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영변의 추억: 공습 계획과 냉각탑 폭파 


2016년 9월 미국 백악관. 


오바마 대통령은 긴급 전략 회의를 주재했다. 북 미사일 발사 7초 내 탐지와 대북 사이버 공격 작전 등이 담긴 특별 접근 프로그램(Special Access Program)을 승인했다. 국방부와 정보기관들에겐 북한 핵과 미사일, 모든 핵 프로그램의 제거가 가능한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예방적 대북 군사 옵션의 검토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내려진 비상사태다. 


미국 정보 수장은 대북 공습작전으로 북한 핵과 관련 시설 85%를 파괴할 수 있으며, 반격 받을 경우 남한 내 최소 수 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고심 끝에 이 계획을 접었다. 


2년의 시간이 흐른 2018년 10월. 


김정은 북한 위원장이 방북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의 폐기와 파기를 약속했다고 미국 측이 밝혔다. 김 위원장이 공언한 말이 사실이라면 폐쇄 대상지역은 우리에겐 소월의 진달래꽃으로 더 아련한 영변지역이다. 90년대 이후 북한 핵개발의 상징이 된 바로 그 영변이다. 90년대 초반 외과 수술식 공습, 이른바 서지컬 스트라이크의 대상이기도 했고, 핵 없는 세상을 외쳤던 오바마까지 공습을 검토했던 바로 그 영변이다.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이루고, 스스로를 핵 국가로 부르는 데 있어 가장 큰 중심적 역할을 했던 바로 그 영변을 김정은 위원장이 자발적으로 폐쇄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1970년대 후반 5MW급 원자로를 시작으로 핵재처리 시설, 우라늄 농축 시설 등 390여개의 건물과 시설이 착착 들어선 영변은 북한 핵 개발의 산실이다. 따라서 이곳을 폐쇄한다는 것 자체는 북한이 앞으로는 핵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북한 미래 핵의 포기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영변의 핵 시설은 건설된 지 오래돼 고철 수준이고 영변 우라늄 농축 시설은 2010년 대외 전시용으로 만들어진 시설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변 핵 시설은 이미 용도 폐기된 ‘북핵 역사 박물관’의 전시물에 불과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북한이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협상 대상에 포함시킨다 하더라도 그 역시 비핵화 대상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클 것으로 보이는 최소 1∼2개의 은닉된 우라늄 농축시설들과 거기서 생산된 핵물질과 수십 개의 핵무기도 비핵화 대상인데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어, 북한 비핵화 의지를 믿을 수 없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② 종전의 기억: “한반도 전쟁 종료 선언 할 수 있다”





북한 핵 시설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로 거론되는 것이 한국전쟁의 종식 선언이다. 비건 미 국무부 특별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으며, 미국은 북한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미국은 북한 정권의 전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60년 넘게 이어지는 한국 전쟁의 일시 휴전 상태를 끝낼 용의가 있다는 표현이다. 비건 대표는 또 “미국의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70년간의 전쟁과 적대감을 뛰어넘어야 할 시간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며 “이러한 갈등이 더는 계속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대북 종전 선언 제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2년 한국을 방문한 부시 대통령은 대북 불침공 의사를 표명했고, 10여 년 전인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006년 APEC 정상회의에서도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전 종전선언을 언급했다.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국전 종료를 선언하는 문서에 공동 서명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최근 북한 비핵화의 상응 조치로 거론되는 종전 선언의 문서화가 이미 13년 전에 대북 제안으로 제시됐던 것이다.


북한은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라는 비핵화 퍼포먼스까지 보여줬지만 비핵화의 길은 외면했다. 북한이 확보한 핵물질에 대한 조사를 위해 2008년 하반기 미국이 핵 시료 채취를 요구했지만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6자회담은 성과없이 끝났고 한반도 핵 위기는 재연됐다. 북한은 이후 거듭된 핵 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로 핵 폭주를 계속했고, 미국의 종전 선언 표명 용의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북한 비핵화를 둘러싸고 핵시설 폐기와 종전 선언이 다시금 북미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수차례의 고위급 실무 협상, 그리고 비건 대북대표의 평양행까지, 북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좋게 형성돼 있다. 


때마침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2월 27일과 28일 베트남에서 개최하기로 했다고 신년 국정연설에서 공개했다. 


트럼프의 말처럼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를 통한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역사적인 노력”이 북한 핵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2차 베트남 북미 정상회담이 이제 3주 앞으로 다가왔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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