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어디를 가는데.”

“다낭이요.”


말하면서 영규는 다낭이 마치 영원히 닿지 못할 낙원과도 같이 여겨졌다. 근 여섯 달 동안 그가 보아온 것은 음산한 정글과 질척이는 늪지대의 흙탕물이나 끝없는 논과 그리고 시뻘건 먼지였다. 모두들 이런 지옥에서 빠져나가는 영규를 부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순간 쉿쉿하는 포탄의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여왔다. “온다” 병사들은 물속에 머리를 처박으며 다시 엎드렸다. 깡, 하는 메마른 폭음이 귀청을 짓쑤셨다. 3.5인치 로켓포였다.


황석영의 소설 「무기의 그늘」 한 부분이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파병된 군인들에겐 다낭은 전투의 비참함을 피할 수 있는 파라다이스였나 보다.


종려의 가로수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깨끗한 프랑스 식민지식 건물들이 좌우에 보였다. 도시의 구획은 넓고 네모반듯했고, 무슨 그림엽서에 나오는 휴양지 같았다. 덧문의 나무창살들이 하얗게 반사되고 있었고 푸른 덩굴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길 좌우로 흰 아오자이를 입은 여학생들이 줄지어 내려왔다. 긴 머리에 가느다란 몸매에 꼭 끼는 아오자이는 아름다웠다.


1965년 3월 미 해병 2개 대대가 처음 상륙한 다낭은 한국의 참전부대인 청룡부대가 1965년 10월부터 1971년 12월까지 주둔했던 지역이다. 전투가 치열한 전선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하지만 황석영의 소설을 보면 당시 치안이 완벽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낭은…… 큰가요?”

“섬이나 마찬가지야. 사방으로 적에게 둘러싸여 있다. 밤만 되면 시내에서도 게릴라의 습격을 받는다.”


베트남에겐 민족 해방을 위해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전쟁, 미국으로서는 세계 패권 수호와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이념 전쟁,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이념 전쟁에 동조하면서도 파병을 통한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피를 흘린 전쟁. 관련국 모두가 결코 양보 할 수 없는, 져서는 안 되는 베트남 전쟁이었다.


하지만 전쟁의 피해는 막대했다.


75년 종전까지 베트남 정부군 25만이 사망하고 60여만 명이 부상했다. 월맹의 경우는 희생이 더욱 커 90만 명의 군인이 사망하고 200만 명이 부상했다. 수백만 민간인들이 폭격과 살상 행위로 목숨을 잃었다. 네이팜탄 폭격과 고엽제 살포로 베트남의 국토는 황폐화됐다. 미군도 4만 7천 명이 군사 작전 중에 사망하고 30만 명이 부상했으며 10년이라는 전쟁기간 동안 들어간 전쟁비용만 무려 2천억 달러였다.



▲ 베트남전 당시 남중부 지역 다낭에 상륙한 미 해병대 원정군- 1965년 3월 8일



베트남에겐 상처뿐인 승리를, 수렁 속을 헤맨 미국에겐 치욕스런 패배를, 그리고 한국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라는 전쟁 범죄와 라이 따이한 문제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결국엔 모두가 손실을 본 악몽의 전쟁이었다.


베트남 전쟁 그 와중에 중심에 있었던 다낭이 이제 다시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현장으로 전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 건 그래서 역사의 아이러니다.


미국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하노이를 확정했지만, 그 전까지 다낭을 매우 유력하게 검토했기 때문에 다낭이 계속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선 베트남 중부 해변 도시 다낭은 베트남 내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며, 2017년 APEC 정상회의 등 중요한 외교 행사를 치른 경험과 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특히 APEC 정상회담이 열렸던 인터콘티넨털 다낭 선 페닌슐라 리조트는 바다에 접하고 있어서 경호상의 이점 때문에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날 유력한 회담장으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베트남은 1950년 북한과 수교를 맺은 이래 사회주의 형제국으로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80년대 후반 ‘도이모이’라는 사회주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이다. 2018년 4월 ‘경제 총력 노선’을 선포한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 정책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전쟁의 원한과 상처를 극복하고 미국과는 ‘적에서 친구’가 됐다. 90년대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이후 국교 정상화 등으로 양국관계는 우호적으로 바뀌었으며 최근엔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에 대응해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다지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으로 적성 국가였지만 92년 수교 이후 양국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한국 기업체의 베트남 진출이 활발하고, 최근엔 박항서 감독의 활약으로 과거의 모든 갈등을 용광로 속에 녹여버릴 정도로 친근감을 느끼는 게 요즘의 양국관계다. 다낭 도심을 가로지는 강 이름이 쏭 한 (Song Han), 우리말로 한강이라는 점도 기막힌 우연이다.


북한과 미국이 막바지 샅바싸움으로 협상의 윤곽을 예단하기는 쉽지 않는 국면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비록 하노이로 확정이 됐지만, 관련국 모두에게 상실과 고통의 역사를 담고 있는 다낭이 한때 유력하게 검토되었다는 것 자체가 역사의 아이러니를 말해주는 것 같다.


‘무기의 그늘’이 평화의 양지가 되는 순간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 자리는 하노이에게로 가버렸다.





김연/통일전문기자


김연 통일전문기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10여년동안 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이슈를 취재했다. 지금은 모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북한정세와 남북관계 관련 연구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인동의 시절에 꽃피는 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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