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최근 ‘재판 청탁’ 의혹을 받고 있는 서영교 의원에 대해 “(원내수석대표직 사임으로) 충분하게 책임을 물었다”면서 추가적인 징계 논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를 두고 제 식구 감싸기, 내로남불 등의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회 사법개혁 논의에 추동력이 떨어졌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주요 당직자가 등장한 것도 모자라 ‘솜방망이’ 징계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민주당이 사법개혁 밀어붙이기가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 강남구에서 현장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서 의원은 단순하게 (국회 상임위원회) 사보임이 아니고 원내수석부대표의 소임을 내려놓은 것”이라며 “충분하게 책임을 물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날 이해식 대변인이 서 의원의 재판 청탁 의혹과 관련해 윤리심판원 회부 의사가 없다고 밝힌 데 이어 ‘징계 검토 의사 없음’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또 “과거 법제사법위원으로서 민원을 받아서 관행적으로 좀 했던 것에 문제가 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 말대로라면 서 의원은 거짓 해명을 한 것이 된다. 앞서 서 의원이 “국회 파견 판사를 만난 기억이 없다” “죄명을 바꿔달라거나 벌금을 깎아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재판 청탁을 하고, 거짓말까지 한 서 의원을 여당이 ‘관행’이라는 말로 감싼 것이다.


게다가 홍 원내대표가 ‘관행’이라고 언급했듯 앞으로 의원들 사이에서 제2, 제3의 재판 청탁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추가 공소장에 함께 적시된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이름도 민주당으로서는 지우고 싶은 심정이다.


거대 양당의 또 다른 축인 자유한국당도 재판 청탁과 관련해서는 ‘쉬쉬 카르텔’을 이루는 분위기다. 한국당은 손혜원 의원에게는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지만, 서 의원 건에 대해서는 쟁점화를 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임 전 차장 공소장에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소속 이군현·노철래 전 의원이 등장했고, 이들을 위한 청탁을 수행한 당시 법사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의 실체가 아직 드러나지 않아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처지다.


재판 청탁을 단순 민원으로 격하시키고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여당의 행태는 가뜩이나 팽배한 정치혐오 정서나 정당 불신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한창 논의 중인 의원 정수·비례대표 확대 ‘불가론’이 강화된다면, 선거제 개혁이 무산되고 이는 의회 기득권 공고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수 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민주당의 적폐청산·사법개혁 포기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의 재판 청탁 관행은 사실 널리 퍼져 있어 그들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아닌 사안'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직원 채용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62)은 지난해 법정에서 재판장으로부터 “앞으로 ‘공정하게 재판해 달라’는 전화가 오지 않게 하라”는 핀잔을 들어야했다.





당시 수원지법 안양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유성)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최 의원 측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재판부에 “공정하게 봐 달라”고 두 차례나 요청했다.


이에 재판장인 김 부장판사는 “재판을 공정하게 해달라고 하니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며 “그런 식으로 ‘공정하게 해 달라’는 전화가 자꾸 오는데 절대 앞으로 주변 분들이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의 지인들이 재판부에 ‘은근한’ 청탁 전화를 걸어오는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저는 일절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고, 검찰이 제기한 공소를 입증할 수 있느냐, 이 부분만 판단할 것”이라며 “다른 쪽으로 얘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저는 그런 사람들 아는 바가 없다. 그런 얘기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을 더듬으며 당혹스러워했다.


여기서 '그런 사람들'이란 누구일까. 서영교 의원이 될 수도 있고, 최 의원의 또 다른 지인 혹은 자유한국당 동료 의원도 될 수 있다. 얼마나 판사를 '괴롭혔으면' 판사가 이례적으로 재판 도중에 '전화 오게 하지 마라'는 훈계까지 했겠느냐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당시 많았다. 판사가 정치권의 '관행' 정도를 몰랐을 리 없다. 얼마나 도를 넘는 로비를 했으면 공개석상에서 이례적으로 피고에게 그런 훈시성 계도를 하겠는가.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경기 구리시)이 재판청탁 의혹을 받는 같은 당 서영교 의원과 관련 “국회 파견 판사에게 억울한 사정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는 것은 직권남용·공무집행방해 등 위법으로 보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 법 해석”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서 의원이)요청한 사실, 요청한 내용들이 (재판부에서) 하나도 받아들여진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로비가 먹히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별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은 타당한 것인가?


서 의원 청탁 사건에 대해 ‘아주 경미한 사건’이라고 윤 사무총장은 강조했다. 더불어 이번 사건이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 및 법관탄핵 추진에도 영향이 없을 것으로 봤다. 그는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사법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강력하게 추진은 해나갈 생각”이라며 “그러나 야당이 하는 행동을 보면 사법개혁에 적극적이기보다는 침소봉대하는 데 더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었던 2015년, 국회 파견 판사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총선 당시 자신의 연락사무소장을 지낸 A씨 아들의 재판을 청탁한 의혹을 받는다. 이를 보고 받은 임 전 차장은 A씨 아들의 재판이 진행된 서울북부지법의 문용선 법원장에게 부탁하고, 법원행정처 기획총괄심의관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도 청탁한 혐의를 받는다.


2014년 20대 여성 앞에서 바지를 내려 성기를 노출하고 강제로 피해자를 껴안으려 한 혐의(강제추행미수)로 기소된 A씨의 아들은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으며 이후 대법원에서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당시 법원은 A씨의 아들이 2012년 공연음란전력이 있고 게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데다 진지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고 적시했다.


서영교 의원의 재판청탁 의혹은 그 사안 자체가 상당히 민감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엄정하게 추진하는 '과정은 공정'한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재판청탁 의혹은 불공정한 과정의 전형이다. 힘 있는 권력기관이 민원을 들어준다는 구실은 그 자체로 '압력'이 될 수 있다. 그런 시도 자체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를 '관행'이라고 말한다. 일반 국민이라면 감히 재판하는 판사에게 그런 청탁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힘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아예 그런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공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권이 '아주 경미한 사건'으로 보는 사안을 국민들의 눈에는 그리 경미해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다. 그가 목민심서에서 공직자의 자세에 대해 한 말이다.


“위엄은 청렴에서 생기고 신의는 진실한 충성심에 기반한다. 충성되고 청렴하면 백성이 따를 것이다.”


성기노 에디터 trot@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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