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31일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실에서 야당 의원들과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야당 의원들은 청와대 특감반 소속이었던 김태우 전 수사관의 폭로 내용을 토대로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여권 실세 인사들의 비위 행위를 무마했고 불법적으로 민간인 사찰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 수석은 이번 논란을 ‘김 전 수사관이 벌이는 희대의 농간’으로 규정했다. “비위 행위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비위 행위자의 일방적 진술”이라며 김 전 수사관 폭로의 신뢰성을 문제 삼았다. 야당의 정치 공세에 맞서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조 수석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작심한 듯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조 수석은 국회에 도착하자마자 기자들과 만나 “비위 행위자의 사실왜곡 주장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매우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임 실장도 “적어도 민간인 사찰이니 블랙리스트니 하는 무리한 주장들이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라는 점은 확인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운영위원회가 시작돼 야당 의원들의 질의가 시작되자 조 수석과 임 실장은 구체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우윤근 주러대사의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해 조 수석은 “1억2000만원 수수 의혹은 박근혜정부 시절 검찰에서 무혐의가 결정됐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취업 청탁을 빌미로 1000만원을 받았다는 또 다른 의혹에 대해서는 “인사검증 라인으로 (첩보를) 이첩했다”고 했다. 임 실장은 “내부 인사검증 절차가 완료된 뒤에 그 첩보가 접수된 걸로 들었다”고 했다. 1000만원 수수 의혹의 실체가 명확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이 밖에도 야당은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블랙리스트 문건 작성 의혹, 사기업 인사개입 의혹 등을 연달아 제기했다. 하지만 조 수석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지시한 바도 없고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민간인 사찰 의혹도 사실무근이라고 맞섰다. KT&G 사장 인사에 청와대나 기재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임 실장은 “(지시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뚜렷한 증거 없이 야당의 의혹 제기와 청와대의 부인이 회의 내내 반복됐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청와대가) 김 수사관 말이 전부 다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왜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지 않느냐. 사실이 밝혀질까 두려운 것 아니냐”고 따지자 임 실장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추가로 하겠다”고 맞섰다.


조 수석은 이명박·박근혜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김 전 수사관을 문재인정부에서도 기용한 배경도 직접 설명했다. 조 수석은 “첩보수집 능력이 좋다는 평가가 있었고 면접 태도도 좋았다. 과거 정부에서 일했다는 것만으로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야당에서 제기한 인사 청탁 의혹도 부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적극적으로 청와대의 입장을 옹호했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이번 사건의 본질은 3비 커넥션”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이 지목한 ‘3비’는 비위 공직자, 비리 기업인, 비토 세력이다. 비리 기업인들과 부적절하게 어울렸던 김 전 수사관이 폭로한 내용을 문재인정부 비토 세력이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의원은 “그 몸통은 한국당”이라면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구체제, 적폐 체제의 실체”라고 말했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은 “민주당은 김 수사관을 범법자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이는데 그는 엄연한 공익제보자”라고 맞섰다.


여야 운영위원들은 이날 회의 시작부터 치열한 신경전을 펼쳤다. 회의는 오전 10시에 개의했지만 출석 대상자, 자료 요구 등에 대한 의사진행 발언이 쏟아지면서 1시간이 지나 본격적인 질의가 시작됐다. 질의 과정에서도 청와대의 답변 내용, 의원들의 발언 내용을 두고 여야 의원들이 수차례 고성을 주고받으며 논쟁을 벌였다. 운영위 회의는 방송을 통해 생중계돼 의원들의 볼썽사나운 말싸움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한편 31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국회운영위원회 출석에 대해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나경원 대표의 첫 질문 한방이 없다. 아젠다를 설정치 않은 것으로 보이고 팀플레이가 안 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을 출석시켜 현안 질의를 한다지만 한국당 전략 미스로 보인다”면서 이같이 평가했다.


박 의원은 “야당은 의사진행, 자료제출 발언은 묶어서 한 사람의 위원이, 가급적 질문을 하고 본격적으로 큰 사건을 터트려 주목을 이끌어야 한다”면서 “(자유한국당이) 이렇게 하다간 면죄부를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반면 홍영표 국회운영위원장과 임종석 실장·조국 수석에 대해서는 각기 “노련하게 잘 진행한다” “답변을 잘한다”고 평가했다.


이날 조국 수석은 임종석 비서실장과 '투톱'을 이루며 야당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논리적 우세 속에서 잘 막았다는 평가가 많다. 법대 교수 출신 '순둥이' 수석을 예상했던 야당 의원들은 조 수석이 '질타성 질의'에 대해 메모까지 해 두었다가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에 대해 어리둥절 지켜보기만 했다. 조 수석이 운영위 참석 전 단단히 준비를 했음을 짐작케 할 수 있다.


이날 조 수석의 여의도 데뷔전은 향후 그가 여권에서 어떤 정치적 역할을 할 것인지를 말해주는 일종의 바로미터였다. 조 수석의 '맷집'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 조 수석 카드는 다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대권주자 밑자락까지 깔아준 게 이날 운영위였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결정적 한방 없이 세간의 의혹 나열에 그친 야당, 특히 대여 선봉장이었던 나경원 의원은 원내대표 부담까지 더해지며 이날 특유의 날카로운 송곳 질문이 없이 다소 점잖은 태도로 일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담 때문에 긴장도가 더해져 말발이 먹히지 않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조국 수석 한명만 콕 집어 문재인 정부의 허점을 공격하려 했던 야당으로서는 오히려 조 수석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생각보다 조국은 탄탄했고, 이 견고함이 향후 여권의 대권 지형도를 뿌리째 흔들 수도 있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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