구경별로 모아놓았다고 했다. 액자 모양의 나무 상자에 설명을 적은 라벨을 붙여서 보관했는데 한때 120여정에 달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이기붕 부통령의 장남이며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이강석이 가족들을 쏘고 자신의 목숨도 끊은 45구경 권총이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일부 언론은 "'김재규의 총'이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깊숙한 곳에 보존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씨는 "박 대통령을 시해한 것과 유사한 종류의 총기가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했다.


1979년 보안사령부로 넘겨진 그 권총은 어디로 갔을까. 보안사는 지금의 기무사령부의 전신이다. 기무사 관계자는 "기록에 따르면 내란 목적으로 한 살인 등 관련 사건에 대한 자료 일체를 1979년 11월 중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 송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육군본부 검찰부 관계자는 "10·26 당시 판결문과 수사 기록을 보면 총기 등 관련 증거물에 대해 몰수 판결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압수 금품목록에 처리 내역이 연필로 가필돼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실탄은 육군본부 사령부로 반납됐고 손수건은 폐기한 것으로 나와 있다. 김재규가 사용한 총기는 중정 소유여서 문건에 중정에 반납됐다는 취지로 적혀있다"고 했다. 중정은 지금의 국가정보원이다. 권총 반납 시점에 대해 육본 검찰부 관계자는 "재판이 신속히 진행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1979년 말에서 1980년 초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문제의 총기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보안사에서 압수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고 했다. 하지만 군 검찰부에서 이 권총을 중앙정보부로 보냈다는 기록에 대해 언급하자 국정원은 "좀 더 조사해보겠다"고만 밝혔다. 며칠 뒤 이 관계자는 "현재 (이 권총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운명의 '그때 그 권총'은 지금도 풍파를 겪고 있는 것이다.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했을 때 사용했던 그 권총은 이미 10여년 전 깜쪽같이 사라졌다고 기록돼 있다. 지금도 그 권총의 행방은 묘연하다. 당시 국정원은 자신들의 수장이 대통령을 죽이는 데 쓰인 그 권총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없다고 했을 수도 있다. 언론의 취재요청에 그리 대답했을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정부나 국회 등의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그 권총의 소재를 다시 파악해야 한다. 잊혀지는 역사는 미래를 위해 아무런 의미도 없다. 불행한 역사는 그래서 되풀이된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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